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만 12억 5천만 원…게이치가 백악관에서 쓴 UFC 역전극 3수만에 챔피언 등극

2라운드, 게이치가 먼저 캔버스에 쓰러졌다. 토푸리아의 왼손 보디샷이 복부에 꽂히며 무릎을 꿇었고, 그라운드에서 암바와 트라이앵글 초크까지 이어진 위기였다. 중계석과 팬들이 경기 종료를 직감하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4라운드가 끝나고 기권을 선언한 쪽은 토푸리아의 코너였다. 안와골절이 의심되는 심각한 안면 부상을 입은 토푸리아는 경기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저스틴 게이치(37·미국, 28승 5패)가 6월 15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남측 야외 특설 무대에서 열린 'UFC 프리덤 250' 메인 이벤트에서 일리아 토푸리아(29·조지아/스페인)를 4라운드 종료 후 코너 스톱 TKO로 꺾고 UFC 라이트급(70.3kg)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세 번의 타이틀 도전, 두 번의 서브미션 패배, 6년의 기다림이 백악관 옥타곤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게이치의 타이틀 도전 이력은 UFC 역사에서도 유독 길고 가혹한 축에 속한다. 첫 번째 도전은 2020년 10월 UFC 254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UFC 249에서 토니 퍼거슨을 꺾고 잠정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은 게이치는 같은 해 10월 당시 무패의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와 통합 타이틀전을 치렀다. 결과는 2라운드 서브미션 패배였다.

두 번째 기회는 2022년 UFC 274에서 찾아왔다. 상대는 타이틀을 박탈당한 전 챔피언 찰스 올리베이라였다. 올리베이라를 잡으면 챔피언 등극이 가능한 구도였다. 하지만 이번엔 1라운드 서브미션으로 더 빠르게 패배했다. 두 번 연속 서브미션으로 무릎을 꿇은 게이치에게 세 번째 기회가 올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게이치는 옥타곤을 떠나지 않았다. 2026년 1월 UFC 324에서 패디 핌블렛을 만장일치 판정으로 꺾고 잠정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며 세 번째 타이틀 도전권을 손에 넣었다. 상대는 UFC 입성 이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일리아 토푸리아였다. 베팅 오즈는 게이치에게 1대 6 언더독을 붙였다. 이기는 쪽이 게이치일 거라고 예상한 이는 소수였다.

토푸리아는 2024년 라이트급으로 체급을 올린 뒤 아르만 차르카스, 샤를 올리베이라를 연달아 제압하며 무패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폭발적인 KO 피니시 능력과 균형 잡힌 그래플링으로 UFC에서 가장 위험한 파이터 중 하나로 꼽혔다. 게이치가 넘어야 할 산의 높이는 객관적으로 상당했다.

1라운드, 게이치는 수비적으로 경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첫 라운드부터 날카로운 잽으로 토푸리아의 오른쪽 눈 주변에 열상을 냈다. 토푸리아가 접근 거리를 좁히려 할 때마다 칼라 타이로 움직임을 제한하고 더티 복싱으로 역공했다. 1라운드 종료 시점에 이미 토푸리아의 안면은 눈에 띄게 부어 있었다.

2라운드는 경기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구간이었다. 안면 타격이 막히자 토푸리아는 보디샷으로 전략을 틀었다. 강력한 왼손 훅이 반복적으로 게이치의 복부에 꽂혔고, 결국 게이치가 쓰러졌다. 토푸리아는 그라운드로 따라 들어가 암바와 트라이앵글 초크를 연속으로 시도했다. 경기가 거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게이치는 두 기술을 모두 버텨내며 라운드를 살아남았다.

3라운드에서 흐름이 완전히 뒤집혔다. 서브미션 시도로 체력이 빠진 토푸리아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게이치의 잽이 정확하게 안면에 꽂히기 시작했다.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가 연속으로 적중하면서 토푸리아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 라운드에서 이미 토푸리아의 양쪽 눈은 심하게 부어올라 시야가 현저히 좁아진 상태였다.

