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 조달에 차질이 생겨 관련 비용이 상승해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또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가 둔화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업체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10일(현지시간) 경제전문 매체 CNBC는 이란 사태가 장기화되면 헬륨과 브롬을 비롯해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원소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전했다.
세미애널리시스의 레이 왕 메모리 애널리스트는 “현재까지 영향이 제한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분쟁이 장기화하면 결국 핵심 소재 조달에 차질이 생기거나 조달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이 곧 끝날 수 있다”고 밝히기 전까지 글로벌 증시가 급락했고 반도체주도 동반 매도세에 휩싸였다.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밴에크 상장지수펀드(ETF)는 전날 트럼프의 발언 이후 3.6% 급등했지만 중동 전쟁 이후 약 3% 하락한 상태다.
이란 사태로 복잡하고 정교한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동 국가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카타르는 전 세계에 공급되는 헬륨의 3분의1 이상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열을 외부로 전달하는 데 사용되며 칩의 미세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공정에도 쓰인다. 헬륨을 대체할 실질적인 대안은 없다. 지난 2023년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헬륨 공급이 중단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제조 산업에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 바 있다.
생산 외에도 전략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 중동에서 헬륨을 외부로 운송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콘블루스헬륨컨설팅의 필 콘블루스 대표는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폐쇄될 경우 전 세계 헬륨 시장에서 25% 이상의 공급이 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카타르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는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과정의 부산물로 헬륨을 생산한다. 카타르에너지는 지난주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타격을 받은 이후 이곳 가동을 중단했다.
콘블루스 대표는 “헬륨 생산이 최소 2~3개월 중단되고 공급망이 정상화되기까지 4~6개월이 걸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브롬 역시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소재다. USGS에 따르면 전 세계 브롬 생산의 약 3분의2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서 나온다.
베인앤드컴퍼니 피터 핸버리 기술 부문 파트너는 “핵심 소재에 대한 위험은 제한적이지만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주시하고 있는 것은 헬륨”이라며 “카타르는 주요 헬륨 공급국이며 캐나다와 미국도 대형 공급국”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도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현재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구동하는 데이터센터용 칩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이 같은 에너지 집약적인 데이터센터 대부분을 건설하며 반도체를 대규모로 구매하고 있다.
중동 분쟁 여파로 국제유가는 전날 장중 한때 배럴당 119달러까지 치솟은 이후 거래 마감 전 대부분의 상승분을 반납했다.
모닝스타의 징지에 위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높은 원유 의존도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전력 소모가 3~5배 많은 AI 데이터센터의 비용이 크게 상승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총소유비용(TCO)을 크게 높여 AI 인프라 도입을 제약할 수 있다”며 “전쟁이 장기화하면 AI 메모리 칩 수요가 일부 위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CNBC는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번 사태로 특히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AI 수요 급증과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전 세계 메모리 공급이 AI 프로젝트에 집중되며 메모리 부족과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1, 2위 메모리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개선되고 최근 9개월간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이란 사태로 비용 상승과 수요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MS 황 책임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운영비의 약 절반이 전기료이며 그중 절반가량이 메모리 구동에 쓰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급망 불안으로 메모리 가격이 계속 오르고 에너지 비용도 상승하면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고 반도체 수요가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닝스타의 위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계약을 이미 확보했고 “당분간 생산을 유지할 충분한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AI 인프라 구축이 실제로 지연될 수 있고 장기 계약이 적용되지 않는 범용 D램 제품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D램 가격 약세와 예상에 못 미치는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
위는 또 “전쟁 장기화는 공공요금 상승 등으로 전반적인 생산 비용을 끌어올리고 앞서 언급한 핵심 안정화 소재 부족으로 수율도 낮출 수 있다”며 “여기에 D램 가격 약세가 겹치면 현재 시장이 밸류에이션에 반영하고 있는 높은 마진이 압박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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