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과생이 개발한 바다 청소 로봇, 전세계 바다 구한다

쉐코 권기성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무선 기름 회수 로봇 ‘쉐코 아크(Sheco Ark)’를 개발한 쉐코의 권기성 대표. /더비비드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해양 오염 사고 발생 건수는 285건이다. 오염 물질 유출량은 무려 13만5100L에 달한다.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사람이 소형 선박을 타고 직접 오염 물질을 제거한다. 악천후에는 배를 띄울 수 없어 기름이 퍼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소셜벤처 쉐코의 권기성 대표(33)는 해양 오염 문제를 사람이 아닌 로봇이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고 봤다. 무선 기름 회수 로봇 ‘쉐코 아크(Sheco Ark)’를 만든 계기다. 세상에 나오기까지 6년이나 걸린 ‘바다 로봇 청소기’ 개발기를 들었다.

◇대학생 2명이 전국의 해운사를 찾아다닌 이유

전공 수업을 수강하다 해양 오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권 대표. /본인 제공

인천대 무역학과 10학번이다. 대학 시절 강의를 들으며 처음으로 ‘해상보험’ 문제를 접했다. “전공 수업에서 해상 보험을 공부하다 기름 유출 사고의 심각성을 깨달았어요. 기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한 환경 오염 문제도 심각했죠. 작업자의 노동 환경도 열악했습니다. 흡착포를 바다에 던져 끌개로 하루 종일 휘저어야 하거든요. 심지어 기름에 구토와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발암물질까지 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해양 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비 창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교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함께 할 팀원을 구했다. “우연히 프로그램에서 무인으로 기름을 회수하는 로봇을 개발했던 기계공학과 팀원을 만났어요. 함께 팀을 꾸리자고 적극적으로 설득했습니다.”

쉐코는 ‘현세대의 해양 오염 문제를 기술혁신으로 해결해 미래세대까지 청정한 바다를 공유하자’는 뜻이다. /더비비드

주변 사람 10명 중 9명이 창업을 말렸다. “취업을 하지 않고 사업부터 하겠다고 하니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반대했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본가인 경주에 5번 넘게 내려갔어요. 가족 모두를 모니터 앞에 앉혀놓고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결국 확신에 찬 제 모습을 보고 믿어주시더군요.”

2017년 쉐코로 사명을 정했다. ‘Share’와 ‘Eco’의 합성어로, ‘현세대의 해양 오염 문제를 기술혁신으로 해결해 미래세대까지 청정한 바다를 공유하자’는 뜻이다. 사업 구상을 위해 무작정 해운사를 찾아갔다. “해양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자를 만나 고충을 직접 듣기로 했어요. 시외버스를 타고 전국 일주를 했습니다. 버스가 들어가기 힘든 외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도 했어요. 1년간 200여명을 만났지만, 반응은 냉담했죠. 배낭을 멘 대학생 2명이 찾아온 걸 보고 탐탁지 않아 했어요.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19번의 시제품 제작 과정 끝에 탄생

사업 초기 시절, 팀원들과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권 대표의 모습. /본인 제공

우연히 참석한 세미나에서 구체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 해양 방제 세미나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에요. 기존 모델은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름이 넓게 퍼지는 것을 막는 자동으로 펜스를 치는 시스템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필요했던 건 기름 회수를 대신 해줄 수 있는 기계라는 걸 알게 됐죠. 기름 회수기가 있었지만, 크기와 무게로 인해 대규모 사고에만 사용하고 있었어요. 소규모 사고에도 쓸 수 있는 기름 회수 로봇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한 뒤 본격적으로 기름 회수 로봇 ‘쉐코 아크’ 개발에 착수했다. “대규모 유출 사고에 사용하는 기름 회수기는 무게가 200~600kg에 달합니다. 엔진, 펌프 등 장비가 분리돼 있어 설치도 어렵죠. 저희는 가볍고 작은 일체형 기름 회수기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기존 기름 회수기의 단점이었던 유선 방식도 개선하고 싶었어요. 작동 중에 선이 꼬여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거든요. 무선 형태를 고안했습니다.”

물과 기름을 분리하는 방식을 도입해 차별화했다. “대형 기름 회수기는 친유성 소재로 기름을 닦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바다 위의 기름을 닦아내다가 심한 파도가 치면 물이 내부에 들어와 제거 작업이 한층 어려워져요. 쉐코 아크는 해수면의 액체를 모두 빨아들인 뒤 내부 필터를 통해 기름을 걸러내는 방식입니다. 걸러낸 물을 밖으로 계속해서 배출하니 기름만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죠."

