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부족으로 흔들리는 유럽의 '플라잉 택시' 꿈
올해 파리 올림픽에서는 전기 플라잉 택시 서비스가 혁신적으로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았어야만 했다.
독일의 ‘볼로콥터’사는 2인용 전기 플라잉 택시(날아다니는 택시)인 ‘볼로시티’가 파리 시내에서 승객을 태우고 다닐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볼로콥터는 시범 비행만을 진행했다.
약속했던 기한을 지키지 않은 것도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이면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볼로콥터가 회사 운영을 이어기 위해서는 긴급하게 새로운 투자를 받아야만 했다.
정부와 진행했던 1억유로(약 1472억원) 규모의 대출 협상이 지난 4월 실패로 끝난 것이다.
‘블룸버그’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자동차 기업 ‘지리’가 9500만달러(약 1325억원)를 지원하는 대가로 볼로콥터의 지분 85%를 인수하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이 기업의 모든 제조 과정이 중국으로 이전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볼로콥터는 전기 수직 이착륙 비행기(EVTOL) 개발하는 전 세계 기업 수십 곳 중 하나다. 볼로콥터의 제품은 헬리콥터와 같은 유연성을 자랑하면서도 비용, 소음, 배기가스 배출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고, 제조 역량을 구축하는 데 워낙 막대한 비용이 드는 상황에서 일부 투자자들이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피해 사례 중 하나가 독일의 스타트업 ‘릴리움’이다. 릴리움은 매우 급진적인 디자인의 EVTOL을 개발했다. 수직 이륙 및 전진 비행을 위해 일제히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전기 모터 30개를 장착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개념 항공기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릴리움’사에 따르면 전 세계 여러 기업과 780대를 주문하는 양해 각서를 체결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대를 바탕으로 축소 모형을 원격으로 조종하며 시연에도 나섰다. 그리고 첫 번째 실물 크기 항공기 제조가 이미 시작돼 내년 초쯤 테스트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지난 7월만 해도 영국 판버러 에어쇼에서 만난 릴리움의 세바스찬 보렐 COO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BBC에 “맞다. 우리는 빠르게 자금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좋은 신호다. 우리가 항공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면서 “연말까지 3대를 생산할 예정이며, 투자금 15억유로를 모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자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릴리움은 원래 독일의 개발은행인 ‘KfW로’부터 1억유로를 대출받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 중앙 정부와 주 정부의 보증이 필요했으나,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릴리움사의 주요 운영 사업이 이번 달 초 파산 절차에 들어가게 됐고, 미국 나스닥 증권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다.
현재는 구조조정 전문가들과 함께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새로운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새 항공기 개발 작업이 이어지고 있으나, 전기 항공기를 생산해내기란 매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한편 EVTOL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국 업체는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사이다. 브리스톨에 본사를 둔 이 업체는 ‘OVO 에너지’의 설립자이기도 한 사업가 스티븐 피츠패트릭이 2016년 설립했다.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의 ‘VX4’는 눈에 띄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날렵한 항공기 스타일 날개에 장착된 대형 프로펠러 8개를 사용해 양력을 만들어낸다. 피츠패트릭은 이 항공기가 헬리콥터보다 “100배” 더 안전하고 조용하면서도 비용은 20%에 불과할 것이라는 야심 찬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실제로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원격 제어를 통한 테스트를 완료한 이후 올해 초부터 시범 비행 테스트에 착수한 것이다. 처음에는 동체를 지상에 고정시킨 상태에서 테스트를 진행했으나, 이번 달 초 처음으로 매여 있지 않는 상태로도 이착륙에 성공했다.
하지만 심각한 상황도 있었다. 지난해 8월에는 원격 조종 테스트용 시제품이 코츠월드 공항에서 비행 도중 프로펠러 날개가 떨어져 추락하면서 기체가 심하게 손상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선 5월에는 주요 파트너 중 하나인 ‘롤스로이스’가 항공기용 전기 모터 공급 계약을 맺지 않겠다고 손을 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포부는 여전히 하늘 높게 치솟아 있다.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는 2030년 전까지 항공기 150대를 고객에게 인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때까지 연간 200대를 생산해내는 능력을 갖추며 자금의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적 압박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피츠패트릭은 올해 3월 회사에 2500만달러(약 348억원)를 추가로 투자했다. 그러나 또 다른 투자자를 찾지 못할 경우 8월 안에 상환해야 하는 2500만 달러를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9월 기준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의 자금 규모는 5740만달러(약 801억원) 이지만, 내년에는 그 2배에 가까운 자금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회사의 미래는 ‘머드릭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통해 주요 채권자가 된 미국인 금융가 제이슨 머드릭과 계약 체결에 달려 있는 모습이다.
머드릭은 7500만달러 투자를 제안하는 한편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 이사회에 자신의 계획을 거부하면 파산 절차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될 피츠패트릭은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소식통에 따르면 양측은 거의 합의에 다다른 상황이라고 한다.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 측은 거래가 성사되면 더 많은 자금 조달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편 비욘 패름은 이러한 난기류 속에서도 고요히 순항하고 있는 유럽의 프로젝트도 있다고 설명했다. 패름은 항공공학을 전공하고 스웨덴 공군에서 전투기를 조종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로, 현재 항공우주 컨설팅 업체 ‘리햄’에 속해 있다.
패름은 ‘에어버스’사에서 진행 중인 EVTOL 프로젝트의 전망이 좋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티에어버스 넥스트젠’이라고 불리는 이 4인승 항공기는 프로펠러 8개를 장착하고 있으며, 비행 거리는 80km이다.
패름은 “에어버스의 엔지니어들을 위한 기술 프로젝트”라면서 “저들은 돈도 있고, 노하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다른 지역의 상황은 어떨까. 탄탄한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실제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한 스타트업들도 있다. 미국의 ‘조비’항공과 ‘아쳐’항공이 그 좋은 예시다.
그렇다면 항공기가 실제 생산되기 시작한 이후 그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바로 수익성 있는 시장의 여부다.
가장 먼저 운영될 노선은 아마도 공항과 도심 사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실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패름은 “운영 비용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조종사와 배터리”라면서 “ 1년에 두어 번씩은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불확실성과 비용을 고려하면 애초에 투자자들이 왜 이 같은 새로운 전기 항공기에 투자하고자 나섰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패름은 웃음을 터뜨리며 “아무도 다음 테슬라가 될 기업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