양자역학의 탄생: 고전물리학의 한계

| 에디터 노트
양자역학은 물리학에서 중요한 동역학 이론으로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며, 빛의 내비침과 원자 등 작은 세계의 이해에서 출발해서 물질의 성질과 다양한 현상의 해석에 필수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양자역학은 현재 컴퓨터, 휴대전화,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모든 정보기술과 나노기술, 새로운 물질 합성, 레이저, 햇빛전지 등 에너지 기술의 바탕일 뿐만 아니라 이른바 유전공학 등 생물정보기술도 상당 부분 양자역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독특한 양자역학 현상을 이용한 양자연산과 양자통신, 양자암호 등 양자정보기술이 크게 관심을 끌고 있다.

이렇듯 자연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성공적이고 또한 현대 기술의 바탕으로 자리를 잡은 양자역학은 20세기 초에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그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측정과 해석에 관련해서는 논리적 정합성에 문제가 있어서 양자역학은 아직 완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양자역학은 주로 응용의 측면에서 다뤄지면서 단지 계산하여 결과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이러한 도구적 측면이 아니라 구조와 해석, 개념과 의미에 중점을 두고 양자역학을 살펴보려 한다. 양자역학의 본질에 관해서 오랫동안 사색해온 연구자들이 역사적 고찰에서 시작해서 양자역학의 구조, 개념, 역설, 현상과 해석을 다룰 계획이며, 여건이 허락하면 뒤이어 양자물질과 양자정보 등도 살펴보려 한다. 이 기획이 양자역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나아가 현대 기술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양자역학분야 기획 최무영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양자역학의 탄생: 고전물리학의 한계

[글] 김재영 KAIST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전임교원
[그림] 이솔 과학일러스트레이터・약사
[편집] 윤신영 기자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근간에는 반도체 혁명이 있고,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순전히 양자역학 덕분이다. 양자역학은 물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물리학 이론으로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고 물성을 이해할 수 있는 틀로 자리를 잡았으며, 현대물리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이론이 됐다. 이 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이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1925년 독일의 막스 보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파스쿠알 요르단, 영국의 폴 디랙, 오스트리아의 에르빈 슈뢰딩거 등이 이 새로운 이론을 처음 제안했다.

양자역학은 비단 물질의 이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양자역학은 ‘자연세계 자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주었다. 이를 상세하게 검토하기 위해 먼저 고전물리학이 어떤 어려움을 만났는지 살펴보자. 그 뒤 양자역학이 탄생한 배경이 무엇인지, 고전물리학과의 차별성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 켈빈 경의 두 구름
1900년 4월 27일, 켈빈 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윌리엄 톰슨은 영국 런던의 왕립연구소에서 열린 초청특강에서 ‘열과 빛의 동역학 이론에 드리워진 19세기의 구름들’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적인 강연을 했다 (그림 1). 19세기가 저물고 20세기가 다가오는 시점에 원로 물리학자가 제시하는 물리학의 전망을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그림 1] 윌리엄 톰슨, 켈빈 남작 (1824-1907).

“열과 빛이 운동의 한 양식임을 주장하는 동역학 이론의 아름다움과 명쾌함은 지금 두 조각의 구름 때문에 가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지구가 탄성체, 본질적으로 빛 에테르와 같은 탄성체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문제와 관련돼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에너지 분배에 관한 맥스웰-볼츠만 이론입니다.” (그림 2)

[그림 2] "열과 빛의 동역학 이론에 드리워진 19세기의 구름들"(1901) 첫 페이지.

앞의 문제는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과 관련된 ‘에테르 속의 운동’이라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속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탄생했고, 이는 20세기의 새로운 물리학의 중요한 기둥 중 하나가 되었다. 뒤의 문제는 소위 ‘비열의 문제’로 알려져 있다. 고체의 비열이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문제다.

