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5단계 먹고 또 먹는 이유

한 번씩 마라탕이 확 당길 때가 있다. 그럴 땐 퇴근하고 마라탕집에 냅다 달려간다. 버섯, 두부, 소고기, 고수, 쑥갓, 청경채 등을 골고루 담고 마라탕을 주문한다. 갓 나온 마라탕 국물을 한 입 먹자마자 매콤하고 얼얼한 마라향이 훅 퍼진다. '그래 이 맛으로 먹지~' 하면서 무아지경으로 먹는다. 매워서 입이 따갑고 속이 쓰리지만 그래도 마라탕을 맛있게 끝까지 다 먹는다.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다른 동물은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딱 인간만 매운맛을 좋아한다고 어떤 책에서 봤다. 우리는 왜 매운맛을 즐겨 먹을까? 혀가 아프고 속이 쓰린 걸 알면서도 며칠 지나면 또 매운 음식을 찾을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쾌락 전환'이다.

책<고통의 비밀>은 똑같은 자극이지만 상황에 따라 고통스럽게도 느껴지고, 편안하고 즐겁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통증이란 아픈 것이고, 고통을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뇌'는 다르게 반응한다. 통증이 특정 상황에서 덜 고통스러운 선택이라면 뇌는 그 통증을 기분 좋게 인식하고 더 추구하도록 한다.

원래 통증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고, 그 보호 과정에서 행동에 동기를 준다.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자극은 기분 좋게 느끼고,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자극은 불쾌하게 느낀다. 똑같이 팔꿈치로 등을 짓누르는데 마사지를 받을 땐 시원하다고 느끼지만 출근길 강남역에서 같은 상황을 겪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것도 이 원리 때문이다. (아 밀지마세요!!)

어떤 자극을 고통스러운 느낌으로 해석할지, 기분 좋은 느낌으로 해석할지는 미래의 보상이나 위협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려움이나 위기감이 클수록 고통에 대한 불쾌감도 커진다. P.146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고통 끝에 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평범한 사람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 특히 자기계발 명언 중에 고통을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많다.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변태가 따로 없다.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강인함"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고통은 나약함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보상을 추구하고 벌을 피한다. 지금 겪는 모든 고통이 통증보다 생존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인식할수록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산 정상을 찍기 위해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포기하지 않고 등산하고, 32km 마라톤 완주를 위해 근육경련과 무릎 부상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다.

하지만 고통에서 보상을 얻으려면 그 위협이 안전해야 한다. 특정 자극이 통증을 일으키지만, 궁극적으로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헬스 초보가 고통을 감수하겠다며 막무가내로 100kg 바벨을 든다면 안전사고가 뒤따른다. 10kg부터 시작해서 몸을 단련한 다음 100kg를 도전해야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고통과 쾌락은 반대 개념이 아니다. 뇌가 우리에게 보상을 추구하고 벌을 피하고, 더 오랫동안 생존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에 가깝다. 고통을 당할 때 견딜 만하고 성장하고,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고통을 즐겁게 여긴다.

마라탕으로 돌아간다. 마라탕을 즐겨 먹는 이유는 일단 맛있고, 매운 음식을 먹고 난 개운함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라탕 말고 고통에서 보상을 얻는 괜찮은 방법이 많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기하거나, 우울할 때마다 집안을 들쑤시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청소하거나, 불안할 때 등산하고, 잡생각이 날 때마다 시간을 정하고 책 한권을 빡세게 읽는 등 건강을 책임지고 일상을 행복하게 할 고통이 많다. 이러한  '좋은 고통'과 함께하며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