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글라데시, 산업화의 디딤돌을 놓다
1971년 독립 이후 장기간 최빈국의 굴레에 있던 방글라데시는 수출 기반이 약하고 제조 역량이 축적되지 못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여러 국가의 무역 지원에도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데 실패하던 시기에 한국이 생산기지 구축과 기술 협력을 결합한 방식으로 의류산업의 성장 동력을 심었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봉제·의류 분야에 ‘첫 번째 공장’과 ‘첫 번째 숙련 인력’이라는 임계치를 만들어낸 것이 전환점이 됐다.

‘공장만 짓지 않는다’ 인력부터 키우다
한국은 방글라데시 청년 130명을 부산으로 초청해 6개월간 공정·품질·납기·안전의 전 과정을 교육하며 숙련 인력을 먼저 양성했다. 이 교육은 재단·봉제·프레스의 기술뿐 아니라 생산관리·QC 도구·표준작업서 작성 등 관리 역량을 포함해 현장 운영의 뼈대를 세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력이 돌아가 바로 OEM을 기동할 수 있도록 장비 표준, 라인 밸런싱, 물류 흐름까지 ‘세팅된 노하우’를 패키지로 전수했다.

OEM 가동, 글로벌 수요 사슬에 편입
교육생들이 복귀한 뒤 현지 공장은 OEM 형태로 글로벌 브랜드 물량을 수주하며 국제 품질·납기 기준을 실전에 맞춰 학습했다. 노스페이스·파타고니아 등 40여 브랜드의 주문을 수행하면서 라인 전환 효율, 불량률 저감, 시즌 피크 대응 같은 고난도 운영 과제가 반복적으로 해결되었다. 초기에 외부 의존으로 보였던 OEM은 사실상 ‘세계 시장의 품질·관리 표준을 현지화’하는 통로로 작동했다.

규모의 경제와 생태계, 수출 2위로 도약
OEM 확장과 함께 원단·부자재·염색·검사·포장 등 연관 업종이 붙으면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소싱·물류·통관의 경험이 축적되자 리드타임이 단축되고, 바이어와의 직거래·장기계약이 늘며 가격 협상력도 강화됐다. 그 결과 의류 수출이 전체 수출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주력 산업으로 성장했고, 대규모 고용과 외화 획득을 통해 국가경제의 기반을 바꾸는 효과가 나타났다.

‘기술 철학’이 만든 지속가능한 경쟁력
한국이 전수한 것은 재봉 기술만이 아니라 품질경영(QC), 납기 준수, 작업 표준화, 안전·윤리 준수 같은 운영 철학이었다. 라인 효율을 수치로 관리하고, 표준작업서를 기반으로 교육·배치를 수행하며, 하도급·노무 이슈를 제도화로 해결하는 방식이 현지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임금 경쟁을 넘어 생산성·신뢰·지속가능성의 종합 경쟁력으로 이어져 글로벌 바이어의 재주문을 끌어냈다.

동반성장의 다음 장을 설계하자
방글라데시의 도약은 ‘사람-공장-시장’을 하나로 잇는 동반성장의 사례이며, 한국의 산업화 경험이 개발협력의 실전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는 친환경 소재, 탄소발자국 측정, 디지털 생산관리, 노동·안전 국제인증 등 차세대 과제를 함께 풀며 가치사슬의 질을 높일 때다. 기술과 철학을 함께 전하는 한국형 산업협력으로 더 많은 도약 스토리를 만들자. 마지막으로, 사람을 키우는 협력으로 다음 50년의 공동 번영을 설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