이 강연은 다소 와전돼 톰슨이 고전물리학이 열과 빛을 비롯해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물리학자의 하늘은 아주 맑은데, 단지 두 개의 작은 구름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알려져 있다. 톰슨은 이 두 구름이 결코 사소하거나 작지 않으며 다가오는 20세기 물리학에서 심각한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19세기가 저물 무렵 물리학자들이 지녔던 자신감이 강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두 번째 구름이 흑체복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서술이 많다. 하지만, 흑체복사 문제는 1900년 10월에 처음 독일에서 불거져 나왔고, 톰슨의 강연은 1900년 4월이라서 실제로 ‘필로소피컬 매거진’에 발표된 원고에는 흑체복사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켈빈의 구름 이야기를 19세기 초에 결정론적 세계관의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알려져 있는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의 유명한 문장과 대비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우주의 현재 상태가 그 이전 상태의 결과인 한편 그 미래 상태의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지성적 존재가 있어서,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힘과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구성요소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하자. 이 지성적인 존재가 또한 그런 데이터를 분석해낼 만큼 충분히 엄청난 지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는 우주의 가장 거대한 천체로부터 가장 보잘것없는 원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운동을 하나의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모호한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될 것이다.”

흔히 ‘라플라스의 악마’라 부르기도 하지만, 본문에서는 ‘악마’라는 표현이 없고 그냥 어떤 뛰어난 지성이다. 또 “모든 힘과 모든 위치(즉 운동상태)를 알고 있고 그런 데이터를 분석해낼(즉 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가정으로 포함돼 있다 (그림 3).

[그림 3] 라플라스의 ‘확률의 해석적 이론’ (1812) 표지.

결정론에서는 대상의 상태를 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한다. 물리학에서는 운동량이라는 것이 질량과 속도를 곱한 값으로 정의되지만, 그 핵심 역할은 ‘위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요약하는 정보다. 대상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위치) 그 다음 순간 어디로 튈지(운동량) 알 수 있다면, 미래이든 과거이든 그 대상의 상태를 완벽하게 알 수 있다. 이 개념은 물체의 운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19세기 말 경제학의 한계 혁명도 물리학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삼고 경제 현상을 그와 같은 법칙의 테두리 안에 놓으려는 노력이었다. 시계열이라 부르는 것은 모두 고전역학과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 주식 시세, 환율 동향, 지구 평균 온도, 노화의 진행, 인구의 변화, 전염병의 확산 등 사실상 모든 것을 ‘위치(현재의 값)’와 ‘운동량(변화율)’으로 규정할 수만 있으면 빈틈없이 예측을 해낼 수 있다.

라플라스의 문장에 견줘보면, 켈빈의 구름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힘과 그 작동 방식을 알아가는 긴 여정에서 20세기를 맞는 물리학자들이 지녔던 믿음과 희망을 보여준다.


| 흑체복사의 이론과 띄엄띄엄 떨어진 물리량
켈빈의 두 구름 중 하나는 고체의 비열 문제였다. 이것은 등분배 정리를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고체의 비열이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였다. 이 문제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흑체복사 문제였다. 19세기 말 프로이센 제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과학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베를린에 제국물리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특히 전구와 관련된 연구개발 과정에서 열원이 내는 복사선의 세기가 파장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매우 정교하게 측정하는 기술이 이곳에서 개발됐다.

1900년 10월 19일, 제국물리기술연구소와 샤를로텐부르크 공대에 있던 실험물리학자 하인리히 루벤스와 페르디난트 쿠를바움은 흑체의 열복사가 복사선의 파장에 따라 어떻게 분포하는지 매우 정밀하게 측정한 결과를 몇 명만 모인 작은 모임에서 발표했다. 이들은 모임이 열리기 며칠 전에 이론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에게 새로운 측정결과의 데이터를 미리 주고 상세한 논평을 부탁했다. 기존에 빌헬름 빈은 프리드리히 파셴이 수행한 실험과 잘 일치하도록 기체 분자 운동론을 써서 실험식을 유도해 발표했었다. 그런데 장파장 영역에서는 빈의 실험식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루벤스와 쿠를바움의 실험 결과였다. 플랑크는 새로운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해 논평을 준비하던 중, 실험 데이터와 아주 잘 맞는 올바른 흑체복사 공식을 유도해 낼 수 있었다 (그림 4).

