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고 투박한 빵을 파는 한남동 빵집, '오월의 종'을 아시나요?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맞습니다. 빵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홀로 빵을 만드는 시간을 좋아하거든요. 남에게 간섭받기 싫어 빵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2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네요.

호텔에서 근무한 것도 아니고 유학파도 아닙니다. 대학 때는 무기재료공학을 공부했어요. 시멘트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했고요. 31년간 남들이 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남들과 비슷해지는 날 보며 안심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보이지 않더군요. 나라는 사람이 사라진 거예요. 그 길로 퇴사하고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제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하루는 줄곧 새벽 4시에 시작됩니다. 가게 불을 켜고 오븐과 믹서기, 밀가루 포대와 발효종 그릇들을 깨우죠. 물 한잔 들이켜고 밀가루 포대를 열어젖히면, 그날의 빵 여정이 시작됩니다.

광부가 하얀 석탄을 캐내듯 밀가루를 퍼 올립니다. 하얀 가루로 가득 찬 주방에서 길게 바게트 모양을 만들어요. 토실토실한 반죽 위에 쿠프(칼집)를 넣고 힘차게 오븐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 스팀 버튼을 누릅니다. 노란 불빛 아래, 부풀어 오르는 빵을 지켜보는 순간은 늘 설렙니다. 오븐을 열면 안에 한가득 차 있던 수분감과 함께 구수한 빵 안개가 퍼져요. 문득 떠오른 생각을 소리 내 말해 봅니다. “아, 행복하다.”


Chapter 1. 시멘트 회사원, 퇴사 명분으로 빵을 택하다

어릴 적 제 관심사에 빵은 없었습니다. 술과 담배, 그림을 좋아했어요. ‘남자가 무슨 미술이냐’는 아버지 때문에, 미대 입시는 생각조차 못 했지만요. 대신 그림과 비슷한 데 꽂혔어요. 화학이었죠. 분자식과 원소 기호가 참 예뻐 보이더군요.

연합고사에서 화학 만점을 받았습니다. 무기재료공학과에 붙었습니다. 총칼의 ‘무기’가 아니라, ‘무기화학’의 무기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요.

얼떨결에 들어왔지만, 그래도 화학 공부는 재미있었습니다. 연구원을 하고 싶어 대학원을 준비했는데, 가세가 기울며 무산됐어요. 마침 시멘트 회사에 들어간 친구가 그러더군요. “우리 회사에 연구원 자리가 있다”고. 냉큼 들어갔죠.

그런데 막상 입사하니 말이 바뀌었어요. 연구소에 자리가 없으니, 6개월만 영업직으로 뛰래요.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영업이라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싫어도 도리가 없었어요. 눈 딱 감고 했습니다.


1년 후에 연락이 왔어요. 연구소에 자리 났으니 들어오라고. “안 가겠다”고 했어요. 영업이 적성에 맞았냐고요? 아뇨, 그냥 술 먹고 노는 게 좋았어요. 건축 공무원들 접대하면서 회삿돈으로 술 먹고 노는 게. 실적도 잘 나왔죠.

사람이 변했죠. 돈 쓰는 맛을 알아버린 거예요. 그때 저는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술 사줄게, 나와.” 그 한마디 하고 밤새도록 노는 게, 사회생활 잘하는 거라 믿었어요. 완전히 착각이었죠.

해가 갈수록 지쳐가더군요. 점점 한 가지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좋아 보이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작더라도 내 손에서 시작되어 끝을 마무리 짓는 일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선택한 게, 빵입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에요. 당시 회사 화장실 창문 너머로 빵집이 보였거든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아, 빵이라면 오롯이 내 손에서 시작해 끝날 수 있겠구나.’ 바로 사장실로 달려가서 얘기했어요. 퇴사하겠다고, 저 빵 만들어야겠다고.

돌이켜 보면 참 무모했네요. 신접살림을 차린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거든요. 다만, 아내에게 굳게 약속했어요. 4년 안에, 내 가게를 열고 빵 팔아서 돈 벌어 오겠다고.


퇴사 날에 회사를 나오자마자 정장 차림으로 제빵학원에 갔어요. 화장실에서 보던 그 빵집에서 운영하는 학원이었죠.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제일 긴 1년짜리 정규반에 들어갔어요.
죄다 고등학생들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제빵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친구들이었어요. 제가 반죽하고 있으면 옆에서 한 마디씩 얹었죠. “아저씨, 반죽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한번은 어린 친구 하나가 빈정거리면서 말했어요. “아저씨는 연세도 있는데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니에요? 살살해요, 몸 상해요.”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서른한 살 나이에 빵을 알게 되었는데, 스무 살도 안 된 네가 빵을 만드는 걸 보니 정말 부럽다. 너는 나보다 훨씬 유능한 제빵사가 될 거야.” 그러니까, 그 친구가 저한테 떡볶이를 사 주더라고요.

반장을 맡은 것도 행운이었죠. 실은 다들 하기 싫어했어요. 수업 전에 재료 준비하고, 수업 끝나면 청소 검수하고 가야 했거든요. 그게 저에겐 기회로 보였어요. 일찍 와서 재료 공부하고, 다들 하원하고 나면 오븐이나 기기를 만져보면서 사용법을 깨쳤죠.

