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0세’ 시대, 종말 오나
관건은 ‘비용’…당국, ‘계속고용’ 유도 방침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5명 중 1명이 '노인'인 세상. 단 3개월 남은 올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2025년이면 한국은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18년 처음으로 고령사회가 된 이후 불과 7년 만이다. 한국은 전 세계 유례없는 속도로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학계와 노동계, 산업계 등 각계각층에서 정년 연장을 포함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는 배경이다.
현재 법적으로 보장받는 정년은 60세까지다. 현재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가 63세인 점을 고려하면, 3년의 소득 공백 기간을 버텨야 한다는 얘기다. 일 안 하고 쉬는 노인이 많아질수록 국가 생산성은 저하된다. 이에 정부는 연금 가입 기간 연장과 함께 정년 연장 카드까지 고심하고 있다.
정년 연장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정년 연장으로 경영상 부담을 지게 된 기업에서 신규채용 규모를 줄일 것이란 우려가 대표적이다. 다만 정년 연장과 청년 고용의 상관관계는 학계에서도 명확히 입증된 게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사회적 갈등을 넘어, 실질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왜, 지금 '정년 연장'을 말하나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지금이 정년 연장 논의의 적기"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연금 재정 고갈 문제로, 정치권에서 현재 연금 개혁 논의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9월4일 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59세에서 64세로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연금을 내야 하는 기간이 늘어나면, 그에 맞춰 일하는 나이도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은 올해 산업계의 최대 화두이기도 했다. 완성차 업계와 조선 업계, 금융노조 등은 올해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과 함께 정년 연장을 구호로 내세웠다. 만 60세인 정년을 63~65세로 늘려 달라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대기업 중 올해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를 받아들인 곳은 없다. 다만 현대차는 이번 임금협상을 계기로 정년 연장 관련 TF를 구성해 향후 본격 논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이 머지않아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물론 법적으로 정년 연장을 못 박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체 전체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정년제 계속고용제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년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 950여 곳 가운데 59%가 향후 정년 연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유는 "인건비 부담 증가"가 27%로 가장 많았다.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60세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경우 한 해 약 15조9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2013년 처음으로 법정 정년 나이를 58세에서 60세로 늦췄을 때도 사회적 파장이 상당했다. 정년 연장 적용 시기는 4년 후였지만, 당시 상위 600개 대기업 중 40%가 당해연도 신규채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한 자료가 나왔다(전국경제인연합회). 실제 통계에서도 정년 연장과 신규채용 간 상관관계는 드러난다. KDI정책포럼이 발간한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자료에 따르면, 고령자 1명의 정년을 연장했을 때 청년(15~29세) 고용은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정년 연장이 세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년제와 관련해 "청년층이 대기업·공공기관을 선호하는 점에서 정년 연장은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청년층 일자리와의 관계를 고려하고 노사가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년 연장하면 신규채용 감소'의 오해와 진실
다만 학술적으로 접근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단순 시계열 분석이 아닌 청년층 인구 감소 등의 영향까지 고려하면, 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 간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정년 연장의 고용효과에 대한 소고'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정년 연장 이후 총고용 규모는 오히려 증가했다. 또 15~29세, 30~44세 청년층 근로자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환웅 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2013년 입안된 60세 정년 연장이 사업체의 총규모와 연령대별 고용 규모에 미친 영향을 추정한 결과"라며 "연장에 따른 중장년층의 고용 증가가 꼭 청년층의 고용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청년층과 고령층은 대체관계가 아닌 보완관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세대 갈등의 주체인 청년들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최근 발표된 정년 연장 관련 여론조사에서 20대 청년들도 정년 연장에 과반 이상 동의했다. 지난 5월 나온 NBS 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수행, 5월27~29일, 전국 1004명 대상 조사)에서 20대의 동의율은 82%에 달했다. 전체 평균 86%에 견주는 수준이다. 앞서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세계일보 의뢰, 1월29~30일, 전국 1004명 대상)에서도 정년 연장에 20대는 70%, 30대는 71% 동의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장년층인 40대(67%)와 50대(66%)의 동의율보다 높았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정년 연장 필요성에 공감하는 비율은 높은 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령화와 연금 관련 시민 인식에 대한 10개국 비교 연구'에 따르면, "퇴직 연령을 높여야 한다"에 동의한 한국인 비율은 41.2%로, 10개국 평균 14.8%를 훌쩍 넘겼다. 18~34세에서도 36.1%가 퇴직 연령 상향에 동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어떻게'…정년 연장·계속고용 투트랙
관건은 '방법'이다. 빠른 고령화·저출산 문제로 정년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사회적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결국 논의의 초점은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연봉이 높아지는 호봉제 구조를 타파하고,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 구조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게 경영계의 시각이다.
