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미팅이란 데 나갈 줄은 몰랐지'
한 달 전쯤 4 대 4 미팅에 나갔다. 내 나이는 30대 중반. 이성을 만나기 위한 미팅은 20대 초반에 3번 정도 한 게 전부였다. 대학생이었던 20대 초반에도 가볍게 노는 걸 잘 즐기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재적 연애 상대로 남성들을 물색하기 위해 미팅에 간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허락하기 어려웠다. 미팅이라는 건 십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게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참여했던 미팅 프로그램을 손수 추천해 준 지인에게 "나 같은 진지충이 가도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으로 신청하고 내 발로 걸어간 미팅 자리에 앉아 난 화사하게 웃었다. 서로의 첫인상을 이야기하는 시간에는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는 칭찬도 받았다. 20대 초반보다 훨씬 편안해지고 안정적인 마음 상태와 십몇 년 동안 연마된 사회성 기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 제 직업, 직업은..." 하며 횡설수설 자기소개를 했다. 3년 반 동안 자아성찰과 내적 성장을 도모하는 모임을 진행해 온 만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는데. 같이 신청해서 참여한 여자 지인을 빼고는 그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못 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서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던 생각은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였다. 미팅에 참석한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자신에게 맞는 짝이 있을지를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나는 그 물색의 장에 전혀 동화되지 못했다. 한 걸음 떨어져 수업을 참관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날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남성 분은 내게 "여기 왜 왔냐"고 물었다.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것 같았다. 난 "추천받은 이 미팅 프로그램에 친구가 같이 가 보자고 했는데, '나 그런 거 안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스스로에 대해 만든 틀을 내려놓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내면 아이가 애어른인 여자가 임하는 미팅이란?
결국 난 매칭을 포기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남성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미팅 진행자는 내게 "포기하지 말고 누구라도 선택해 보라"고 적극 권했다. 하지만 난 '여기 온 목적은 이성 만나기 위해 미팅 자리까지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놓아 보내려고 온 거지, 진짜 매칭을 하러 온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미팅에 참여하는 건 용기를 내 스스로에게 허용했지만, 누군가를 콕 집어 선택하고 거절당할 위험 혹은 선택받지 못할 위험까지 감수할 준비는 안 됐던 걸 수도 있다. 마음의 벽을 넘어설 만큼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거나 관심이 가는 사람이 없기도 했다.
20대 초반이나 30대 중반인 지금이나 내가 잠재적 연애 상대들을 탐색하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건 아마도 내겐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게 엄마는 평생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며 불행하게 사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어린 시절 난 엄마가 불쌍했다. 마냥 아이로만 즐겁고 철없을 수가 없었다. 몸과 나이는 아이였지만 정서적으로 어른이 돼야 했다. 내가 엄마의 행복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매사에 진지하고 책임감도 강했다.
성인이 돼서도 연애를 하거나 고급 식당에 가거나 여행 가서 행복한 순간들이 오면 왠지 마음 한 켠엔 '내가 이런 걸 누려도 되는 걸까' 하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지금도 뭔가를 잘 해내고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 없이 즐길 수 있는 것들에 기꺼이 빠져들어 지금 이 순간만 사는 꼬마처럼 티 없고 철없게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부럽다. 이런 내게 주변 사람들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내려놓으라”는 조언을 해줬다. 하지만 날 내려놓고 어린이처럼 순진무구하게 즐긴다는 게 어떤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삶을 통틀어 온전히 어린아이로만 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미없고 진지한 내가 사랑스럽다
30대 초반까지 목표와 성취를 쫓으며 살았던 삶은 몇 년 전에 내려놨다. 하지만 지금도 마치 운동선수처럼, 수행자처럼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산다. 요가와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건강한 베이킹 등을 하면서 말이다. 노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어쩌다 한 번 논다 해도 그게 그렇게 즐거운 건지도 잘 모른다. 한 달 전 미팅을 했을 때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게 어색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꼬마처럼 순수하게 유희와 쾌락을 즐길 자격이 스스로에게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테니까.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사람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내 모습이 싫지 않다. 예전에는 깊은 상처에서 비롯돼 모나거나 부족하게 느껴지는 면모들을 지닌 내가 불쌍했다.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내 모습, 이런 모양으로 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날 이렇게 만든 상처를 남긴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서적으로 엄마를 돌보고 책임지며 빨리 애어른이 된 덕분에 난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깊게 배려할 줄 알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운영하는 웰니스 커뮤니티를 통해 멤버들이 치유되고 자신들이 성장했다고 느끼면서 그 커뮤니티가 3년 반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내 어린 시절 상처와 부모님 덕분이었다.
연애 상대를 찾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며 즐기는 미팅에 몸서리치고, 잘 못 놀고, 내가 부러워 했던 티없는 어린 아이 같은 면모를 죽을 때까지 갖지 못 해도 괜찮다. 어른스럽고, 성숙하고, 책임감 강하고, 재미 없고, 진지한 나도 좋다. 지금의 내가 사랑스럽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는 관점 또한 달라진다. 나의 일부였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상처와 감정, 면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면서 요즘 나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호불호나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희미해 져 가는 걸 느낀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 사람이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전엔 나쁘고, 옳지 않고, 심지어 해롭다고 여겼을 법한 상황이나 사건에서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가 보인다. 날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이야말로 뭔가를 가르쳐 주고, 앞으로 나아갈 계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관계 뿐 아니라 일에 있어서도 나의 주관적인 호불호의 프리즘으로 '이건 아님' 딱지를 붙이지 않으니 이전보다 더 많은 기회와 더 큰 가능성이 흘러 들어온다. 사실 이건 외부에서 나에게 온 게 아니라 지금까지 스스로 막고 있던 걸 드디어 봉인 해제한 것이다. 십 몇 년 간 '미팅 같은 건 안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그었던 한계선을 무너뜨리고, 연애 상대를 찾는 자리를 자신에게 허용한 것처럼 말이다.
Tara
- 자아성찰과 내적 성장을 함께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상처받지 않는 영혼들' 리더
- 요가, 명상 하는 내면 여행자
- 건강 디저트 파티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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