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정원이 나의 정원이 되던 날

부모님이 영주로 귀촌하신 건 7년 전의 일이다. 엄마와 함께 노년을 보낼 지역을 찾아 일년 정도 여행을 다니던 아빠는 산 중턱에 독립적으로 자리 잡은 수더분한 시골집과 그 뒤로 넓게 펼쳐진 땅을 만나 보시곤 바로 이주를 결정하셨다. 이사를 앞두고 시골집 상태를 처음 살피러 내려갔던 날, 아무도 경작하지 않아 허리까지 자란 잡초와 야생화로 가득한 땅을 한참 동안 살피던 아빠의 뒷모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부모님이 귀촌하시기로 정한 시골집을 처음 방문했던 날. 야생화와 잡초밭이었던 뒷동산


올해 초, 우리 부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 을 하며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아빠였다. 오랫동안 활동하던 입양 관련 일을 그만두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셋째 딸이 가까운 곳으로 내려와 정원을 가꾸며 살길 원한다는 말에 무척 반가워하셨다. 자녀와 손주들이 언제라도 찾아올 자연의 품을 만들고 싶어 지난 7년 간 몸을 아끼지 않고 가꿔온 정원이 결국 우리 삶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무척 기쁘셨던 것 같다.


이주를 마치고 안동, 영주, 봉화로 부지런히 땅을 보러 다니는 나를 아빠는 가만히 지켜보셨다. 시골에서 마음에 드는 땅을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땅을 구한다 해도 그곳에 삶을 위한 인프라를 만들어 내는 건 또 얼마나 큰일인지, 낯선 마을에 정착해 원주민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아는 아빠로서는 많은 걱정이 들었을텐데, 한동안 말을 보태지 않으셨다. 야생 상태의 땅을 혼자 찾아다니다 식겁하기도 하고, 맘에 드는 예쁜 땅을 보고 온 날엔 진지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하고, 어딘가 있을 더 적절한 땅을 찾겠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를 지켜보던 아빠가 어느 날 나를 불러 ‘다른 곳을 찾지 말고 이곳에서 시작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오셨다.

손주들의 대장 할아버지는 늘 아이들과 함께 정원일을 하는것을 즐겨하셨다.


아빠의 땀으로 일궈오신 땅이자 당신의 취향이 가득한 정원.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엄청난 정성으로 가꾼 덕에 매 계절 자연의 풍성함을 누리면서도 ‘언젠가 엄마 아빠가 떠나게 되면 너희 중 누군가 이어서 잘 가꿔주면 좋겠다’ 는 아빠의 바람엔 가족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었다. 나 역시 이곳은 가족 모두의 유산이고 아직은 아빠가 건강하시다는 생각, 또한 아빠가 일군 정원을 나의 취향과 계획으로 훼손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여기서 무언가를 시작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해 두해 지날수록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갑작스레 삶을 마무리하는 지인들을 보자니 가족을 생각하며 만든 이곳을 누구의 손에 맡겨야할지 마음이 분주하고 슬퍼진다는 아빠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빠가 없는 이곳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이곳을 책임지지 않으면 결국 다른 이의 터전이 될텐데 그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십년간 우리 삶을 품었던 아파트 공간이 단 세시간만에 해체되어 덩그러니 콘크리크로 남는걸 목격했던 이삿날이 생각났다. 공간은 주인이 생명을 불어넣을 때나 숨을 쉰다는 것을 깨달았던 날이었다. 8년간 살뜰히 가꾼 이 땅도 아빠가 계시지 않게되면 그저 흔한 시골 땅 중 하나가 되고 말겠지. 부모님과 우리 형제,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고향이었던 이곳이 그렇게 사라져도 정말 괜찮은걸까. 그렇다고 이곳을 이어가게 되면 내가 꿈꾸던 정원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땅에서 그 그림이 가능한걸까.

할아버지의 동산을 누비던 어린 손주들이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루이틀 고민하다가 아빠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곳에서 무언가를 일궈가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다른 형제들이 이곳에 꿈꾸는 미래가 있을 수도 있고, 나의 계획에 맞춰 아빠가 가꿔온 정원을 훼손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 전했다. 나의 대답에 잠시 말을 멈추시던 아빠는 ‘네가 진심으로 이곳에서 삶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이곳을 원하는 대로 어떻게 바꾸든 상관없다’고 하셨다. 열 수는 물러선 것 같은 아빠의 대답에 모든 판단이 중지됐다. 이곳이 가족의 고향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어떤 모양이든 괜찮다고 하는 답변을 듣는데 일평생 모든 것을 내주어 낮은 그루터기가 되고도 소년을 반가워하던 나무가 생각났다. 동시에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얻느라 너덜해진 내 모습도 아빠 위로 겹쳐져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

수십 년의 세월과 수만 가지의 감정이 소환된 일주일이 흘렀다. 남편과 오랜 대화 끝에 아빠의 정원에서 꿈꾸던 정원을 일궈가기로 합의했다. 이미 형성된 많은 것들이 있어 꿈꾸던 시작과는 다른 그림이지만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된 이땅에서의 시간을 끌어안고 새로운 미래를 잘 만들어 보자며 마음을 모았다. 하루 만에 뚝딱 만든 화단은 경계가 분명하지만 크고 자연스러운 정원은 그 시작과 끝을 나눌 수가 없다. 오랜 시간 쌓이고 어우러진 모든 요소들이 숲을 이루기 때문이다. 크고 깊은 숲을 일궈가고 싶었던 내게 가족의 시간이 겹겹이 유산으로 쌓인 아빠의 정원이 성큼 다가왔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조화를 이뤄갈지 아직 희미하지만 마음을 포갰으니 하나둘 길이 보이리라 생각한다. 먼 훗날 이 땅을 터전 삼아 살아가게 될 우리 아이들 시대를 바라보며 나도 성실히 나의 삶을 쌓아가 보기로 한다.

*글쓴이 – 이설아
작가 그리고 가드너.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이자 글쓰는 오두막 <온리앳오운리> 주인장.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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