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두달간 휴가가도 문제되지 않는 '이곳'...수학의 도시 '프린스턴'

버트 아인슈타인, 쿠르트 괴델, 앨런 튜링, 존 내시, 테렌스 타오.
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을 수학자와 과학자인데요. 출신도, 나이대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을 이어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머물렀다는 겁니다.
프린스턴은 뉴욕시에서 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인구 3만여 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그럼에도 훌륭한 업적을 낸 수학자, 과학자가 모인 이유는 바로 프린스턴대와 고등연구소 때문입니다.
두 기관 모두 순수 학문 분야가 뛰어나기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수학은 단연 으뜸입니다. 프린스턴대 수학과는 전 세계 대학교 수학과 중 손꼽히며 고등연구소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가 속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열거한 5명의 학자도 이곳의 수학과 소속이었지요. 고등연구소는 1966년까지 30년 넘게 수학과만 있었기 때문에 자연 현상을 수학으로 이해하는 물리학자도 수학과에 속했습니다.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과 아벨상 수상자도 프린스턴 출신이 상당히 많습니다. 고등연구소 소속이었던 수학자 가운데 필즈상 수상자는 44명이고 아벨상 수상자는 23명입니다.
역대 수상자 수로 비율을 따졌을 때 필즈상은 71%, 아벨상은 88%나 돼요.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도 한때 고등연구소 소속이었습니다.

○ DAY1.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린스턴대 수학과
수학을 소재로 큰 인기를 끈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수학자 존 내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내시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법을 찾는 ‘게임 이론’을 발전시켜 노벨 경제학상과 아벨상을 모두 받은 수학자입니다.
뷰티풀 마인드의 배경은 내시가 다니던 프린스턴대인데요. 영화 속에서 프린스턴대 수학과는 최고의 엘리트가 모이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프린스턴대는 처음부터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습니다. 1746년 설립된 뉴저지대에서 1896년 프린스턴대로 이름을 바꿀 때만 해도 수학과는 학부 수준의 수업 외에 연구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았지만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학과가 됐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수학과 학과장이었던 헨리 파인의 공이 큰데 1903년 미국 전 대통령이자 당시 프린스턴대 총장이던 우드로 윌슨은 프린스턴대의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뛰어난 수학자인 파인을 학과장으로 임명합니다.
파인은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루터 아이젠하트, 오즈월드 베블런 같은 저명한 수학자를 영입했습니다. 덕분에 1911년에는 미국 하버드대로부터 수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수학연보'를 인수할 정도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또 연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기금을 모금했고 1925년에는 미국 내 대학교 수학과 상위 5위에 들 만큼 뛰어난 연구 성과를 냅니다.

현재 프린스턴대는 세계적인 수학자의 요람이자 선망하는 교수의 집합소로 유명합니다. 필즈상 수상자인 찰스 페퍼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테렌스 타오 UCLA 교수도 프린스턴대 출신이고 수백 명의 수학자와 공동연구한 것으로 유명한 헝가리 수학자 에르되시 팔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앤드루 와일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도 프린스턴대 교수였습니다. 전 세계 대학교 수학과 순위에서도 항상 5위 안에 드는 세계적인 대학입니다.

○ DAY2. 아인슈타인의 흔적을 찾아 고등연구소로!
고등연구소 주 건물인 퍼드홀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바로 문 옆에 있는 아인슈타인 두상이었어요. 그는 1933년부터 세상을 떠난 1955년까지 고등연구소에서 교수로 지냈어요.
당시 독일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인해 거취를 고민하던 아인슈타인은 고등연구소 수학과 교수직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32년 설립된 고등연구소의 초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만나기 위해 학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인슈타인의 흔적을 고등연구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쓰던 연구실부터 그 연구소에 있던 지구본까지 보존돼 있어요. 심지어 아인슈타인 두상과 별개로 흉상도 하나 있습니다. 고등연구소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도 있습니다. 이 집은 현재 고등연구소 소유인데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집이 비어 있는 데에는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이후 몇몇 학자가 그 집에 살았는데 대부분 노벨상을 받거나 뛰어난 업적을 세웠습니다.
대표적으로 200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 200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프랭크 윌첵 매사추세츠공대 교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살면 그 기록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다른 학자들이 선뜻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 연구자의 낙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고등연구소는 ‘연구자의 낙원’이라고 불리는데요. 수업을 해야 하는 의무도 없고 행정적인 업무도 거의 없어서입니다. 학위를 수여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연구만을 목적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고등연구소 소속이 된 토니 아날라 연구원은 “대부분 다른 기관은 박사후연구원도 강의를 해야 하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며 “자신이 원할 때 와서 연구하고 자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심지어 두 달 동안 아무 말 없이 휴가를 다녀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연봉 같은 재정적인 지원과 연구실, 심지어 숙소까지 제공해주기 때문에 연구하기 최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장점은 학계에서 이름을 떨친 전 세계 수학자가 모여 있다는 것인데 바로 옆 연구실, 건너편 연구실만 가도 뛰어난 수학자가 있어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수학과에는 박사후연구원이 총 80명 정도인데 보통 대학교는 10명 내외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수학의 각 분야에서 최고여야만 될 수 있다는 수학과 교수는 총 7명뿐입니다. 고등연구소에 방문했을 때 만난 헬무트 호퍼 교수도 그중 한 명입니다.

호퍼 교수는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수학 모형으로 표현하는 ‘동역학계’를 연구합니다. 동역학계를 연구할 때 ‘사교기하학’이라는 분야를 활용하는데 호퍼 교수는 이 분야의 기틀을 세우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로 여겨집니다.
호퍼 교수는 1987년 처음 연구원으로 고등연구소에 방문했고 2009년부터 14년째 고등연구소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는 고등연구소의 장점으로 ‘나이대나 분야가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꼽았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러한 과정이 연구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비슷한 연구를 하는 두 교수님이 있었는데 서로 대화를 거의 안 하다 보니 같은 수학 대상에 쓰는 용어도 달랐어요. 만약 두 사람이 소통을 잘했다면 더 좋았을 거예요. 저는 나이가 어린 연구원들과도 많이 교류하려고 해요. 그들한테도 배울 게 너무 많이 있어요.”
프린스턴대와 고등연구소를 짧지만 알차게 보고 돌아왔는데요. 수학자라면 왜 다들 프린스턴에서 연구하길 꿈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간접적으로나마 프린스턴을 체험할 수 있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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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10월호, 수학의 도시 프린스턴으로! 프린스턴대학교와 고등연구소를 소개합니다
[프린스턴=김진화 기자 evolut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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