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에너지의 마지막 숙제,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으로 첫발 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기술 개발·사회 합의 마중물 돼야”

[글] 강문자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전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
[그림] 이솔 과학일러스트레이터·약사
[편집] 윤신영 기자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형 산불, 극한 호우, 폭염과 혹한 등 전례 없는 기상이변을 겪으면서 기후변화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탄소중립은 시대적 과제가 됐고, 재생에너지와 함께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에너지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을 안정적으로 계속 운영하려면 방사성 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과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은 국민과 지역사회로부터 신뢰와 수용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추진하기 어려운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림1).

[그림 1] 탄소중립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원자력에너지.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무엇보다 방사성 폐기물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 방사성 폐기물의 분류와 처분 방식
방사성 폐기물이란 방사성 물질 또는 그에 따라 오염된 물질로서 폐기의 대상이 되는 물질을 말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도 향후 폐기하기로 결정된다면 방사성 폐기물로 분류된다. 방사성 폐기물은 열 발생 여부와 함유된 방사성 핵종의 농도, 반감기 등에 따라 극저준위, 저준위, 중준위, 고준위로 구분되며, 각 준위별 최종 처분 방식은 모두 다르다. 방사능 준위가 높고 반감기가 긴 폐기물일수록 인간 생활권으로부터 보다 견고한 격리가 필요하다. 그림 2는 방사성 폐기물의 이런 분류 기준과 처분 방식을 정리한 것이다[1].

[그림 2] 방사성 폐기물은 극저준위, 저준위, 중준위, 고준위로 분류되며, 폐기물의 종류에 따라 최종적으로 처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인간의 생활권과 어떤 방식으로 격리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1].

방사성 폐기물의 저장 및 처분 전략은 준위에 따라 차별화된다. 극저준위 폐기물은 방사능 함량이 매우 낮아 일반 산업폐기물 매립 수준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저준위 폐기물은 지표에서 약 30 m 이내의 깊이로 콘크리트 방벽을 만들고 그 안에 처분하는 방식이다. 중준위 폐기물은 콘크리트로 차폐된 지하 사일로(silo) 또는 동굴 등에 수용해 수십 년간 모니터링한 뒤 밀봉하는 방식이다. 이때 방사능은 수백 년 이내에 인체에 영향이 없는 수준으로 감소한다.

이들 중·저준위 폐기물은 주로 원자력발전소, 연구기관, 병원, 산업체 등에서 발생되며 형태에 따라 기체, 액체, 고체 폐기물로 나눌 수 있다. 원자력안전법 등의 기준에 따라 방사성 핵종 농도가 규제치 이하가 되도록 여러 방법으로 처리한 뒤 일부는 환경으로 방출하기도 하고, 나머지는 드럼 등에 포장해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에 영구 처분한다. 예를 들어 기체 폐기물은 방사성 핵종이 자연적으로 붕괴돼 사라질 때까지 탱크에 저장하거나, 헤파(HEPA) 필터, 활성탄 필터 등 고성능 여과기를 거쳐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 뒤 배출한다. 액체 폐기물은 증발농축해 부피를 줄이거나, 이온교환수지를 통해 방사성 핵종을 제거한다. 농축액이나 사용된 이온교환수지는 시멘트로 굳혀 고형화한 뒤 처분한다. 고체 폐기물은 형태나 종류를 기준으로 분류해 압축하거나, 소각한 후 드럼 등에 밀봉해 영구 처분한다[2] (그림 3).

[그림 3]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형태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한 뒤 대기로 방출하거나 배수로 방출된다. 이때 법적 배출 기준을 만족해야 하며 환경 감시도 시행한다. 고체 폐기물의 경우는 종류별로 분류하여 저장하고 처분 요건에 맞춰 영구 처분한다[2].

한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수십만 년에 걸쳐 위험성이 지속되는 아주 긴 반감기의 방사성 핵종들로 구성돼 있어, 인간 생활권으로부터 완전히 격리하기 위한 심층 지하처분을 국제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의 대표 격인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은 특히 어려운데, 이에 대해서는 기술적 특성과 현황을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사용후핵연료 관리 특성과 심층처분 기술 현황
사용후핵연료란 원자로에서 일정 기간(통상 3~5년) 연료로 사용된 후 꺼낸 핵연료를 말한다. 사용전 신규 핵연료는 약 3~5%의 우라늄-235로 농축돼 있지만, 사용 후에는 우라늄-235의 상당 부분이 소진된다. 동시에 핵분열 생성물과 플루토늄이나 아메리슘 등의 초우라늄 원소들이 새롭게 축적돼 방사성 독성과 붕괴열이 매우 높은 물질로 변한다.

