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진을 보라. 사나워 보이는 고양이 사진 앞에서 비둘기가 편안하게 쉬고 있고 있다. 고양이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강인한 모습.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던 합정역 독수리 사진. 이것도 비둘기를 쫓아내려고 붙였던 건데, 별 효과가 없다는 목격담이 대다수.

안 그래도 길거리에 잔뜩 보이는 비둘기, 이제 실내까지 침공해 들어오니 이렇게라도 해보는건데, 너무 강해져서 막기 힘든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이들의 ‘최강 거점’으로 불릴 만한 곳이 있다. 바로 서울역. 유튜브 댓글로 "서울역 안에 비둘기가 왜 이렇게 많은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고속철도, 일반철도, 수도권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그리고 GTX-A까지 수많은 열차가 모이는 한국 철도 교통의 심장 서울역. 당연히 역 규모도 엄청나다.

이 중에서 비둘기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승객이 이용하는 지상 대합실. 사람이 많은 2층은 물론,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3층을 조금만 둘러봐도 유유히 런웨이를 걷는 비둘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역은 어쩌다 비둘기들의 성지가 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근처 광장과 활짝 열린 문 때문.

[이정우 동서조류연구소장]
원래 비둘기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광장 같은 데 모이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서울역에 많이 모이는 거는 그 광장 때문에 그래요. 거기가 이제 앉기 좋고 잠자는 데가 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모이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데는 음식 먹다가 떨어뜨린 거 이런 것들이 있거든요. 이런 걸 알기 때문에 그쪽으로 자꾸 모이는 거죠.

서울역 앞 광장은 열차 이용객 뿐 아니라 집회, 노숙인까지 더해져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음식물 부스러기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간혹 먹이를 주는 경우도 있으니 비둘기에게는 살기 좋은 환경인 셈. 비둘기가 앉기 좋은 평지라는 점도 한몫한다.

문제는 비둘기가 광장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는 점. 서울역 역사 자체가 오랜 시간 문을 활짝 열어둔 구조다.

다른 건물이나 역처럼 입구가 좁지 않고, 여러 개의 넓은 출입구가 존재한다. 이런 환경에서 비둘기가 광장을 배회하다 자연스럽게 서울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

특히 지하 서울역 1번 출구 쪽이 비둘기들의 주요 레이드 입구다. 열차 승강장 방면 역시 2층과 3층 모두 문이 활짝 열려있어 비둘기가 들어오기 좋은 구조.

승객들이 대합실 음식을 먹는 일도 잦은데, 이때 떨어진 부스러기가 비둘기의 일용할 양식이 되고 있다. 천장 철골 구조는 비둘기가 도망가기 좋은 은신처가 되고 있다.

이렇게 건물로 들어와 사람들 사이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비둘기 중에서도 집비둘기들이다.

[이정우 동서조류연구소장]
집비둘기는 전혀 다릅니다. 가금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가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때까지 사람이 먹이 주는 걸 먹고 살았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집비둘기는 사람을 보고 겁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물 안에 들어오고, 발이 걸릴 정도로 가까이 오고 그러잖아요.

서울역만큼은 아니지만, 서울시내 지하철역 안에서도 비둘기가 자주 보인다. 2023년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비둘기 관련 민원은 총 131건. 이 중 합정역이 51건으로 제일 많았고, 신도림역과(11건) 왕십리역이(9건) 뒤를 이었다.

요 세 역에 비둘기가 자주 출몰하는 이유는? 서울교통공사에 물어보니 한강에서 3km 내에 위치해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가가 가까우면 조류가 모이기 쉽다는 설명.

하지만 조류 전문가 의견은 달랐다. 강과의 거리보다 훨씬 큰 변수는 광장이라는 것. 앞서 언급한 세 지하철역 모두 출구 근처에 크고 작은 광장이 있다.

민폐 덩어리인 요 비둘기, 쫓아내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신도림역은 비둘기의 천적인 황조롱이 모형을 설치하기도. 근데 사진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비둘기가 금방 눈치채서 별 효과가 없다.

아예 상계역과 도봉역에는 비둘기들이 앉지 못하게 하는 버드 스파이크가 있고, 서울역은 최근 대합실에 비둘기 포획 틀을 비치했다. 서울시는 올해 7월부터 광장·공원에서 비둘기 먹이 주는걸 금지했다.

근데 서울역 광장을 관리하는 주체는 서울시가 아니라 국가철도공단이라 서울역 광장은 이 조치에서 빠졌기에 별 효과는 없을 듯 하다.

전문가들은 아예 비둘기 개체수 자체를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갈수록 비둘기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느낌인데, 적절한 방안을 찾아서 비둘기의 역습을 좀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