[그림 4] 흑체복사의 실험 데이터 (Rubens & Kurlbaum 1901).

플랑크가 얻은 흑체복사 공식은 빛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값이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떨어져서 어떤 기본값의 자연수배만 허용된다고 가정한 결과였다. 이를 통해 빛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오긴 했지만, 물질의 새로운 이론이 될 수는 없었다. 플랑크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원자의 모형을 처음 제시한 것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였다. 보어는 1911년에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제안한 원자모형에 플랑크의 흑체복사 이론을 적용해 새로운 원자모형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아르놀트 조머펠트는 이를 확장해 원자 현상을 아주 잘 설명하는 보어-조머펠트 모형을 만들었다. 이를 초기 양자이론이라 부른다.

초기 양자이론과 1925년에 정립된 양자역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리량이 연속적이지 않고 이산적이라는 점이다. 즉 에너지나 운동량 등의 값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어떤 기본값의 정수배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양자역학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 결정론, 고전적 확률, 양자확률
물리량의 값이 이산적임을 주장하는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관념을 요구한다. 양자역학이란 말이 나올 때 흔히 항간에 퍼져 있는 다음과 같은 오해들이 거론된다.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고양이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니다."
"위치 아니면 운동량에 관해 물어볼 수 있지만, 둘 다 물을 수는 없다."
"한 입자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입자와 원격작용을 해서 그 입자의 스핀을 바로 알아낼 수 있다." 등등

이런 오해의 핵심은 모두 양자역학 이전의 관념, 특히 고전역학의 관념으로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 한다는 점에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컴퓨터 공학자인 스콧 애런슨은 ‘데모크리토스부터 시작된 양자 계산’이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본적으로 양자역학은 다른 물리학 이론들이 응용 소프트웨어로 작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운영체제(O/S)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보통의 의미의 물리학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서 물질이나 에너지나 파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양자역학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 양자역학은 정보와 확률과 관측가능량,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애런슨에 따르면, 세계를 서술하는 방식에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1) 결정론 (2) 고전적 확률 (3) 양자역학이다.

결정론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계산되고 준비돼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 효시는 흔히 뉴턴과 고전역학으로 얘기된다. 라플라스의 악마와 켈빈의 구름이 말해 주는 것이 바로 이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상대성이론으로 가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조금 더 정밀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결정론의 틀을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고전적 확률은 물리학 분야에서 기체분자운동론 또는 통계역학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됐다. 18세기 말 확률의 기본 개념을 수학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19세기 내내 확률 개념이 차근차근 정립돼갔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등장하는 바로 그 인용문이 있는 곳이 다름 아니라 ‘확률의 해석적 이론’이란 책의 서문이다. 19세기는 확률의 시대였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은 다름 아니라 종이 만들어지고 분화하는 과정을 확률이론을 통해 이해하겠다는 것이었다. 19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여러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과 경제학도 상당 부분에서 확률 개념을 가져오는 면이 있다. 확률 개념이 필요하다고 해도 확률이론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유지됐다.

양자역학에 이르면 이제 고전적 확률과는 다른 종류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양자확률'이라 부른다. 흔히 '확률진폭'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진폭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파동 모델에 비유한 덕분에 붙었다. 여러 개의 파동이 겹쳐 있을 때, 특정 부분파의 진동의 크기를 가리키는 말이 진폭이고, 확률은 그 진폭의 절대값 제곱이라는 것이다. 진폭이라는 용어 대신 그냥 ‘상태함수’라고 부르는 것이 혼동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양자역학을 통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결정론과 고전적 확률에서는 대상의 상태를 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함으로써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모든 순간의 상태를 정확하게 또는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대상의 상태를 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양자역학은 그 대신 상태함수라는 것으로 대상의 상태를 규정하기로 함으로써 새로운 인식론과 존재론을 열었다.


|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
이 대목에서 ‘고전물리학’ 또는 ‘고전역학’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과학사학자 리처드 스테일리는 고전물리학이 현대물리학과 동시에 생겨났다는 흥미롭고 중요한 주장을 내놨다.