예를 들어 경수로에서 높은 연소도로 사용된 사용후핵연료의 평균 구성은 소모되지 않은 우라늄 약 96%(대부분 U-238, 남은 U-235는 1% 미만), 핵분열 생성물(FP) 약 3%(세슘-137, 스트론튬-90 등) 및 플루토늄과 마이너 악티나이드(TRU) 약 1%로 이뤄져 있다[3] (그림 4). 즉,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생성물이 사용후핵연료의 약 4%를 차지하며, 이 소량의 물질들이 높은 방사능과 긴 반감기를 가져 안전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림 4] 경수로형 핵연료의 연소하기 전후의 구성을 나타낸다. 핵분열 반응을 하는 U-235가 연소전에는 4%를 차지하다가 연소후에는 1%로 줄어들며, 핵분열 반응에 의해 반감기가 긴 테크네튬이나 요오드와 열을 많이 발생하는 세슘 등으로 변환된다. 약 1%는 고독성이며 장반감기인 플루토늄으로 변환된다[3].

사용후핵연료는 반출 직후 강한 방사선과 붕괴열을 방출한다. 그래서 우선 원전 부지 내의 습식저장시설(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 수년간 보관해 초기 열과 방사능 준위를 낮춘다. 충분히 냉각된 후에는 별도의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장기 보관할 수 있다. 건식저장은 자연대류로 연료를 냉각시키는 방식으로, 금속 캐니스터나 두꺼운 콘크리트 용기에 사용후핵연료를 밀봉한 뒤 지상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그림 5]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습식저장수조에 보관한 후 건식저장시설을 거쳐 최종 처분된다.

한국의 경우 중수로형 원전(월성)에서 1992년부터 대용량 맥스터(MACSTOR) 모듈 형태의 건식저장시설을 운영 중이며, 다른 경수로 원전들에서는 습식 저장수조의 포화에 대비해 건식저장시설 확보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건식저장은 어디까지나 중간 임시저장일 뿐이며, 사용후핵연료를 최종적으로 처분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격리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국제 사회가 인정한 유일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 해법은 지하 깊은 곳에 격리하는 심층처분(DGR, Deep Geological Repository)이다. 심층처분이란 지하 수백 미터의 안정된 지층을 이용해 인류 생활환경으로부터 고준위 폐기물을 영구 격리하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천연 지층이 제공하는 자연 방벽과 특수 설계된 인공 방벽을 여러 겹 적용하는 다중방벽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림 6).

[그림 6]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지하 500 m 이하 암반에 다중방벽시스템으로 심층처분하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1차 방벽은 핵연료 집합체, 2차는 구리 재질의 캐니스터, 3차는 벤토나이트와 같은 완충재, 그리고 천연 암반으로 구성된다[4].

예를 들어 스웨덴과 핀란드 등이 채택한 KBS-3 심층처분 개념에서는, 구리와 강철로 만든 두꺼운 처분 용기(약 5 cm 두께의 구리 용기)에 사용후핵연료를 밀봉하고 팽윤성 점토(벤토나이트)로 만든 완충재로 용기를 감싼 후 지하 500 m 깊이의 암반에 매설한다. 이런 다중 방벽을 통해 방사성 물질의 누출 경로를 차단하고 지하수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지층 자체의 격리 성능까지 활용해 10만 년 이상 방사성 물질이 생태계로부터 격리되도록 설계한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 위험도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감소한다. 40억 년에 이르는 지구의 나이를 감안하면, 심층처분시설을 통한 영구 격리 방법은 기술적 안전장치를 극대화한 개념으로서 고준위 폐기물 문제의 궁극적 해법으로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일부 국가는 심층처분시설을 운영 중에도 필요시 폐기물을 회수할 수 있는 형태(가역성)로 설계해, 미래 기술 발전 시 폐기물을 다시 꺼내 활용하거나 추가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프랑스의 시제오(Cigeo) 프로젝트 등). 그러나 기본 전제는 방사성 폐기물을 영원히 인류 생활환경과 격리시키는 것이며, 이 목표 달성을 위한 세계 각국의 기술 개발 노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 국내 방사성 폐기물 관리 정책의 변화와 사회적 쟁점
한국은 원전 운영 초기부터 방사성 폐기물 처분 부지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1980년대에 정부 주도로 몇몇 지역을 처분장 후보지로 선정하려 시도했지만 지역 사회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특히 과거에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한 곳에 함께 마련하려는 구상까지 등장했으나, 처분장 유치를 둘러싼 갈등이 극심해져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정부는 2004년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정책을 별도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추진하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대신 비교적 방사능 준위가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시설을 우선 추진해, 2005년 경주시가 유치 지역으로 선정되고 2015년 경주 처분장이 준공돼 운영을 시작했다. 현재 경주에 위치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원전이나 원자력연구시설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처분 안전성을 만족시키는지 다양한 검사를 통해 점검해 인수한다. 인수 기준에 맞을 경우에만 지하처분시설에 영구처분한다.

