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이제 어디로 갈까[서중해의 경제 망원경](7)

2022. 11. 3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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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미래를 추측할 때면 영국의 과학사회학자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이 제기한 질문을 떠올린다. 세계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큰 논쟁의 하나로 ‘서유럽에서 발생한 과학혁명이, 그리고 산업혁명이 왜 중국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다. 학계에서는 ‘니덤 질문(Needham question)’이라고 하는데, 질문 자체가 너무 광범위해 여러 학문적 관점에서 다양한 대답이 등장했다. 최근에 작고한 미국의 역사학자 네이선 시빈(Nathan Sivin)은 “과학혁명은 서유럽에서 발생한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인데, 이 사건에 대한 반사실적 추론을 중국 역사에 적용하는 것은 방법론적 오류”라고 오래전에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논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질문 자체가 과학발전과 기술혁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10월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 베이징=연합뉴스


니덤이 바라본 중국의 과학과 문명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2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조지프 니덤은 인도 콜카타에서 미군 군용기를 타고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 남부 쿤밍에 도착했다. 그의 임무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중국의 과학계와 대학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주중 영국대사관 참사관이 그의 공식 직함이었다. 쿤밍의 영사관에 잠시 머무르면서 처음으로 접하는 중국인들의 생활상을 그는 습관적으로 메모로 남겼다. 정원사가 접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영국에서 하는 방식과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서양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농부가 밭을 가는 모습, 다리를 만드는 기술, 철을 녹이는 방법, 중국인 의사가 건네주는 환약, 중국의 공성용 대포, 중국에서 댐과 벽돌과 마구를 만드는 방법 등 많은 것이 서양과는 다르지만 나름의 방식에 따라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기술이라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1946년 4월 영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니덤은 일본이 점령하지 못한 중국 곳곳을 다니면서 중국 과학기술의 현장을 조사하고 수십t에 이르는 관련 문서를 외교 행낭을 통해 케임브리지대학의 연구실로 보냈다.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니덤은 생화학자로서 연구는 뒤로하고, 중국의 과학기술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정리하는 데 여생을 보냈다. 뼛속 깊이 사회주의자였던 니덤은 중국이 서방에 멸시를 당하는 풍조를 거슬러, 중국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서양문명 이상의 업적을 이뤄냈음을 확실한 증거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 결과가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다.

니덤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은 여러 사상적·사회정치적 요인들을 망라한다. 공동체적 화합을 지향하는 유교 사상에서는 근대적 사회주의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자연과의 합일을 중시하는 도교 사상은 근대적 자연주의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유교와 도교 사상이 자연에 대한 객관적 지식 축적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관료제는 방대한 제국의 효과적인 통치에는 기여하지만, 유교 경전을 외우는 과거제에서는 정답이 경전 속에 있기 때문에 경전 밖의 사상을 제시하는 자는 배제된다. 나중에 학자들이 지적한 사안인 사유재산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제국 체제는 관료제와 함께 부패의 온상이 된다는 한계가 있다.

니덤 자신의 대답에서 경제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적은 ‘상인의 활동과 이윤 동기가 기술의 확산에 차이를 가져온다’는 대목이다. 유교사회에서 상인은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부의 축적은 사회적 가치로 존중받지 못했다. 사회경제체제의 한 주체로서 힘을 갖지 못한 상인계급의 위상은 자본주의체제로의 이행에 동력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부의 축적을 현세에서의 소명으로 긍정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 의식이 자본주의의 발흥을 촉발했다고 본 막스 베버의 생각과 궤를 같이한다. 유럽에서 이익공동체였던 상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치권을 확보하고자 한 데서 도시가 발달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러한 움직임이 없었던 중국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이 사회체제의 변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니덤은 중국이 마치 생명체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듯이 사회 전체로 항상성을 유지해온 유기체적 사회였고, 서유럽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체제로 이행한 사회였다고 대비시킨다. 중국이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유럽이 갑자기 이전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23일 공산당 총서기로 재선출된 뒤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함께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입장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베이징=연합뉴스


오늘날의 관점에서 니덤의 주장을 재해석하면,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역사는 발명과 창조의 역사로는 눈부시지만, 이 역사는 사회경제체제 변화와는 무관하다. 중국은 나라의 규모가 크고 인재들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출현했기 때문에 발명과 창조성에서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이들 발명이 사회경제적 체제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부의 축적과 상업 활동이 존중받지 못하면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사회경제적 체제 자체가 새로운 경제활동에 맞춰 변화하지 않았다. 새로운 방식의 경제활동은 어느 시대에나 등장한다. 경제적 힘은 체제를 변화시키거나, 경제적 힘이 체제 내에서 한정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역사에서는 후자가 더 일반적이었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사회정치체제를 경계로 경제적 힘은 한정됐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은 과학기술의 힘이 사회·경제·정치 체제변화로 이어진 결과를 총칭한다. 니덤이 밝혔듯이 중국에서 먼저 발명된 인쇄술은 서유럽에서는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 성서가 보급되면서 문해력이 높아졌고, 과학적 사고의 바탕이 됐다. 중국에서 발명한 화약과 나침반이 유럽에서는 전쟁과 항해에 사용되고 이로 인해 세계 경제지도에서 대변화가 초래됐다.

중국의 미래와 디지털 경제 이 지점에서 중국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자. 디지털 경제로 대변되는 새로운 방식의 경제활동이 어디까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서 수용될 수 있을까. 분권화되고 개인화된 디지털 경제활동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서 어디까지 번창할 수 있을까. 디지털 경제가 발산하는 체제변화의 힘을 현 체제가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을까.

이들 질문은 같은 내용을 다소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무엇보다 다음의 두가지 사안이 관건일 것이다. 현재의 지배체제가 국민이 원하는 경제적 보상을 제대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지배체제가 부패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고 정당성을 계속해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현대사에서 개방 이래 고도성장은 인민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는 기존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반이었다. 성장이 부진하면서 경제체제 이곳저곳에서 파열음이 발생했다. 이와 함께 체제의 부패가 심화되면 기존의 사회경제체제로는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새로운 왕조가 등장해 지배계층의 교체가 이뤄지지만, 체제는 온전하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에서 일관되게 이어온 흐름이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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