시제품으로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모습. /쉐코

전자석 크레인 모듈을 활용하면 장비를 쉽게 수면으로 내릴 수 있다. “크레인으로 장비를 내려야 했던 번거로움을 개선하고자 로봇에 자석을 달았어요. 자성 모드를 껐다 켜면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자성을 조절할 수 있죠. 복잡한 크레인 조작 방법을 몰라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2019년부터 3년간 19차례의 시제품 제작 과정을 거쳐 지난해 정식 제품을 출시했다. “쉐코를 처음 창업했을 때가 2017년이었습니다.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6년이 걸렸어요. 하나의 제품이지만 소재, 배터리, 흡입 기술 등 수십개의 기술을 동시에 개발해야 했죠.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학교 옥상이나 사무실 옥상, 해수욕장 등을 전전했습니다. 바다에서 실험하다가 조류에 제품이 떠내려간 적도 있어요.”

제품 상용화를 위해 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국내 해양환경관리법 제70조에 별표 14 제2호를 신설하는 데 기여했어요. 산업부, 해수부 등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해 해양 로봇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긴 설득 끝에 해양법 개정이라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로봇이 3D 직종인 오염 물질 제거 작업 현장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덕이죠.”

◇“지금까지 살아남았네요”라는 투자자의 말

지난 8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과 조달청이 공동 주최한 창업 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한 쉐코의 구성원들. /쉐코

해양 방제 현장을 무인화하려는 참신한 시도는 값진 성과로 돌아왔다. 2017년 고용노동부 소셜벤처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을 시작으로, 해수부 혁신기업 선정,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혁신상 2부문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지난 8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과 조달청이 공동 주최한 창업 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람이 직접 처리해야 하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해양 오염물 제거 작업을 로봇으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수작업 대비 10배 이상의 수질 개선 효과를 내기 때문에 작업 효율과 생산성도 동시에 끌어올렸어요.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도 높게 평가받았죠.”

꾸준한 도전으로 SK이노베이션, 현대 등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사업 초기에는 투자를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투자를 유치하기까지 3년이 걸렸거든요. 투자 유치에 실패해 좌절해도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지난번과 비교해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투자자가 기업 이름을 외울 정도로 계속해서 도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았네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해양경찰청, 해양환경공단, 해군 등 공공기관과 협력하고 있는 쉐코. /쉐코

현재 다양한 공공기관에서 쉐코 아크를 이용하고 있다. “해양경찰청, 해양환경공단, 해군 등 기관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방제 훈련을 진행하며 제품을 보완하고 있어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율운항 기능을 추가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B2G 사업은 관련 규제가 복잡하고 해결해 나가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 문제들을 해결하면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쉐코 아크로 전 세계 해양의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게 목표다. “최근 해외 진출을 위한 출장이 잦았어요. 유명한 관광지에 가도 강이나 호수만 눈에 들어오더군요. 저희 제품이 전 세계 해양 오염의 문화를 바꿨으면 해요. 전 세계 항만에 로봇 청소기의 충전 타워와 같은 ‘로봇 스테이션’을 구축해 요트, 페리, 선박, 운하 등 다양한 분야에 무궁무진하게 활용하는 것이 꿈입니다. 쉐코의 로봇 없이는 해양 청소를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해양 오염의 문화를 바꿀 ‘벤처소셜’ 쉐코

수익을 내는 소셜벤처가 돼야 한다고 당부한 권 대표. /더비비드

쉐코를 경영한 7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작년 10월 첫 제품이 판매됐을 때다. “매번 사업 아이템을 설명할 때마다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지난해 10월 첫 제품 판매에 성공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정적인 평가를 할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사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할 줄 알았어요. 막상 사업해 보니 지지부진한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수익이 없는 상황에서도 제품 출시를 6년이나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당장 눈앞의 결과에 매번 실망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소셜벤처 창업을 앞둔 사람에겐 무엇보다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소셜벤처를 창업한 사람이지만, ‘소셜벤처’가 아닌 ‘벤처소셜’로 생각해야 해요. 사회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사업 유지를 위한 수익성이 우선이죠. 아무리 친환경 소재로 신발을 만든다고 해도, 발이 불편하면 사람들이 사지 않는 것처럼요. 쉐코는 사업의 지속가능성도 고려하지만, 2026년까지 1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어요. 수익이 있어야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소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