한편 2004년 보류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 정책 논의는 오랫동안 표류 상태에 있었다. 수십 년간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에 의존해 왔지만, 최근 각 원전 저장수조의 공간이 가득 차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비로소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국내 모든 사용후핵연료 약 1만 8000톤 가량(2023년 9월 기준)이 각 원전 내의 습식저장수조 및 건식저장시설에 보관되고 있다. 이대로 추가 조치 없이 발전을 지속하면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1년 한울, 2032년 고리원전의 저장시설이 순차적으로 포화될 전망이다[5]. 후속 원전들 역시 몇 년 간격으로 저장 공간이 가득 차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불과 5~6년 후부터는 저장 공간 부족으로 원전을 정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고준위폐기물 영구 처분장을 마련하기 전까지 사용할 중간 저장대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정부와 원자력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4월 국무총리 산하 국가에너지위원회에 갈등관리전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어 2013년 말에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자문기구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돼 약 2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공청회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15년 6월 공론화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여기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 제정, 중간저장시설 건설 추진, 전담조직 설립, 지역사회 소통 및 보상 강화 등의 권고사항이 담겼다.

그러나 권고안이 나왔다고 곧바로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거나 정책 방향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공론화 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는 위원회의 대표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이견을 보이며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 등 논란이 남았고, 이후 정부 교체 등과 맞물려 논의는 다시 표류하게 되었다.

2017년 출범한 정부(당시 ‘탈원전’ 에너지정책 기조)는 앞선 공론화 과정에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부족했다는 평가에 따라, 2019년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발족했다. 재검토위는 21개월 동안 지역 순회 공청회, 이해당사자 의견 수렴, 시민참여단 숙의 등을 거쳐 2021년 3월 두 번째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여기서도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 독립적인 추진기구 설치, 중간저장시설 마련 등이 최우선 과제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특별법은 국회의 문턱을 여러 차례 넘지 못한 채 좌절을 거듭했다. 2016년 11월 정부안으로 제출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안’, 2018년 7월 국회의원 발의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등 관련 법안이 제출됐다[6]. 2021년과 2022년에도 비슷한 법안들이 재발의됐고 국회 상임위에서 상당한 논의를 이어 나갔지만,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다행히 2024년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여야를 불문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문제의 시급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마침내 2025년 2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약칭: 고준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무려 40여 년에 걸친 논의 끝에 처음으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대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으며, 이는 국가 차원의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이 특별법은 국무총리 소속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설치해 국가 차원의 통합 관리를 총괄하도록 하고, 종합적인 관리계획 수립, 부지선정 절차 및 주민지원 방안, 안전관리 기술 개발과 전문인력 양성 등을 명문화했다. 또한 법에서 중간저장시설은 2050년까지 확보하고 최종 처분시설은 2060년까지 완공하도록 목표 시한을 명시해 사업 추진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했다. 정부는 특별법 시행을 위해 하위 법령 제정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2025년 내에 관리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켜 본격적으로 부지 선정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다. 다만 실제 처분 부지 확정까지는 최소 10여 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며, 부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의 수용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대 관건으로 지목되고 있다.

