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날린 직후가 가장 맛있다는 이것...한참 지나도 골든타임 살릴 수 있다고? [전형민의 와인프릭]
와인은 유통기한이 존재합니다. 어떤 병이든 막혀있던 코르크를 뽑는 순간, 시계가 똑딱거리기 시작하죠. 와인의 시계는 와인이 살아있다는 반증이지만, 동시에 와인을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게 큰 장벽으로 다가옵니다.
병을 한번 개봉하면 반드시 다 마셔야 한다는 압박입니다. 와인이 과실주라고 하더라도 레드 와인을 기준으로 보통 알코올 도수가 14% 내외고, 1병의 용량이 소주(375㎖)의 2배인 750㎖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는 셈 입니다.
과연 와인은 병을 연 후 얼마나 지나면 상하는 것일까요? 아니, 일단 우리는 그것을 상했다고 부르는 게 맞을까요? 오늘 와인프릭은 와인의 개봉 후 유통기한과 이미 개봉한 와인을 보관하는 법, 그리고 꿀팁과 유용한 장비까지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해봅니다.
특히 섬세하고 복합적이었던 향들이 제각기 모습을 감춥니다. 뒤이어 맛에서도 변화가 감지되죠. 대체로 강도가 강했던 캐릭터는 오래 남지만, 은은한 캐릭터들부터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버번이나 싱글몰트, 리큐르 같은 독한 술들은 비교적 그 캐릭터가 잘 보존되는 편입니다. 높은 알코올 도수의 영향으로 일부 알코올이 기화돼 날라가는 엔젤스 쉐어(Angel’s Share·천사의 몫) 현상이 발생하지만, 대체로 맛과 향이 보존되죠.
하지만 와인은 도수가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특히 꽃향 같이 복합적이고 하늘거리는 섬세한 뉘앙스는 금방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개봉된 병의 정확한 유통기한은 알코올 함량, 타닌, 와인의 산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러한 요인들의 함량이 높을수록 개봉된 와인 병을 조금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스파클링 와인과 아황산염을 첨가하지 않고 만든(내추럴) 와인의 경우 1일, 저알코올인 화이트와 로제 와인은 2일, 대부분의 레드와인의 경우 3~5일, 도수와 당도가 일반 와인보다 조금 더 높은 디저트 와인은 7일 이상이 개봉 후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상태로 보관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한편 극단적으로 산소 접촉을 피하기 위해 같은 자리에서 와인을 마시더라도, 따를 때만(푸어링 할때만) 병을 열고 매번 코르크로 다시 병 입구를 막아놓기도 하는데요. 이는 큰 변화를 줄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미 푸어링 할때마다 새 산소가 병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다만 냉장고에 보관할 때도 반드시 지켜야하는 철칙이 있습니다. 눕혀서 보관하는 것인데요. 냉장고는 제습이 아주 잘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코르크를 다시 꽂아서 보관할 경우, 코르크가 수분을 빼앗겨 금방 수축하게 됩니다.
이렇게 될 경우 코르크와 와인병 사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작은 틈이 생기게 되고, 산소가 오가면서 산화가 계속 진행됩니다. 하지만 눕히면 코르크의 병 안쪽 면은 와인에 닿아 팽창해있기 때문에 수분이 달아날 틈을 막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상한 와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뭘까요? 와인이 아직 마실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와인을 잔에 따르고 냄새를 맡아보는 겁니다.
와인에서 먹고 싶은 과일의 향이 있다면, 아직 마시기에 무리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와인에서 젖은 신문지, 골판지, 식초 등의 냄새가 난다면 주저없이 하수구에 버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미 들어간 산소는 어찌할 수 없지만, 이러한 고무 마개도 어느 정도 와인의 보존 기간을 늘리는데에 효과적입니다. 다만 고무 마개를 사용하고 병을 눕히는 것은 금물입니다. 병을 눕힐 경우 병 속 와인과 마개의 고무 부분이 닿아 고무의 불쾌한 향을 전이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병에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와인의 경우, 코라뱅(Coravin)이라는 특수한 기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코르크를 미세한 침 수준의 빨대로 뚫어낸 후 인체에 무해하고 와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아르곤 가스를 병에 주입해 와인을 밀어내는 방식 입니다.
개봉하고도 한 달 이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기계이고, 아르곤 가스 역시 매번 구매·보충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격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초고가 와인에만 쓰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두 마개의 장점 만을 잘 섞어낸 리푸어(Repour)라는 제품도 등장했습니다. 마개 모양을 한 리푸어는 자체적으로 산소를 흡수하는 물질을 품고 있는데요. 병 마개로 사용하게 되면, 병속 산소를 서서히 흡수하면서 와인의 산화 분해를 효율적으로 차단합니다.
물론 1회용(1병당 1개 권장)이고 개당 4000원 정도 가격이지만, 일반 마개나 이미 뽑았던 코르크를 다시 쑤셔넣는 것에 비해 효과적으로 와인의 맛과 향을 지켜준다는 점에서 최근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을 최고 적정기, 최상의 컨디션에서 계속 즐기는 것은 와인 애호가로서는 꿈의 경지 입니다. 어쩌면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영원히 산화를 멈추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와인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를 권고합니다. 예컨대 억지로 산화를 늦추기보다, 변해가는 와인의 맛과 향 자체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식인데요.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이라는 와인프릭의 소개글과 꼭 맞는 설명입니다.
시간에 따라 내재된 잠재력을 발현시키고 그 흐름 속에서 더욱 우아하고 복합적인 매력을 발휘하는, 그리고 절정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매력까지. 우리가 와인에 유난히 설레는 것은 이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번 뿐인 오늘, 아름다운 가을 밤을 와인과 함께 만끽하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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