스테일리는 1900년 전후 40여 년간의 문헌들을 상세하게 검토하면서 고전적이란 표현이 가지는 다의성과 다양성에 주목한다. 고전역학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7년에 출간된 루트비히 볼츠만의 저서 ‘역학의 원리 강의’에서였다 (그림 5). 하지만 서문에 있는 “오래된 고전주의적 역학”이라는 모호한 표현은 그냥 자신의 저서에 담겨 있는 내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었다. 이 용어를 상세하게 해명한 것은 1899년 볼츠만이 뮌헨 자연과학자 학술대회에서 한 강연에서였다.

[그림 5] 볼츠만의 ‘역학의 원리 강의’ (1897) 표지.

볼츠만은 문학, 음악, 미술의 고전주의처럼 과학 특히 물리학에도 고전주의가 있으며, 자신은 그러한 ‘참된 고전주의적 과학’ 특히 ‘고전주의적 이론 물리학’을 믿고 그에 따라 연구를 하는 고전주의자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고전주의는 19세기 말 특히 빈을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던 문학, 건축, 미술, 음악에서의 새로운 접근방식과 사조에 대비해 대략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넓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고, 볼츠만은 이런 건축, 미술, 음악에서의 고전주의를 명시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볼츠만은 뉴턴의 역학을 더 발전시켜 새로운 방식으로 정식화한 해밀턴 역학을 고전주의적 역학, 즉 고전역학이라 하면서, 맥스웰 이후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전자기이론 또는 전기역학과 구별되는 것으로 여겼다. 볼츠만은 고전적이지 않은 역학으로서 키르히호프와 헤르츠의 연구를 논의하면서 이들의 시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론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볼츠만은 당시 최신의 물리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세 가지 새로운 방법론을 비교했다. 첫째는 오스트발트를 주축으로 한 ‘에너지학’으로서 에너지 개념을 과학의 원초적 개념으로 삼으려는 프로젝트다. 둘째는 수학적 현상론으로서 현상 뒤의 실재가 어떤 식으로 돼 있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고 현상에 대한 서술로 만족하려는 입장이다. 셋째는 볼츠만 자신이 추구하는 기체 분자 운동론이다. 볼츠만은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세계 자체를 해명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키르히호프나 헤르츠의 접근을 빈 분리주의 건축이나 인상주의처럼 새로운 종류의 물리학으로 여겼고, 자신은 전통적이면서 고전주의적인 역학을 수호하겠다고 말했다.

1902년에 출간된 앙리 푸앵카레의 저서 ‘과학과 가설’의 6장 제목은 고전적인 역학(La mécanique)’이었다 (그림 6). 이 장에는 “수학적 물리학의 오래된 이론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1905년에 출간된 영어 번역판에서 이 ‘오래된 이론’이 classical theories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푸앵카레가 말한 고전적인 역학 또는 고전적인 이론은 사실상 뉴턴의 역학, 즉 운동의 세 법칙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역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새로운 천체 역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삼체 문제의 풀이를 위한 새로운 체계를 정립한 푸앵카레에게는 더 정교하고 엄밀한 해밀턴 역학이나 라그랑주 역학은 ‘고전적인 역학’이 아니라 새로운 역학에 더 가까웠다.

[그림 6]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 (1902) 표지.