4라운드, 토푸리아는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며 반격을 모색했지만 게이치에게 막혔다. 엎드린 자세의 토푸리아 옆구리에 니킥까지 적중됐다. 4라운드 종료 벨이 울리자 토푸리아의 친형이자 코치인 알렉산드레 토푸리아가 기권 의사를 표했다. 토푸리아는 경기 후 SNS를 통해 1라운드에 오른쪽 눈의 시야를 잃었고, 2라운드가 끝날 무렵에는 왼쪽 눈마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과는 4라운드 종료 후 코너 스톱 TKO. 게이치는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40만 달러)와 퍼포먼스 오브 더 나이트(42만 5000달러)를 동시 수상하며 보너스로만 한화 약 12억 5000만 원을 챙겼다. UFC 16경기에서 보너스 17개 수상, 역대 최다 보너스 수상 부문 단독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코메인 이벤트에서는 시릴 간(36·프랑스)이 세 체급 제패를 노리던 알렉스 페레이라(38·브라질)를 2라운드 1분 27초에 TKO로 제압하고 UFC 헤비급 잠정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번 대회는 7개 매치 전 경기가 KO 또는 TKO로 마무리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번 경기를 단순히 '이변'으로 정리하면 게이치가 가져간 것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베팅 오즈 1대 6 언더독이라는 수치는 대중의 기대치일 뿐이고, 실제 경기 내용은 전략적으로 설계된 승리에 가까웠다.

게이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토푸리아는 초반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술을 갖고 있기에 초반 라운드에서 살아남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전 분석이 경기 플랜에 그대로 반영됐음을 보여준다. 1라운드부터 KO를 노리지 않고 잽으로 누적 타격을 쌓으며 토푸리아의 시야를 조여간 방식은, 36전(당시 기준) 경험에서 나온 계산된 접근이었다. 2라운드 위기도 그래플링 디펜스로 넘기며 체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토푸리아 입장에서는 전략 전환이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안면 공격이 막히자 보디샷으로 전환해 게이치를 쓰러뜨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서브미션 시도에 체력을 쏟아부은 것이 3라운드 이후 급격한 체력 저하로 이어졌다. 게이치가 말한 "누구도 3라운드 이후 나를 이길 수 없다"는 자평은 허풍이 아니라 이 경기에서 수치로 증명됐다.

장소의 맥락도 이 결과에 무게를 더한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백악관 남측 잔디광장에 특설 무대를 세운 이번 대회에서 미국인 게이치가 언더독으로 대역전극을 쓴 것은, UFC가 의도했든 아니든 대회 자체의 내러티브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게이치가 경기 후 "250년 전 우리는 1대 6보다 심한 언더독이었지만 지금 번성하고 있다"고 한 발언은 즉흥적인 말이 아니라 이 무대가 만들어낸 맥락을 정확하게 짚은 것이었다.

37세의 나이에 세 번의 도전 끝에 거머쥔 타이틀이라는 점도 빼놓기 어렵다. UFC 역사에서 여러 차례 타이틀 도전에 실패하고도 끝내 챔피언에 오른 사례는 있지만, 게이치처럼 두 차례 모두 서브미션으로 패배한 뒤 그래플링 디펜스를 강화해 복귀한 경우는 흔치 않다. 이번 대회 16경기 17보너스라는 기록 역시 게이치가 UFC에서 얼마나 일관된 방식으로 경기를 치러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토푸리아는 SNS를 통해 재대결 의지를 밝혔다. 안와골절 의심 부상에서 회복한 뒤 더 강한 상태로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리매치는 UFC 라이트급의 가장 자연스러운 다음 수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이치는 37세에 세 번의 도전 끝에 챔피언이 됐고, 보너스 최다 수상 역대 3위라는 수치가 그의 파이터로서의 일관성을 뒷받침한다. 재대결 의지를 밝힌 토푸리아가 부상에서 돌아왔을 때, 이번과 같은 결과가 반복될 수 있을까. 아니면 첫 패배를 소화한 토푸리아가 다른 방식으로 게이치를 무너뜨릴까. 라이트급 리매치가 성사된다면, 이번 경기보다 더 치열한 논쟁이 옥타곤 밖에서 먼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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