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느리가 시댁에 와서 자꾸 자리를 비우면 시어머니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혹시 시댁이 불편해서 그런 건 아닌지, 친정에 시댁 흉을 보는 건 아닌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오늘은 시댁에 올 때마다 전화를 하러 밖으로 나가는 며느리를 오해했던 한 시어머니가 우연히 그 통화를 엿듣고 손이 떨렸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손맛 좋은 진주 시어머니
경남 진주에 사는 엄정희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진주 중앙시장에서 30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했습니다. 지금은 가게를 정리하고 남편과 둘이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정희 씨에게는 외아들 성호 씨와 며느리 고은지 씨가 있습니다. 아들 부부는 부산에 살며 초등학생 딸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주말이면 진주 시댁에 내려와 하룻밤을 자고 갑니다.정희 씨는 아들 가족이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갈비찜, 잡채, 나물 등 식당을 하던 솜씨를 발휘해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렸습니다. 며느리는 늘 "어머님, 너무 맛있어요"라며 맛있게 먹었습니다.그런데 정희 씨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시댁에 올 때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꼭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통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30분, 길 때는 한 시간이 넘도록 들어오지 않았습니다.처음에는 회사 일이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나가는 며느리를 보며 정희 씨의 마음에 의심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커지는 오해
"여보, 며느리가 또 전화하러 나갔네요. 혹시 친정에 우리 흉보는 거 아닐까요?" 정희 씨가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습니다. 남편은 신문을 보며 "쓸데없는 생각 마라"라고 했지만 정희 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동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자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댁 와서 친정 엄마한테 다 일러바친대." "우리 며느리도 시댁만 오면 밖에 나가서 한참 통화하던데, 알고 보니 시댁 흉보는 거였어."그 말을 들은 뒤로 정희 씨는 며느리가 통화하러 나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정성껏 차린 밥상이 며느리에게는 불편한 자리였나 싶어 서운했습니다. 며느리가 돌아오면 괜히 말투가 퉁명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며느리도 시어머니의 달라진 태도를 느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늘 그렇듯 공손하게 시어머니를 대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도 어김없이 저녁 식사 후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그렇게 1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정희 씨는 며느리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괜히 물었다가 관계가 더 서먹해질까 봐 서운함을 마음속에 담아 두기만 했습니다.

창문 너머로 들린 목소리
올해 가을, 아들 가족이 추석 연휴에 내려왔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며느리는 역시나 휴대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정희 씨는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오늘만큼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부엌 창문은 마당 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정희 씨는 고무장갑을 벗고 창문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지만 오랫동안 쌓인 서운함이 그녀를 창가로 이끌었습니다.마당 평상에 앉은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정희 씨가 예상했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며느리는 아주 천천히, 마치 어린아이에게 말하듯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엄마, 나 은지야. 은지. 엄마 딸 은지. 오늘은 시댁에 왔어. 시어머님이 갈비찜 해 주셨는데 엄마가 해 주던 맛이랑 똑같았어. 엄마 기억나? 엄마도 내 생일마다 갈비찜 해 줬잖아."정희 씨는 창틀을 붙잡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의 목소리는 점점 떨렸습니다. "엄마, 오늘은 나 알아보겠어? 괜찮아, 몰라도 괜찮아. 내가 매달 이렇게 전화할게."

며느리가 숨겨 온 이야기
정희 씨는 그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3년 전 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기억이 점점 흐려지는 병을 진단받았다는 이야기를 아들에게서 잠깐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부산의 한 요양원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정희 씨는 그 뒤로 사돈의 안부를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며느리의 통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엄마, 시어머님은 정말 좋은 분이야. 내가 시댁 올 때마다 맛있는 거 해 주시고, 엄마처럼 챙겨 주셔. 그러니까 엄마는 내 걱정 하지 마."정희 씨는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1년 넘게 며느리가 시댁 흉을 본다고 오해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며느리는 시댁에 올 때마다 요양원에 있는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시어머니 자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잠시 뒤 마당에서 며느리가 소리 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희 씨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부엌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평상에 앉아 있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머님, 언제 나오셨어요?" 정희 씨는 아무 말 없이 며느리 옆에 앉아 그녀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평상 위에서 나눈 대화
"얘야, 미안하다. 시어미가 너를 오해했다. 네가 친정엄마한테 전화하는 줄도 모르고 서운해만 했구나." 정희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품에 안긴 채 한참을 울었습니다.며느리는 천천히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엄마가 요즘은 저를 잘 못 알아보세요. 그래도 목소리는 들으시는 것 같아서 매달 전화를 드려요. 시댁에 오면 왠지 엄마 생각이 더 나서요. 어머님이 차려 주시는 밥상을 보면 엄마가 해 주던 밥상이 떠올라요.""그럼 왜 진작 말하지 않았니?" 정희 씨가 묻자 며느리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머님한테 괜히 걱정 끼쳐 드리기 싫었어요. 그리고 시댁에 와서 친정 이야기만 하면 서운해하실까 봐요."정희 씨는 며느리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얘야, 너희 엄마도 내 사돈이다. 이제부터는 혼자 마당에 나가서 울지 마라. 다음 달에는 우리 같이 사돈 뵈러 가자."그날 밤 정희 씨와 며느리는 평상에 나란히 앉아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며느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 친정엄마의 음식 솜씨 이야기, 그리고 정희 씨의 식당 시절 이야기까지 끝이 없었습니다.

요양원에서 만난 사돈
한 달 뒤, 정희 씨는 며느리와 함께 부산의 요양원을 찾았습니다. 손에는 직접 만든 갈비찜이 들려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친정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휠체어에 앉은 사부인은 정희 씨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정희 씨는 사부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말했습니다. "사부인, 저 은지 시어미입니다. 은지 덕분에 저희 집이 늘 따뜻합니다. 딸 참 잘 키우셨습니다."갈비찜을 한 숟가락 떠 드리자 사부인이 천천히 씹다가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은지…" 며느리는 그 말에 엄마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것이었습니다.그 뒤로 정희 씨는 아들 가족이 시댁에 올 때마다 갈비찜을 두 통 만듭니다. 한 통은 식구들이 먹고, 한 통은 며느리가 요양원에 가져갑니다. 며느리도 이제는 마당에 나가지 않고 거실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친정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겁니다.정희 씨는 요즘 동네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며느리가 전화하러 나가면 흉본다고 오해하지 마.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어. 나는 그걸 1년 넘게 모르고 서운해만 했어."

가족 사이의 오해는 대부분 서로의 사정을 묻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 혼자 짐작하기보다 먼저 따뜻하게 물어보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길입니다.며느리에게도 친정 부모가 있고, 그 마음을 헤아려 주는 시어머니에게 며느리는 더 깊이 마음을 엽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고부 사이를 고민하는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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