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대머리 되면 어떡하지'..두려움이 우울증까지

한겨레 2022. 9. 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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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탈모치료제와 우울증
잘나가는 광고회사 직원 준우씨
친척 어른 줄줄이 대머리에 깜짝
과도한 우려에 발모제 복용한 뒤
호르몬 변화로 우울증 진단 받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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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씨는 30대 초반 남성으로 결혼한 지 1년 된 신혼입니다. 광고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같은 업계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고 올해 안에 아기를 가질 계획이 있습니다. 그는 회사 내에서 아이디어가 좋고 활력이 넘친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번에 준우씨네 회사에서 큰 광고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어 준우씨는 그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추석이 되어 준우씨는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가족·친척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준우씨의 아버지는 원래 대머리였지만 작은아버지 세분이 모두 완전히 대머리가 되어 계셨습니다. 세분 모두 옆으로 빗어 넘긴 머리로 두피를 겨우 가리고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점은 사촌 형들도 한 사람씩 탈모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준우씨의 눈에는 빛나는 머리들만 보였습니다. 이러다가 자신도 대머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습니다. 사촌 형에게 물어보니 몇년 전부터 샤워를 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은 지금도 발모제를 복용 중이라고 했습니다. 준우씨도 왠지 형만큼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발모제 효과는 봤는데

준우씨는 탈모 치료를 받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담당 의사는 준우씨의 두피를 기계를 써서 자세히 진찰하고 난 뒤 현재 탈모 상태는 아니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준우씨는 가족들의 대머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꼭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애원했습니다. 결국 준우씨는 ‘피나스테리드’ 성분의 발모제를 처방받게 되었습니다. 복용 뒤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고 더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준우씨는 만족했고 매일 꾸준히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한달 정도 뒤부터 준우씨는 이전보다 기분이 처지고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읽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멍한 느낌이 지속되었습니다. 팀장님께 일이 너무 늦어진다고 꾸지람을 듣기도 했습니다. 퇴근 뒤에는 항상 피트니스 센터에 들러 운동을 했었는데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준우씨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의욕이 심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회사에서 진행하던 대형 광고 프로젝트가 그만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회사 분위기가 암울해지고 연말 인센티브도 올해는 없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준우씨는 프로젝트가 잘 안된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직장에서 동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자신을 비난하려고 수군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희망퇴직 이야기가 나오자 준우씨는 자신이 그만두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적인 욕구와 성기능도 많이 감퇴되어 아이를 가지기로 했던 계획도 없었던 일로 되어버렸습니다.

준우씨는 마치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어 회사 근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검사 결과 준우씨는 우울증으로 진단이 되었습니다. 특히 죄책감이 심했는데 직장에서 일이 잘못된 것, 아내가 회사 다니느라 힘든 것, 부모님이 아프신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괴로워했습니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하면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치고 들어와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자신이 없어지면 이런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점점 빠지고 있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준우씨의 우울증이 ‘피나스테리드’ 성분 발모제를 복용한 뒤 발생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전에 준우씨는 활동적인 편이었고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피나스테리드 성분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모낭에서 탈모의 원인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라는 물질로 바뀌는 것을 막게 됩니다. 이러한 호르몬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에게서 우울증이 발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45살 미만 탈모제 부작용 주의해야

2020년 11월 미국 피부의학 저널 <자마 피부과학>(JAMA Dermatology)에 발행된 논문을 보면, 전세계에서 피나스테리드 발모제를 사용한 3282명의 탈모 환자를 분석해보니 45살 미만에게서 우울증·불안증·자살충동이 증가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임상정신약물학회지에 2021년 발표된 논문을 봐도, 피나스테리드 약물 사용 환자의 3.33%에서 우울 증상이 발생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환자의 2.54%와 비교해서 1.31배 높은 것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피나스테리드 성분 약물 복용 뒤 우울한 기분이나 우울증, 자살 생각이 발생하는 환자를 상대로 정신학적 증상을 관찰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만약 환자에게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피나스테리드 투여를 중단하고 의료 전문가에게 상담해야 한다는 권고도 하고 있습니다.

발모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민감한 사람에게서는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약물 복용 후에 이전보다 심하게 우울해지거나 의욕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정신의학 전문의의 평가가 필요합니다. 발모제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탈모에 대해서 지나치게 절망적으로 생각하면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지며 우울증과 연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머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바뀌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대머리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개성이 있고 매력이 있다고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머리를 감추고 고치는 데 드는 사회적인 비용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도 탈모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없애야 합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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