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저출생에 거침없는 쓴소리…'폐쇄적' 한은이 변신한 이유는
[편집자주] 남대문이 시끌벅적하다. 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한국은행은 정책금리 조정이라는 전통적 책무 외에 여러 사회 구조개혁 문제에도 목소리를 낸다. 사교육 문제나 최저임금 차등화처럼 중앙은행이 내놓기 어려운 도발적인 정책 제안도 거침없다. 한은의 달라진 행보를 두고는 장기적으로 우리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와 업무 영역을 넘어선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한은의 변화와 내외부 평가, 정책 실현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한국은행이 달라졌다.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조용하고 폐쇄적인 분위기 탓에 수년간 따라다니던 '한은사(韓銀寺)'라는 꼬리표는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최저임금과 사교육, 거점도시 개발 등 다양한 구조개혁 문제에 목소리를 내면서 '싱크탱크'로서의 면모를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의 책무를 벗어난 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한은은 오히려 논란을 즐기는 모양새다. 배경에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을 넘어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민감한 정책 제안으로 사회 문제 공론화를 촉진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16일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가 취임한 2022년 4월 이후 나온 'BOK 이슈노트' 보고서는 총 94건이다. 'BOK 이슈노트'는 한은(BOK·Bank of Korea)의 조사연구 보고서 중 하나다. 이 총재 취임 이전 3년 평균 17건이었던 이슈노트는 취임 이후 36건으로 두 배가 됐다.
건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주제도 사회 전반으로 넓어졌다. 물가와 고용, 금리, 환율 등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관심사에 국한하지 않는다. 해묵은 경제·사회문제 등 구조개혁이 필요한 부분에서 과감하게 목소리를 낸다.
지금까지 나온 보고서 주제들만해도 △저출생·고령화 △거점도시 중점개발 △대입제도 개편안 △은퇴연령 연장 △외국인 돌봄서비스 △최저임금 차등화 △농산물 수입 개방 등으로 다양하다.
이 총재는 지난달 27일 한은의 교육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는 심포지엄 현장에서 "한은이 장기적 구조개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기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이 문제들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구조적 문제들이 수십년간 누적돼오면서 통화정책 같은 단기 거시경제 정책에도 선택을 제약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저임금 차등화나 대입제도 개편안 등은 중앙은행에서 내놓기 어려운 파격적인 제안들이다. 최저임금 차등화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에는 노동계 반발도 거셌다. 한은 앞에서 유례없는 노동계 시위가 벌어졌다. 높은 물가수준을 안정시키기 위해 농산물 수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직접 나서 "(한은은) 농업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라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한은은 외부의 비판이 오히려 반갑다. 당장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논쟁거리를 던져 사회적으로 공론화를 시키는 것이 '한은표 보고서'의 일차적 목표다. 여러 관점에서 논의를 거쳐야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또 한은은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보다 중립적인 분석과 정책 제언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를 위해 이 총재는 직원들에게 비판을 두려워 말고 '각이 선' 결론을 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구조개혁과 관련된 보고서를 준비할 때는 이 총재가 수시로 진행 과정을 보고 받고 실무진과 활발한 피드백도 주고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양한 사회 문제에서 이슈를 선도한다는 점에서 내부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은의 변화된 역할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은 연구 역량도 있고 우수한 인재가 모여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여러 사회 현안을 연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도 지역 경제나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보고서로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용이나 교육 보고서도 모두 경제학 방법론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주현 기자 na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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