결국 특별법 제정은 문제 해결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향후 기술 개발과 더불어 사회적 신뢰를 쌓는 노력이 지속돼야 비로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해외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사례

(1) 스웨덴: 세계 선도적인 심층처분 프로그램
스웨덴은 사용후핵연료 처분 분야에서 가장 앞선 국가 중 하나다. 1970년대 원자력법에 “사용후핵연료 처분 대책 없이는 원전을 운영할 수 없다”는 원칙을 명문화하고, 원전 운영사들이 공동 출자한 전담 회사(SKB)를 설립해 수십 년간 연구개발을 지속해 왔다. 그 결과 스웨덴은 이웃 핀란드와 함께 KBS-3 심층처분 개념을 정립하고, 아스포(Äspö) 등의 지하연구시설(URL)에서 기술을 실증했다. 2009년에는 스웨덴 동부의 포스마크(Forsmark) 지역이 처분장 부지로 최종 선정됐고, 이후 인허가 절차를 거쳐 2022년 1월 정부 승인을 받았다. 2024년에는 환경법원으로부터 최종 시설 건설 허가도 승인받아, 2025년 1월 공식 기공식을 열고 처분시설 건설을 시작했다. 향후 약 10년에 걸친 건설을 거쳐 2030년대 중반부터 처분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며, 약 50년 동안 처분 터널을 확장·운영한 뒤 폐쇄할 계획이다.

스웨덴의 처분시설은 지하 500 m 깊이의 안정적인 화강암 지층에 총 약 1만 2000톤의 사용후핵연료(약 6000개의 구리용기)를 영구 처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건설 및 운영 기간은 최초 계획으로 약 70년으로 예상되나, 원전 수명 연장에 따라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스웨덴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으로는 첨단 과학기술 못지않게 지역사회와의 투명한 소통 및 신뢰 구축이 자주 언급된다. 실제로 처분시설 부지로 선정된 포스마크와 인근 오스카샴(Oskarshamn)에서는 주민 대상 설명회가 여러 차례 열렸고 의견 수렴이 장기간 이뤄졌으며, 여론조사에서 지역 주민 다수가 처분장 건설을 지지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스웨덴은 이처럼 정책적 투명성과 지역 합의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선진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2) 핀란드: 세계 최초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가동 임박
핀란드는 이웃 스웨덴과 긴밀히 공조하며 심층처분 기술을 개발해 왔으며,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운영하게 될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핀란드 정부는 1983년에 영구처분시설 건설 방침을 정한 뒤 2000년에 국회의 승인을 거쳐 올킬루오토(Olkiluoto) 원전 부지를 처분장 위치로 확정했다. 원전 운영사들이 공동 출자한 전담기관 포시바(Posiva)는 2004년 부지 암반특성 조사 및 지하연구시설 건설을 시작해, 2015년에 처분시설 건설 허가를 취득하고 지하 430 m 깊이의 처분시설(일명 온칼로(Onkalo)) 굴착을 완료했다. 현재 포시바는 캡슐화시설 및 처분시설에 대한 운영 허가를 신청한 상태이며, 규제기관인 방사선 및 원자력 안전청(STUK)의 심사를 거쳐 2026년에 첫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개시할 전망이다. 핀란드는 2024년 9월 실제 사용후핵연료 더미(dummy)를 넣은 처분용기를 지하에 매설해보는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며 가동 준비를 끝마쳤다.

온칼로 처분장은 스웨덴과 동일한 KBS-3 다중방벽 시스템(구리-주철 처분용기 + 벤토나이트 완충재)을 적용하고 있으며, 지하 약 430 m 깊이의 안정적인 결정질 암반층에 수평 처분터널과 수직 처분공을 갖춘 구조다. 계획된 처분용량은 약 6500톤으로, 향후 약 100년간 사용후핵연료 캡슐을 단계적으로 매설하고 동굴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핀란드가 예정대로 2026년경 처분을 시작하면 인류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 시대를 열게 되며, 이를 통해 원자력 발전에 대한 국민 신뢰를 한층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핀란드도 부지 선정 초기에는 지역 반대에 부딪혔으나,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지원책과 정보공개를 병행한 끝에 주민 동의를 얻어냈다. 이런 꾸준한 노력으로 오늘날 핀란드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3) 프랑스: 재처리 정책과 병행한 심층처분 프로그램
프랑스는 세계적인 원전 대국답게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도 일찍부터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프랑스 정책의 특징은 상용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대부분을 재처리해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회수·재활용하고, 남는 고준위 액체 폐액을 유리화해 고체 상태의 폐기물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렇게 재처리 정책을 채택한 국가들은 최종 처분 대상이 사용후핵연료 자체가 아니라 재처리 후 생성된 고준위 폐액의 유리고화체와 일부 장수명 중준위 폐기물(TRU 폐기물)이 된다.

