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⑪ 극한직업-코미디 그 이상의 ‘미학’

KBS 2025. 11. 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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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한직업', 장르를 뛰어넘다

1989년 할리우드 직배 체제 도입 이후 한국 영화는 생존을 위해 산업적 체질 개선과 장르적 실험을 병행해 왔다.

1992년 영화 '결혼이야기'를 시작으로 한 기획 영화 시대를 거쳐, 2003년 영화 '실미도'가 첫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한국 영화는 더 이상 문화적 약자가 아닌 독립된 산업이자, 예술의 복합체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30여 년간의 진화 흐름 속에서 2019년 1월 개봉한 이병헌 감독의 영화 '극한직업'은 그 성숙의 한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영화 '극한직업'은 형사들이 마약 밀매 조직을 잠복 수사하기 위해 치킨집을 창업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플롯은 수사물의 클리셰를 유쾌하게 전복하며, 노동과 유머, 자영업과 경쟁이 공존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단면을 반영한다.

이 영화가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한국형 상업영화 시스템의 완성도, 코미디 장르의 예술적 성취 그리고 감독 세대의 역량과 성숙이 고르게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극한직업’(사진 : CJ ENM 제공)


■ '산업화 X 시스템'이 만든 '천만의 기록'

영화 '극한직업'은 약 6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중간 규모의 영화로 손익분기점은 230만 명이다.

그러나 영화는 누적 관객 1,620만 명을 기록하며, 영화 '명량' 이후 한국 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이는 스타 파워나 대규모 시각효과에 의존하지 않고도 시나리오의 힘과 대중적 감각의 정교한 조율만으로 큰 파급력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은 CJ ENM이 구축한 '제작-배급-상영' 구조가 효율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대기업 중심의 일원화된 시스템이 작품의 마케팅과 상영 전략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흥행의 모든 요인이 구조적 시스템만으로 설명된다는 것은 아니며 영화 자체의 장르적 완성도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유머의 확산 역시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형 코미디 감각이 산업의 언어로 확장된 문화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치킨인가"라는 대사가 밈으로 확산한 현상은 관객의 일상 감각과 영화의 대사 구조가 자연스럽게 결합한 결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에서 다섯 형사가 잠복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운영한다는 설정은 한국 사회의 노동과 생존의 구조를 은유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유도했다.

영화 속 마약반 형사들이 ‘정의 구현’보다 ‘해고되지 않기 위해 일하는 존재’로 그려진 점은 2010년대 한국 사회의 자영업자와 경쟁 등의 키워드를 반영한 상징적 장치로 작용했다.

순제작비 65억 원의 중간 규모의 영화가 스크린 점유율 55% 이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작품 경쟁력 외에도 배급력, 상영 망 장악력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된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 기록은 한국 영화 산업화의 성과이자, 동시에 수직계열화된 시스템이 만들어낸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영화 ‘극한직업’(사진 : CJ ENM 제공)


■ 장르의 전복, 그리고 '일상 코미디'의 미학

무엇보다 영화 '극한직업'의 예술적 성취는 코미디 장르에 대한 통념을 새롭게 정의했다는 데 있다.

이병헌 감독은 슬랩스틱이나 개그 중심의 웃음이 아니라, 상황적 긴장과 리듬감 그리고 인물 간 대화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유머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고 반장(류승룡 분)이 마 형사(진선규 분)에게 "너무 많이 튀기면 안 된다"라고 하는 장면에서 마 형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치킨을 더 튀기는데, 이는 대사보다 '멈칫하는 리듬'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장 형사(이하늬 분)와 영호(이동휘 분)가 말다툼하는 장면에서도 말보다 서로의 표정과 타이밍의 충돌로 웃음을 유발하는데 이는 웃음은 대사가 아닌 관계의 틈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는 누가 웃기는가보다 누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고 반장(류승룡 분)의 진지함 대 장 형사(이하늬 분)의 현실적 냉소, 마 형사(진선규 분)의 폭주 대 영호(이동휘 분)의 눈치, 재훈(공명 역)의 순진함 대 팀 전체의 피로감 등 그들이 만들어낸 리액션과 타이밍을 웃음의 코드로 사용한 것이다.

결국 인위적 웃음이 아니라, 인물 간의 정서적 거리, 말의 템포, 리액션과 타이밍이 맞물려 탄생한 관계적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이병헌 감독은 이러한 호흡의 유머를 통해 코미디의 장르를 단순한 개그가 아닌 집단적 리듬과 인간적 온기로 끌어올렸다.

또한 이 감독은 코미디 작가 출신답게 언어의 속도와 호흡의 리듬감을 정교하게 설계한다.

그의 코미디는 조롱과 과장이 아닌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 관객은 형사들의 좌충우돌을 보며 웃지만, 그 웃음의 저변에는 나 역시 저들과 다르지 않다는 정서적 일체감이 깔려 있다.

이것이 바로 이병헌 감독이 구축한 한국형 리듬 코미디의 미학이며, 이후 동시대 작품들이 이 리듬을 계승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극한직업’(사진 : CJ ENM 제공)


■ '성숙'과 '전환', 그 경계에서

영화 '극한직업'은 단지 흥행 기록을 세운 작품이 아니라, 1989년 직배 체제 이후 30년간의 한국 영화 산업 발전사가 만들어낸 완성형 상업영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OTT 중심 구조로 급변하기 직전, 극장 산업이 누릴 수 있었던 마지막 황금기의 상징이기도 했다.

영화는 거대한 담론이나 미학적 실험 대신, 웃음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감정으로 시대를 비췄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는 한국 영화가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과 서사,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응축되어 있다.

영화에서 코미디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피로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유머의 철학’으로 기능한다.

이 점에서 영화 '극한직업'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웃음의 윤리를 품은 사회적 텍스트로 읽힌다.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동시에 자신의 삶을 그 안에 투영한다.

이병헌 감독의 연출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 많은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다.

결국 이 영화는 ‘웃음’이야말로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인간의 마지막 존엄이자 힘임을 일깨운다.

이병헌 감독의 영화 '극한직업'은 산업화된 영화가 어떻게 인간적인 온기를 되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적 해답이자, 한국 영화사에서 ‘성숙과 변곡’을 동시에 상징하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 영화 '극한직업' 이야기

영화 ‘극한직업’(사진 : CJ ENM 제공)

하나,
영화 '극한직업'은 한국 코미디 장르 중 최고 흥행작이다. 이전까지는 1,281만 명을 동원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이환경, 2013)이었다.

둘,
이병헌 감독은 영화 '과속스캔들'(강형철, 2008)의 각색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셋,
영화 속 '수원왕갈비통닭'은 영화 개봉 2년 전, 수원 남문 통닭 골목의 어느 가게에서 신메뉴로 출시했다 사라졌다. 영화의 흥행 이후 재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다.

글 : 영화평론가 양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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