볼츠만에게 클라우지우스의 열역학은 ‘고전열역학’이지만 에너지 개념을 근본개념으로 삼는 에너지학은 뉴턴역학에서처럼 분자와 기본입자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분리주의이며 새로운 조류였다. 이와 같이 ‘고전주의적’ 물리학이나 ‘고전주의적’ 역학은 지금 확립돼 있는 ‘고전물리학’이나 ‘고전역학’과는 내포하는 의미가 다르다.

스테일리는 1911년 1차 솔베이 회의를 주된 분기점으로 삼아 ‘고전물리학’이란 개념과 ‘현대물리학’이란 개념이 사실상 함께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물리학, 새로운 과학,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던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과 구별되는 이전의 주장을 고전적인 것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전물리학이라 부르는 어떤 실체적인 것이 있다기보다는 현대물리학을 말하기 위해 기존의 접근을 고전적 또는 고전주의적이라고 구성적으로 또는 상대적으로 불렀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초의 논의에서 상대성이론은 고전역학 또는 고전물리학과 대비되거나 구별되는 새로운 역학으로 자주 이야기됐고, 양자물리학 또는 양자역학을 고전물리학과 구분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는 주장도 찾아볼 수 있다.

스테일리는 방대한 사료를 상세하게 검토해 흔히 고전물리학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너무 쉽게 믿는 사람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줬다. 또, 이런 개념이 성립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중요한지 잘 보여줬다.

고전물리학은 수학적 언어를 사용하는 이론적 정식화가 세계의 요소들과 대응하며, 실험을 통해 이런 이론적 정식화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이론들의 우위를 판단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 기본적인 형식 체계는 최소작용원리에 기반을 둔 라그랑주 역학이나 위상공간을 상태공간으로 삼는 해밀턴 역학으로 구성된다. 이 두 가지 역학의 체계는 수학적으로 동등하며, 뉴턴의 세 운동 법칙에 기반을 둔 접근을 모두 포함한다. 전형적인 고전역학은 윌리엄 톰슨과 피터 거쓰리 타이트의 ‘자연철학론(Treatise on Natural Philosophy)’을 모범으로 삼는다 (그림 7).

[그림 7] 톰슨과 타이트의 ‘자연철학론’(1867) 표지.

| 요약: 고전물리학의 한계와 양자역학의 배경
라플라스의 악마 이야기는 19세기 물리학자들이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다소 오만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켈빈의 구름 중 하나인 비열의 문제는 흑체복사의 문제로 연결돼 고전물리학이 전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드러냈고,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양자역학을 향한 지난한 노력이 이어졌다.

양자역학은 결정론이나 고전적 확률과는 다른 관념을 요청한다. 이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전체에 근본적인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이 혁명의 계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 참고문헌

  1. Lord Kelvin, “Nineteenth Century Clouds Over the Dynamical Theory of Heat and Light”, Philosophical Magazine 2, 1-40 (1901); Baltimore Lectures on Molecular Dynamics and the Wave Theory of, 486-527 Light (1904).
  2. H. Rubens and F. Kurlbaum. "Anwendung der Methode der Reststrahlen zur Prüfung des Strahlungsgesetzes". Annalen der Physik 4, 649-666 (1901).
  3. Aaronson, S., Quantum Computing since Democritu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스콧 애론슨. 스콧 애론슨의 양자 컴퓨팅 강의: 데모크리토스부터 시작된 양자 컴퓨팅. 에이콘 (2021).
  4. R. Staley. “On the Co-Creation of Classical and Modern Physics”. Isis, 96(4), 530-558 (2005); Richard Staley. Einstein's Generation: The Origins of the Relativity Revolu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8).
  5. L. Boltzmann. Vorlesungen ueber die Principe der Mechanik. Springer (1897); L. Boltzmann. “Über die Entwicklung der Methoden der Theoretischen Physik in Neuerer Zeit”. Münchener Naturfoscherversammlung. 22. Sept (1899).
  6. H. Poincaré, La Science et l'Hypothèse. Flammarion (1902).
  7. W. Thomson, P. G. Tait. Treatise on Natural Philosophy. Oxford University Press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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