프랑스는 1991년 이른바 바타유 법(방사성 폐기물 관리 연구법)을 제정해 15년간 심층처분 연구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2006년에는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포괄법을 제정해 심층처분 추진을 공식화했다. 전담기관인 프랑스 국가 방사성 폐기물 관리국(ANDRA)은 북동부 뷔흐(Bure) 지역의 점토층 지대에 지하 500 m 규모의 시제오 심층처분시설 건설을 추진 중이다. 뷔흐 지하연구시설(URL)에서 20년 넘게 지질 조사와 기술 실증을 수행한 ANDRA는 2010년대 후반 심층처분시설의 상세설계를 완성했고, 2022년 말 프랑스 정부에 처분시설 건설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계획대로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는다면 2027년경 처분장 건설을 시작해 일정 기간 시범 운영 단계를 거친 뒤, 2030년대 중후반부터 방사성폐기물 인수를 시작할 전망이다.

프랑스 처분장의 설계 용량은 고준위 및 장수명 중·저준위 폐기물 합계 10만 m3 이상으로 유럽 최대 규모이며, 운영 개시 후 최소 100년간은 폐기물을 다시 꺼낼 수 있는(가역성) 형태로 구축될 예정이다. 프랑스는 이 사업에 약 3750억 유로(약 5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며, 2050년경 최초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장에 매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랑스 사례의 특징은 재처리 정책과 심층처분 정책을 병행하면서도 법률로 추진 일정을 명문화하고 장기간에 걸쳐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정부가 처분장 건설을 국가 중장기 사업으로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프랑스가 예정대로 처분장을 가동하면, 앞서 살펴본 핀란드와 스웨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을 운영하는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4) 미국: 세계 최대 원전국의 정책 교착
미국은 전 세계에서 상용 원전을 가장 많이 운영해 왔고 그만큼 사용후핵연료도 약 9만 톤으로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방 차원의 영구 처분시설을 확보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기도 하다. 1987년 미국 의회가 네바다주의 유카 마운틴(Yucca Mountain)을 국가 지정 처분장 부지로 선정해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했지만, 지역 반대와 정치적 갈등으로 2010년 이후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2011년 미 의회는 유카 마운틴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프로젝트를 동결시켰는데, 미국 회계감사원(GAO)도 “유카 마운틴 사업 중단은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미 정부와 원전 사업자들은 사실상 영구 처분장 없이 지내오고 있으며, 전국 34개 주 76개 원전 부지에 임시 건식저장 용기에 사용후핵연료를 담아 발전소 부지에서 장기 보관하고 있는 처지다. 미국은 국방 분야에서 발생한 방사성 폐기물 처분을 위해 뉴멕시코주에 WIPP라는 심층처분장을 1999년부터 운영 중이지만, 이 시설은 핵무기 생산 과정에서 나온 특수 폐기물(플루토늄 오염물) 전용이며 상업용 원전 연료는 대상이 아니다.

유카 마운틴을 대체할 다른 영구처분 대안으로 심부시추공 처분 같은 혁신적 개념들도 연구됐으나, 트럼프 행정부 시기 예산이 삭감돼 모두 중단됐다. 대신 2012년 블루리본위원회(BRC)의 권고에 따라 ‘주민 동의에 기반한 부지 선정(Consent-based siting)’이 새로운 접근 원칙으로 제시됐다. 최근 미 연방정부는 민간 주도로 텍사스와 뉴멕시코에 통합 중간저장시설(CIS)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임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정작 영구 처분장 부지 선정은 여전히 교착상태에 있다. 세계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마저 방사성폐기물 정책 실패를 겪고 있는 원인으로는 연방 대 주(州) 정부 간 권한 갈등, 지역 주민과 정치권의 강한 님비(NIMBY) 저항, 정책 추진의 일관성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지목된다. 미국 사례는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과제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림 7]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는 첨단 기술 개발과 사회적 합의 형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복잡한 과제다. 고준위 특별법 제정으로 제도적 틀은 갖췄다. 이제 기술 개발과 사회적 합의 등 다양한 과제를 추진해야 할 때다.

