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O 리포트] 세무당국만 혜택받는 해약환급금준비금제도 개선

해약환급금준비금은 주주도 정부도 아닌 계약자 몫

금리하락 리스크관리 강화등 대비 지급여력 지켜야

회계(Accounting)는 객관적 사실을 숫자로 표현하는 당파성 없는 가치 중립적 소통수단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교과서적으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회계의 목표라지만 현실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회계제도가 영향을 받고 경제적 실질이 뒤틀리기도 한다. IFRS17 도입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이슈가 드러나고 현실의 요구를 반영해 조정하는 과정이 여전히 진행중이다.

새로운 회계제도 시행 이후 가장 큰 논란은 회사 실질이 그대로인데 순이익이 경이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순이익은 급증했는데 정작 법인세 납부액은 급감하고 배당가능이익도 늘지 않았다. 최근 대규모 세수부족으로 불편한 세무당국과 전방위로 ‘밸류업’ 정책을 추진 중인 금융당국의 뜻에도 어긋나는 상황이 연출되며 논란이 더 확산됐다. 문제의 원인으로 ‘해약환급금준비금’이라는 신설 계정과목이 지목되고 개선 논의가 진행돼 왔다.

지난달 26일 금융위는 ‘제3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자본건전성(K-ICS비율)이 일정수준 이상인 보험사를 대상으로 ‘해약환급금준비금’의 적립부담을 완화해주기로 결정했다. 9월30일 보험사 재무담당임원을 소집해 변경할 내용을 공유했다고 한다.

2024년에는 K-ICS비율(‘경과조치전 기준) 200%를 초과하는 보험사의 경우 현행대비 ‘해약환급금준비금’을 80% 수준만 쌓도록 규정화한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매년 10%포인트씩 낮춰서 2029년은 K-ICS비율 150% 이상을 유지하면 현행기준 ‘해약환급금준비금’의 20% 정도를 배당재원으로 활용하고 법인세도 납부하는 것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올 해 안에 보험업감독규정을 개정해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기준을 변경하면 보험사의 배당여력이 확대되고 이연법인세 납부시기 조정으로 정부의 세수도 증대될 것으로 금융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2023년을 기준으로 금융위가 추계한 제도개선 효과는 보험사의 배당가능이익이 3조4000억원 증가하고 법인세 세수는 9000억원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했다.

금융위의 기대대로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기준을 완화하면 보험사의 배당여력이 늘고 정부 세수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보험계약자는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다. 보험 계약자와 보험사 주주, 세무당국간에 이해상충이 발생한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보험사의 지급불능 상황에 대비해 IFRS17 도입 과정에서 계약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회계적 장치다.

IFRS17에서는 원가부채 기준의 해약환급금보다 시가평가 부채가 적어질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경영상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회계제도가 바뀌면서 보험사 이익이 크게 증가해 배당 확대 등 현금유출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만들어진 안정장치가 ‘해약환급금준비금’ 계정이다.

원가와 시가의 차액을 법정준비금(해약환급금준비금)으로 적립해 상법상(462조) 배당재원에서 제외하는 대신 세법상 손금산입을 통해 법인세 납세시기를 이연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해약환급금준비금이 증가하면 계약자 권리보호는 강화되지만 보험사 주주와 세무당국은 불편해진다.

회계제도 변경을 기점으로 전체 보험사 당기순이익은 2022년 9조2000억원에서 2023년 13조 4000억원으로 45%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납부한 법인세는 2022년 3조4000억원에서 2023년 8000억원으로 오히려 76% 이상 줄었다. 국가적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기획재정부와 세무당국이 주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인은 신계약이 증가할수록 해약환급금준비금이 늘고 법인세 손금산입 규모도 덩달아 커져 당기순이익 증가 효과를 거의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보험사 전체 해약환급금준비금이 2022년말 23조7000억원에서 2023년말 32조2000억원으로 1년만에 8조5000억원 증가했다. 2024년 6월에도 38조5000억원으로 올 해 상반기에만 6조3000억원 늘었다.

금융위원회 김소영 부위원장은 자본안정성이 확보된 회사를 대상으로 ‘밸류업’ 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배당여력 확보와 당기순이익에 상응하는 납세기준 합리화를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를 변경하는 이유로 제시했다. 하지만 상충하는 세가지 정책적 지향점 중에서 금융당국의 내심은 세수를 증대하는 쪽에 더 무게 중심이 기울어 있는 것 같다.

보험사들이 올 해 결산에서 해약환급금준비금의 20%를 배당가능재원으로 활용하려면 K-ICS 비율 200%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K-ICS비율 200%를 넘는 보험사들은 많지 않다. 더구나 자본이 튼튼한 우량 회사들은 이미 충분한 배당여력을 보유하고 있어 제도변경 효과는 크지 않고 오히려 세금부담만 커질 수 있다.

2024년 6월 기준 K-ICS비율 200%를 넘는 생보사는 삼성생명 201.5%, 신한라이프 235.2%, KB라이프생명 299.2%, 메트라이프 359% 등을 포함해 7개사 정도이고 손보는 삼성화재 278.9%, DB손보 229.2%, KB손보 202.7%, 메리츠화재 224.8% 정도이다.

하지만 K-ICS 비율 200% 이하의 다수 보험사 중에서 현대해상 한화생명 동양생명 등 배당확대 니즈(Needs)가 큰 회사는 오히려 준비금 제도변경을 활용하기 어렵다. 특히 리스크측정제도 강화와 금리하락이 본격화되면 K-ICS비율 관리가 쉽지 않고 배당정책의 일관성 유지도 어려워지는 가운데 법인세 관련 현금흐름 변동성만 커질 가능성도 있다.

모든 경제규칙의 변경은 기존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회사의 실질은 변함이 없는데 회계제도 변경으로 드러난 계약자의 권익을 보험사 주주와 세무당국이 나눠가지는 힘겨루기로 보여진다. 최후의 승자는 법인세 징수액을 늘려가는 세무당국이 될 것 같다.

허정수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