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기를 때 사람은 벌레의 몫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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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날에는 꼭 걷기 운동을 하려 한다.
집 밖에도 벌레들은 있지만, 집 밖의 화단에서 기를 때는 뿌리파리나 개미도 벌레들의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잡아먹히기도 하고 영역 싸움에서 져 식물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기도 할 테다.
식물 주변을 거처로 삼는 것도, 다른 벌레들을 잡아먹어서 뜻밖에 그 식물을 지키는 것도 벌레들 몫이지 사람 몫은 아니었다.
그러니 식물을 기를 때 사람은 벌레의 몫을 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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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날에는 꼭 걷기 운동을 하려 한다. 함께 걷는 친구는 화단에서 거의 농사를 짓다시피 한다. 그 친구와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식물 이야기가 나온다. 파프리카, 레몬, 가지, 고추… 그는 올해 새로 어떤 식물을 심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 와중에 그에게는 새 고민이 생겼다. 밖에서 오랫동안 기르던 레몬 나무를 추위 때문에 화분에 옮겨 최근 집으로 들였는데 집에 자꾸 날파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오른 건 뿌리파리였다. 나도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
집에서 식물을 기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벌레다. 실내 공간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분법 중 하나는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라는 위생의 구분이다. 그리고 벌레는 더러운 것에 속한다. 벌레를 죽이는 이유는 단지 벌레가 눈에 거슬려서가 아니라, 더러워서다.
그런데 뿌리파리는 눈에 거슬리거나 더러운 문제를 넘어 식물에게 실제로 위협이 된다. 보통 초파리보다 작은 뿌리파리는 방충망이나 전기 파리채에도 잘 걸리지 않고 심지어 식물의 뿌리를 파먹기까지 한다. 인터넷에 뿌리파리를 검색하면 퇴치법을 찾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친구를 힘들게 한 건 뿌리파리만이 아니다. 그는 집에서 사과를 기르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모조리 실패했다. 물론 사과는 원래 기르기가 힘들고, 나도 싹을 틔운 게 몇 번이 안 된다. 싹을 틔워도 어느 크기 이상으로 자라기 전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죽었다. 친구의 사과를 죽인 건 뿌리파리는 아니었다. 그는 개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물론 밖에서도 벌레가 식물을 해치곤 한다. 친구의 레몬 나무에는 나비 애벌레가 앉아 말 그대로 모든 잎을 갉아 먹었다고 하니까. 그런데 뿌리파리나 개미의 문제는 화분이 집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집 밖에도 벌레들은 있지만, 집 밖의 화단에서 기를 때는 뿌리파리나 개미도 벌레들의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잡아먹히기도 하고 영역 싸움에서 져 식물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기도 할 테다. 거미처럼 식물에는 별 관심이 없고 식물에 접근하는 다른 벌레들에게만 관심 있는 것들이 식물을 지켜주기도 한다.
한때 나는 집 밖에 있는 식물들을 거미가 지켜줄 때 그들이 내 일을 대신해준다고 생각했다. 식물은 내 몫인데 그걸 벌레가 지켜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건 애초에 벌레들 몫이었다. 식물 주변을 거처로 삼는 것도, 다른 벌레들을 잡아먹어서 뜻밖에 그 식물을 지키는 것도 벌레들 몫이지 사람 몫은 아니었다. 그러니 식물을 기를 때 사람은 벌레의 몫을 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깨끗한 것은 집에 있어도 되지만 더러운 것은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제자리에 있지 못한 것은 더러운 것이다. 벌레를 없애 위생을 유지하려는 사람의 일도 사실 벌레의 일이라서, 어떤 의미에서 벌레를 없애는 일이 벌레의 일이기도 할 때 이런 위생의 이분법은 다소간 흔들리기 시작한다. 얼마 전 나는 내 방에서 만난 거미를 데려다가 거실의 어느 화분에 내려주었다.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여기서 함께 지내자는 마음으로. 식물과 함께하는 것은 벌레를 쫓는 일만이 아니라 벌레와도 함께 살길을 찾는 일이었다. 봄이 왔다.
안희제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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