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던 중 결정적으로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고 싶었던 문정왕후는
사림파들도 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을사사화 2년 후였던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을 조작합니다.
양재역 벽서 사건은
윤원형의 자작극으로
지금의 강남 양재에는
조선시대의 역이 있었습니다.

이 양재역에 문정왕후와 조정을 비방하는 벽서가 붙는데
이 벽서를 쓴 사람이
이언적과 사림파들 아니냐며

물증도 없이 사림파들을 국문하고
유배 보내고 사약을 내렸죠.
이언적을 변호하는 사림파들이
계속 나왔고
그때마다 문정왕후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이언적 본인은 죽지 않고
평안북도 강계군
저 멀리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후론 학문에 집중할 뿐
정치참여를 하지 못합니다.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일어난 숙청을 정미사화라고 하는데,
통상적으로
1545년에 일어난 을사사화와
1547년 일어난 정미사화를 엮어서 을사사화라고 간주한답니다.

그리고 이 해에 윤원로, 윤원형 형제의 대립경쟁에서
형 윤원로가 패배해
숙청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