1년 과정을 수료할 무렵, 사장님께서 본인이 운영하는 제과점에 수습사원으로 일해보라고 했어요. 알고 보니 ‘서울 3대 빵집’ 중 하나인 리치몬드과자점이었습니다. 사장님은 대한민국 제과 명장 3호인 권상범 명장님이셨고요.

들어오고 싶어서 줄 선 사람이 한가득인데, 절 넣어주신 거죠. 나중에 이유를 물으니 그러셨어요. “내 느낌상, 늦게 배운 친구들이 오래간다”고. 간절해서.

오월의종 대표인 정웅 제빵사 ⓒ롱블랙

Chapter 2. 밀가루 탄광이 좋았던, 최고령 막내

처음엔 케이크실에 배정받았어요. 새하얀 궁전 같은 곳이었죠. 늘 달큰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전 그게 안 맞았어요. 제가 동경한 곳은 지하 제빵실. 탄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검은 석탄가루 대신, 흰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제빵실 사람들은 마치 전쟁터의 군인 같았어요. 하나에 3~4kg 육박하는 철판을 대여섯개씩 들고 날랐죠. 거기선 앞치마가 위생용품이 아니라 갑옷이었어요.

‘와, 멋있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매드맥스」라서 그런 걸까요? 케이크실에서 종일 단 냄새를 맡고 있으면 머리가 아팠는데, 구수한 누룽지 같은 제빵실 향은 참 좋더라고요.


제과가 아니라 제빵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리치몬드에서 1년을 보내고, 압구정의 정글짐 베이커리로 옮겼어요. 바게트 같은 거친 빵을 만드는, 진짜 ‘베이커리’였죠.

제빵은 제과보다 인내해야 했어요. 발효빵을 하나 만들려면 효모군 배양하는 데만 일주일, 그걸 밀가루에 넣고 불리는 데 또 일주일이 걸립니다. 그래도 좋았어요. 빵 만드는, 진짜 재미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빵이 어렵고 힘들어도 ‘원래 이런 거구나’ 생각했기에 버틸 수 있었어요. 어설프게 알고 시작했다면, ‘뭐가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관뒀을지 몰라요.

ⓒ정웅

Chapter 3. 적자를 끌어안고 버티다

리치몬드 과자점에서 1년, 정글짐 베이커리에서 2년. 아내와 약속했던 4년 중 마지막 1년은 공사장에서 철거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2004년, 딱 4년이 되던 해에 고양시 행신동에 첫 오월의종을 열었죠.

당시 오월의종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케이크, 단팥빵 등 대중적인 빵이 메인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거친 효모빵은 두 개 정도만 만들었어요.

3년 만에 망했습니다. 10분 거리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겼거든요. 월세 못 내서 보증금까지 싹 다 날렸어요. 가게를 정리할 즈음, 한 단골이 그러더군요. 이태원으로 가는 건 어떠냐고, 거긴 외국인이 많아서 잘 맞을 것 같다고.

고민 끝에 이태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엔 내 마음대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죽더라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자.’


모든 빵을 하드 계열로 구성했습니다. 깜빠뉴, 바게트 같은 거칠고 무거운 빵으로요. 직원 둘 돈도 없어서 혼자서 빵을 만들었어요. 새벽 4시부터 빵을 만들고, 오전 11시에 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또 적자가 났습니다. “빵집이 게을러터졌다”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이걸 사람 먹으라고 만들었냐”는 손님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계속 빵을 만들었어요. 매일 만든 빵의 절반을 버리는 게 일상이었죠. 1년, 2년이 지나고 어느새 3년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출근해서 열쇠 구멍에 키를 돌리려는데, 손이 딱 멈추더라고요. 키를 돌리고 싶지 않았어요.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지겹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

그길로 도망쳤어요. 오븐이 고장 났다고 써 붙이고, 누가 볼까 봐 허겁지겁 한강 고수부지로 달려가서 소주를 마셨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죄지은 기분이었죠. 해가 다 지고 나서야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옥죄던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구나.’


물론 그 3년간의 세월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빵을 연습하고, 마음껏 실험할 수 있었거든요.

새로운 빵을 기획하고, 매대에 올라오기까지는 대략 6개월이 걸립니다. 무게부터 모양까지, 변수가 너무 많거든요. 같은 재료여도 깜빠뉴처럼 동그랗게 만들면 안이 촉촉하고, 바게트처럼 길게 만들면 식감이 바삭해지죠.

오월의종의 대표 빵이라 할 수 있는 크랜베리 바게트, 무화과호밀빵도 무수한 경우의 수를 둔 끝에 나왔습니다. 보통 빵 무게는 하나당 50g예요. 그런데 저희 크랜베리 바게트는 130g이죠. 반죽을 50g씩 잘라 구워봤더니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길래, 10g 단위씩 더하고 빼봤어요. 그 끝에 최적의 무게인 130g을 찾아냈죠.

그렇게 6개월을 공들여 개발해도, 제대로 된 반응을 보려면 6개월은 또 기다려야 합니다. 새로운 빵이 처음부터 불티나게 팔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사람들은 내가 잘 아는 빵을 사거든요. 어쩌다 한번 새로운 걸 먹어도, 그걸 다시 구매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이고요. 그러니 저도 몰랐던 거예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중첩돼 어느 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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