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에서 주연이 된 지주사의 모멘텀을 점검합니다.

지주사는 오랫동안 시장에서 외면받는 종목군이었다. 복잡한 지배구조, 만성적인 순자산가치(NAV) 할인, 자회사의 성장 과실이 지주사까지 충분히 흘러오지 않는다는 불신이 겹쳐 있었다. 자회사 지분가치를 합산한 뒤 할인율을 적용하고 배당 여력만 따지는 방식이 지주사 평가의 기본 공식처럼 굳어졌다.
최근 이 공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중심에는 ㈜LG가 있다. 시장이 LG를 기존 '자회사 지분 보유 회사'가 아니라 인공지능(AI), 전장, 로봇, B2B, 데이터센터 인프라 사업을 그룹 단위로 묶어 보유한 플랫폼형 지주사로 다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당긴 불씨
㈜LG는 이달 1일 전 거래일보다 13.10% 오른 16만5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거래량은 500만주를 넘어섰다. 지난달 15일 종가 12만6000원과 비교하면 11거래일 만에 35.6% 오른 수준이다. 같은 날 LG전자, LG CNS, LG이노텍 등 주요 계열사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매수세가 지주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룹 포트폴리오 전반으로 확산된 셈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기대였다. 황 CEO가 한국을 찾아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과 만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LG주에 매수세가 붙었다. 시장은 회동 자체보다 LG전자와 엔비디아의 로봇·데이터센터 인프라 협력 가능성, LG CNS의 산업 AI 사업, LG AI연구원의 모델 개발 역량을 한꺼번에 반영했다.
LG 관계자는 "지주사에 대한 저평가 해소 흐름이 반영된 측면이 있고 여기에 엔비디아와의 협업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주가 반응도 그룹 전체라기보다 로보틱스, LG전자, 피지컬 AI와 관련된 종목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움직임을 단기 테마성 수급만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는 코스피200 대형주를 대거 매도하면서도 일반 지주사에는 꾸준히 자금을 넣었다. 5월 중순까지 외국인은 코스피200을 87조7140억원 순매도한 반면 일반 지주사는 2조1901억원 순매수했다. 특히 SK, 두산, 한화, CJ, LG, HD현대, 효성 등 주요 7개 지주사에는 1조9286억원이 유입됐다. 일반 지주사 전체 외국인 순매수액의 88.1%가 이들 7개 종목에 집중됐다.
LG 역시 이 흐름에 포함됐다. 같은 기간 LG에 대한 외국인 누적 순매수액은 1078억원으로 집계됐다. SK 6390억원, 두산 5764억원, 한화 3768억원, CJ 1327억원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HD현대 706억원, 효성 254억원보다는 많았다. 반면 기관은 같은 기간 LG를 606억원 순매도했다. 최근 LG 주가 흐름에서 외국인 수급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컸다는 의미다.
외국인 보유 비중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LG의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달 15일 36.79%에서 29일 35.56%, 이달 1일 장 마감 무렵 34.79%로 낮아졌지만 30%대 중반을 유지했다. 주요 지주사 가운데 외국인 보유 강도가 높은 축에 속한다. 이번 상승을 개인 투자자 중심의 단기 테마 매수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지분 보유 회사서 AI 포트폴리오 지주사로
시장의 시선은 지주사 LG가 보유한 그룹 포트폴리오의 성격 변화로 옮겨가고 있다. 과거 LG는 안정적인 배당과 자회사 지분가치를 보유한 전통 지주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LG전자, LG CNS, LG AI연구원 등 그룹 내 핵심 자산이 AI, 전장, B2B, 데이터센터 인프라와 연결되면서 지주사 LG에 대한 투자 논리도 달라지고 있다.
핵심은 LG전자다. LG전자는 올해 1분기 연결 매출 23조7272억원, 영업이익 1조673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3%, 영업이익은 32.9% 증가했다. 생활가전과 전장 사업의 합산 분기 매출은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었다. LG전자가 단순 가전주에서 전장·B2B·AI 인프라 기업으로 재평가되는 구간에 들어선 것이다. LG전자의 사업 재편이 가시화될수록 지주사 LG가 보유한 포트폴리오 가치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 양상이다.
AI 데이터센터 냉각 사업도 LG전자 재평가의 중요한 축이다. LG전자는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데이터센터향 사업 수주가 전년 대비 3배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냉각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LG전자의 냉난방공조와 칠러 사업은 새로운 성장 사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사업이 확대될 경우 LG전자의 기업가치뿐 아니라 지주사 LG의 포트폴리오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LG CNS 역시 지주사 리레이팅의 한 축으로 평가된다. 클라우드, 스마트팩토리, AI 전환 사업을 보유한 LG CNS는 피지컬 AI가 제조와 산업 현장으로 확산될 때 실제 적용을 담당할 수 있는 계열사다. LG전자와 LG CNS가 동시에 주목받은 것은 시장이 LG그룹의 AI 포트폴리오를 개별 계열사 차원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사업 역량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LG AI연구원의 존재도 지주사 LG의 차별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LG AI연구원은 LG경영개발원 산하 조직으로, 그룹 차원의 AI 모델 개발과 계열사 적용을 맡고 있다. 업계에서는 LG AI연구원이 개발한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EXAONE)이 올해 1월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평가에서 1위를 기록한 점에 주목한다. 제조, 전장, 로봇,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보유한 LG그룹 안에서 자체 AI 모델 역량이 결합될 경우 지주사 LG의 포트폴리오 가치는 기존 지분가치 산정 방식보다 넓은 틀에서 평가될 여지가 있다.
수주 및 실적 변수
다만 주가가 실적보다 먼저 움직였다는 점은 부담이다. LG의 올해 1분기 연결 매출은 1조8006억원, 영업이익은 4138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7.0%, 영업이익은 35.1% 감소했다. 상표권·임대수익 감소와 지분법손익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지주사 본체 실적만 놓고 보면 주가 급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 전날까지 급등세를 보였던 ㈜LG는 2일 장 초반 하락 전환하며 전일 상승분 일부를 반납했다.
엔비디아와의 협력도 아직 구체적인 계약이나 실적 기여가 공식화된 단계는 아니다. 회동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실제 협력 범위와 사업화 속도는 확인이 필요하다. AI·로봇 사업의 성장성이 크더라도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의 경우 지주사 할인 해소와 AI 프리미엄이 동시에 붙은 만큼 확인 가능한 성과가 뒤따르지 않으면 단기 급등에 따른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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