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위안은 AI 화폐”…美 모델 20분의 1 값으로 패권 노리는 中[이슈포커스-AI 토크노믹스]
저렴한 전기료에 보조금으로 가격 낮춰
딥시크 신모델도 입력비용 90% 할인
中 LLM 토큰 호출량 2월이후 1위 유지
AI에이전트 적용 플랫폼·IT기기도 풍부
내륙 에너지허브 AI 중심지로 탈바꿈

15개월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된 딥시크 V4는 이번에도 ‘가성비’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프로 버전 기준 매개변수가 V3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해 인공지능(AI) 에이전트 등 복잡한 작업에 최적화됐으나 토큰 처리 시 이용하는 컴퓨팅 자원은 27%에 불과하다. 이에 토큰 가격도 출력 기준 100만 개당 프로 버전이 3.48달러, 플래시가 0.28달러로 오픈AI의 GPT-5.5(30달러), 클로드 오푸스 4.7(25달러) 대비 크게 낮다. 딥시크는 지난달 27일부터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입력 비용을 10분의 1로 깎아주는 ‘폭탄 세일’까지 펼치고 있다.
중국이 AI 에이전트 시대 ‘가성비’를 앞세워 토큰 경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8일 오픈라우터에 따르면 중국 대규모언어모델(LLM) 토큰 호출량은 2월 처음으로 미국 모델을 넘어선 후 줄곧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중국의 일평균 토큰 호출 건수는 140조 건으로 지난해 말(100조 건) 대비 40% 폭증했다.
파격적인 초저가 공세가 약진의 배경이다. 중국 모델의 API 호출 가격은 미국 주요 모델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정부가 앞장서 저가 공세를 돕고 있다. 우선 산업용 전기요금이 ㎾h당 0.24위안(약 49원) 수준으로 한국(약 180원)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당국이 1990년대부터 광활하고 값싼 서부 지역 땅에 전력 인프라를 집중 설치한 결과다. 보조금 혜택도 쏠쏠하다. 기업들은 정부의 AI 인프라 공유 정책에 따라 추론에 활용되는 토큰을 20~40% 상시 할인받을 수 있고 서부 지역 대형 AI 데이터센터와 장기 계약 시 초저가로 컴퓨팅 자원을 쓸 수 있다. 류례훙 중국 국가데이터국 국장은 “토큰은 기술 공급과 상업적 수요를 이어주는 결제 단위”라며 토큰의 중국명을 자국 화폐(위안) 이름을 딴 ‘츠위안(次元)’으로 소개했다.
중국 정부는 토큰 경제가 미국이 주도하는 AI 패권 경쟁에서 반전을 꾀할 카드로 보고 있다. 그간 AI 경쟁은 LLM의 성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중국은 반도체 부문의 병목으로 미국보다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실제 수익화로 전장이 옮겨가면서 가성비 높은 중국 모델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미국과 달리 스타트업이 아닌 알리바바·바이트댄스·텐센트 등 빅테크가 LLM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콘텐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서비스에 AI 에이전트를 결합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상당하다. 뛰어난 제조업 역량을 보유한 만큼 스마트카·스마트글라스 등 차세대 정보기술(IT) 기기에 AI 에이전트를 적용할 수 있는 경로도 뚜렷하다. 중국 스타트업인 탄웨이신롄의 장샤오 수석엔지니어는 “비교적 저렴한 전력과 엔지니어 수 우위가 중국의 강점”이라면서 “모델 성능은 현재 미국이 확실히 앞서 있지만 (추격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다.
김창현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교수는 “미국의 문제는 AI를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는 제조업이 약하다는 점”이라며 “만약 중국이 반도체라는 병목을 해결하면 미국보다 더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진단했다.
알리바바·바이트댄스 등 기업들도 관련 조직을 만들고 기업용 서비스에 토큰 기반 과금 구조를 도입하는 등 토큰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그동안 무료나 초저가 전략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토큰 사용량에 따른 과금으로 본격적인 수익 확보에 나섰다는 평가다.
중국은 토큰 수출을 에너지 패권 기회로도 보고 있다. 그간 중국은 막대한 전력을 생산해도 대규모 저장이 어려워 수요 부족이나 송전망 한계로 버려지거나 헐값에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만 전체 발전량의 5%, 수백억 ㎾h에 달하는 전력이 버려졌는데 웬만한 대도시의 연간 소비량에 해당한다. 그러나 AI 수요가 급증하면서 버리던 전력을 비싸게 팔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내륙 에너지 허브를 글로벌 AI 경제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 업체들이 엔비디아 최신 칩을 활용하기 위해 본토 대신 싱가포르 등 해외 데이터센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토큰 호출은 많지만 중국 내 전력 수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다.
최근 토큰 증가량의 대부분이 바이트댄스의 영상 AI ‘시댄스’에 쏠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2일 바이트댄스는 더우바오 LLM의 일일 토큰 사용량이 120조 개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국이 발표한 140조 건 중 대부분이 여기서 나온 셈인데 업계에서는 토큰 소비량이 일반 텍스트보다 수만 배 많은 영상물 플랫폼인 시댄스를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는 AI가 산업 전반과 결합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인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현상이다. 양웨이 CEIBS 부교수는 “토큰 소비를 AI 역량과 동일시할 경우 ‘효율적 활용’보다 ‘사용량 확대’만 부추겨 비효율이 혁신으로 포장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베이징=정다은 특파원 down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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