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공장' 고우석.. WBC 마무리 감당할 수 있을까?

[민상현의 견제구] '인생을 건' 투구와 '안중에도 없는' 구단, 마이너리거 고우석이 마주한 고독한 마운드


KBO시절 구원왕에 올랐던 고우석 사진=LG 트윈스 (이하 출처 동일)

- 첫 시범경기부터 2피홈런 ‘대참사’… 3년째 미국에서 길 잃은 고우석, 류지현호 불펜의 시한폭탄 되나

- 디트로이트 스프링캠프 초청조차 못 받은 처지, 실전 무대서 바닥 드러낸 구위… WBC는 명예회복 무대일까 무덤일까

- 캠프 MVP의 배신… 오브라이언 낙마한 대표팀 마운드, 고우석의 부진에 류지현 감독 구상 전면 수정 위기


마이너리그에서 투구 중인 고우석 (출처: 블루와후 구단 SNS) 사진= 펜사콜라 블루와후

야구라는 스포츠는 때때로 가혹할 만큼 정직하다.

투수의 손끝을 떠난 공이 타자의 배트에 박살 나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그간의 노력과 절박함은 한낱 수치로 치환되어 전광판에 박제된다.

2026 WBC 대표팀의 수호신으로 낙점된 고우석(28·디트로이트)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풍경이 바로 그러하다.

▲2026 WBC 대표팀 마무리 후보로 꼽힌 고우석( 출처: KBO SNS)KBO
▲2026 WBC 대표팀 마무리 후보로 꼽힌 고우석( 출처: KBO SNS)KBO

170km/h의 찬사와 54.00의 괴리

지난 1월, 사이판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류지현 감독은 고우석을 향해 "80%만 던져도 170km를 던질 기세"라며 찬사를 보냈다.

캠프 MVP라는 훈장까지 달아주며 신뢰를 보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본 실전 마운드는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고우석의 KBO시절 주요 투구기록(출처: 야구기록실 KB REPORT) 케이비리포트

지난 22일 뉴욕 양키스와의 시범경기.

고우석이 던진 151km의 하이 패스트볼은 싱글A 타자 아리아스의 방망이에 걸려 만루 홈런으로 돌아왔고,

이어 더블A 타자 카스티요에게 다시 3점 홈런을 헌납했다. 0.2이닝 4실점, 평균자책점 54.00.

양키스전에 등판한 고우석. 사진=MLB TV 중계 화면 캡쳐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만루홈런을 허용한 고우석(출처: 뉴욕양키스 홈페이지 캡처)

숫자는 때때로 거짓말을 하지만,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의 궤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문턱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마이너리거들에게 'KBO 구원왕'의 패스트볼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도쿄돔에서 만날 정교한 타자들을 떠올릴 때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든다.

▲2026 WBC 대표팀 마무리 후보로 꼽힌 고우석( 출처: KBO SNS)

'배수의 진'과 '전력 외' 사이의 고독

고우석은 지난 2년간 자신의 도전을 두고 "인생을 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몸담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구단은 사이영 상 수상자 스쿠발이나 베테랑 잰슨의 WBC 차출에는 노심초사하면서도, 고우석에 대해서는 "WBC에 나가는 것이 본인에게 더 큰 기회"라며 사실상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팀의 전력 구상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니, 어디서든 공을 던지며 몸값이나 올려오라는 차가운 계산이다.


절박함이 실력으로 치환되지 않을 때, 선수는 고독해진다.

2월 27일 이후 이어진 추가 등판에서 비록 1.1이닝(2볼넷)을 실점 없이 막아내며 불을 껐다지만, 여전히 구속은 150km 언저리에 머물러 있고 압도적인 구위는 회복되지 않았다.

류지현 감독이 오브라이언의 대안으로 점찍은 '베테랑 고우석'이라는 카드가, 지금은 오히려 대표팀 마운드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수호신의 자격, 숫자가 아닌 '돌'의 질감으로 증명하라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우석은 불안한 시선을 뒤로한 채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WBC 본 무대는 시범경기처럼 '과정'으로 위안 삼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실투가 국가의 운명을 가르고, 선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잔혹한 전장이다.

KBO시절 오승환 후계자로 꼽혔던 고우석

고우석이 던지는 공이 다시 '돌직구'의 질감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류지현호의 뒷문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인생을 걸었다는 그의 말이 수사가 아닌 진심이었다면, 이제는 도쿄의 마운드에서 증명해야 한다.

마이너리거들에게 유린당한 자존심을 일본과 대만의 타자들을 상대로 되찾아오지 못한다면,

고우석 자신이 건 인생의 판돈은 너무나 허망하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고우석의 WBC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뼈아픈 성찰과 생존을 위한 반전 투구여야 한다.

글/구성: 민상현 전문기자, 김PD

#고우석의 KBO통산 기록

출처: KBO 기록실
출처: KBO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