| 향후 과제: 기술과 정책적 도전과제들
방사성 폐기물 관리는 첨단 기술 개발과 사회적 합의 형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복잡한 과제다. 고준위 특별법 제정으로 제도적 틀을 갖춘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며, 향후 다음과 같은 기술적이고 정책적인 과제들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1) 특별법의 이행과 거버넌스 구축
새로 제정된 고준위 특별법에 따라 조속히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발족하고 국가 차원의 종합 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관리위원회는 독립적 추진 기구로서, 중간저장시설 및 처분시설 확보를 위한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부지 선정 절차, 주민지원 방안 등을 투명하게 설계하고 시행해야 한다. 아울러 관리 사업자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 등 관련 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2)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능력 확충
영구 처분시설 완공까지 수십 년이 소요될 것이므로, 그 중간 단계로서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저장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원전별 저장수조의 포화 시점에 대비해 기존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증설 등을 신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월성 중수로 원전을 제외한 다른 경수로 원전들에는 독자적인 건식저장시설이 없어서, 앞서 언급한 대로 2030년경부터 한빛, 한울, 고리원전의 저장 공간 포화 위기가 순차적으로 현실화될 전망이다. 정부와 사업자는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부지 내 저장시설 증설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 규제기관의 인허가 절차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포화로 인한 원전 가동 중단 사태를 예방하고, 최종 영구처분시설 완공 전까지 안전하게 연료를 보관할 수 있을 것이다.

(3) 심층처분 기술 자립
심층처분 기술은 이미 해외 선도국에서 실증을 거쳐 상용 단계에 들어섰지만, 국내 고유의 지질 환경에 최적화된 처분 기술과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지질 구조에 대한 처분 개념 연구, 처분용기와 완충재 등 공학적 방벽 소재 개발, 지하연구시설 구축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2021년부터 2029년까지 한국형 처분 핵심기술 확보를 목표로 범부처 R&D 사업을 진행 중이며[7],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산학연 협력과 충분한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또한 향후 후보 부지의 지질 특성을 사전 조사하여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처분 안전성 평가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4) 투명성과 참여에 기반한 국민 신뢰 구축
무엇보다 방사성 폐기물 문제 해결의 성패는 국민과 지역사회의 신뢰 형성에 달려 있다. 해외 선도국 사례에서 봤듯이, 정보를 전 국민과 공유하고 사업 절차와 일정을 법제화해 투명하게 공개한 점이 성공의 열쇠였다. 한국도 특별법 취지에 맞게 앞으로의 부지 선정 및 시설 건설 전 과정을 공개적이고 민주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특히 후보지 물색 단계부터 해당 지역 주민, 지자체, 시민단체 등 광범위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소통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부지 유치 지역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보상, 지역 발전 계획 등을 명확히 하여 단순 금전적 보상이 아닌 지속가능한 지역 상생 발전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 형성 노력 없이는 아무리 우수한 기술적 성과도 현실에 적용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5) 전문 인력 양성과 안정적 재원 확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는 수십 년을 내다보고 추진해야 할 장기 사업이므로, 이를 이끌어 갈 전문 인력과 재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원자력공학, 지질·지구과학, 재료, 화학공학, 사회과학 등 다학제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연구기관의 교육 프로그램 투자를 확대하고 해외 선진기관과의 협력도 활성화해야 한다. 재원 측면에서는 현재 발전원가에 포함돼 적립 중인 방사성 폐기물 관리기금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해, 향후 막대한 사업비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업 장기화에 대비해 기금 적립 규모와 운용 전략을 재점검하고, 부족 시 추가 재원 확보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맺음말: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내 탄소중립 에너지 믹스에서 원자력이 담당할 몫은 당분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안전하고 현명하게 해결하지 않고서는 원자력의 지속가능한 활용을 담보할 수 없다. 이제 특별법 제정으로 국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정책이 첫걸음을 뗐다. 향후 수십 년간 기술 개발, 사회적 합의, 국제 협력을 병행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에 들어섰다.

다행히 앞서 달려간 국가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있으며, 우리에겐 이를 벤치마킹하여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과 역량이 충분히 있다. 과학기술적 접근과 민주적 거버넌스를 조화시켜 이 어려운 숙제를 풀어낸다면, 이는 단순히 원자력 한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 회복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실천이라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원자력의 마지막 과제를 현명하게 해결함으로써, 기후위기 시대에 원자력이 책임있는 에너지 옵션(선택지)으로 기여하고, 우리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참고문헌

  1. 한국원자력환경공단 (KORAD) 홈페이지 – 방사성 폐기물 분류별 처분 방식.
  2.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KINS) 홈페이지 –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폐기물 처리 절차.
  3.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KINS) 홈페이지 – 경수로형 사용후핵연료의 구성비 변화.
  4. 사용후핵연료, 필수적이고 귀중한 정보집,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원자력환경공단(2022).
  5.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및 저장시설 포화도 전망」 보고서(2021).
  6.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권고안」 및 국회 입법자료(2021).
  7. (재)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iKSNF) 홈페이지 및 보도자료(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 기술 개발, 2021~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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