대안으로는 '계속고용'이 거론된다. 퇴직 이후 선택적 재고용을 보장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한편 노동의 지속 가능성을 늘리는 방안이다. 선례로는 가까운 일본의 사례가 언급된다. 2007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00년부터 계속고용을 제도화했다. 법정 정년 나이를 늘리는 대신, 근로자가 희망할 경우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의무화한 게 골자다. 기업과 근로자는 60세 정년 이후 근로조건을 다시 정해 재고용을 선택할 수 있다.
정부도 일단은 정년 연장을 장기적 과제로 두되, 계속고용 제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관련 논의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경사노위를 통해 여론을 수렴해, 하반기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할 예정이다. 경사노위 측은 "정치권이 연금 개혁에 적극적인 만큼 경사노위도 계속고용에 대해 마냥 논의만 할 수는 없다"며 "내년 초에는 계속고용·정년 연장 관련 1차 결과물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은 계속고용 관련 지원책을 확대할 전망이다. 2020년부터 시행된 '계속고용 장려금' 제도는, 정년 연장이나 폐지, 재고용 형태로 중장년층 근로자를 계속고용한 중소·중견기업 사업주에게 근로자 1명당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당초 계속근로를 희망하는 전원을 재고용할 경우에만 최대 3년간 지원됐지만, 희망자 중 일부만 재고용해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2025년 세제 개편안에 담겼다.
일각에서는 여권이 계속고용 대신 정년 연장을 '정면 돌파'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최근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에서 정년 연장 관련 자체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찬성 여론이 매우 우세하게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여의도연구원 측은 대외비를 이유로 정확한 여론조사 결과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를 기반으로 한동훈 대표를 주축으로 여당에서도 정년 연장 논의를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격차해소특별위원회는 이달 중순부터 정년연장 관련 논의를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임금피크제도 '고작' 5분의 1 도입…갈 길 먼 '고통 분담'
정년 연장이든 계속고용이든,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수록 사회적 진통은 커질 전망이다. 불이익 없이 정년을 보장하라는 노동계와 비용 부담을 호소하는 경영계 간 이견을 좁히기가 쉽지 않아서다.
노동계 구호는 명확하다. 정부의 계속고용 확대 방침은 '꼼수'라며 법정 정년 연장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도 폐지하거나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금도 국민연금 수급 시기까지 소득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정년 연장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무조건적 정년 연장엔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는 이상 정년 연장으로 기업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업종과 사업장마다 상이한 상황을 고려해 일률적인 법정 정년 연장보다는 임금체계 개편, 고용 유연성 강화 등으로 재고용을 포함한 계속고용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간극은 임금피크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임금피크제는 2013년 법정 정년 연장과 동시에 논의된 조치로, 일종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고안됐다. 2015년 모든 공공기관을 상대로 임금피크제 도입 권고가 내려졌고, 민간기업의 경우 자율에 맡겼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21.5%에 그친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도입 비율은 51.0%로 높은 편이지만, 이마저도 2019년 54.1%에서 낮아지는 추세다.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조치이지만 근로자 입장에선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대표적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정년 연장 논의에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동일한 근로 조건하에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며 "유연한 임금체계를 전제로 노사 간 대화로 협의를 이뤄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올해 초까지 계속고용 관련 논의를 담당했던 경사노위 내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 소속 공익위원이었다.
김 위원은 "일본의 사례를 볼 때 퇴직 후에 재고용하는 경우에는 퇴직 전의 근로 조건을 그대로 가져갈 필요는 없기 때문에, 계속고용이 법정 정년 연장에 대한 일종의 절충안"이라며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굉장히 급한 수준이기 때문에, 종국적으로는 노사 간 입장차도 좁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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