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필랑트 타보니’ 부산 연제구 가른 ‘정숙한 진화’[부산톡톡]
주파수 감응형 댐퍼 통해 세단급 승차감
복합연비 15.1km/ℓ·1회 주유 1000km
부산 생산 E세그먼트의 일상 경쟁력 선사

26일 오후 2시, 한낮의 여유가 도심을 감싸고 있었다. 부산시청을 출발해 부산의료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같은 연제구 안에서도 비교적 정비가 잘 된 도로다. 교통 흐름도 크게 막히지 않는 시간대. 르노코리아가 부산시청 직원들의 시승을 위해 지원한 신차 ‘필랑트’를 체험하기에는 차량 본연의 성격을 온전히 드러내기 좋은 조건이었다.
외관부터 시선을 끈다. 전면부에 적용된 일루미네이티드 로장주 로고와 그릴 라이팅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낮고 길게 뻗은 차체 비율은 전통적인 SUV보다는 쿠페형 세단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세단과 SUV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라는 정의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점을 디자인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가속 페달을 밟자, 전기차를 연상시키는 정숙함 속에서 차는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페달을 깊게 밟아도 엔진의 존재감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모터 중심으로 시작된 주행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엔진과 이어지지만, 경계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도심 주행에서 흔히 발생하는 ‘끊김’이나 ‘변속 충격’이 억제된 덕분에 주행 리듬은 일정하다.
이 같은 감각의 배경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있다. 1.64kWh 대용량 리튬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도심 구간에서는 최대 75%까지 전기 모드로 주행이 가능하다. 실제 주행에서도 엔진 개입이 최소화되면서 전기차에 가까운 정숙성과 부드러움이 구현되는 방식이다.
연제구 일대의 노면 위에서 필랑트의 승차감은 더 또렷해졌다. 잔진동은 부드럽게 걸러지고, 차체는 과도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주파수 감응형 댐퍼(SFD)가 노면 상태에 따라 감쇠력을 조절하면서 SUV 특유의 출렁임을 억제한다. 체감은 낮고 안정적인 세단에 가깝다. 속도를 조금 높여도 차체는 흐트러지지 않고 중심을 유지했다. 편안함과 안정감 사이의 균형을 세심하게 맞춘 느낌이다.

실내로 시선을 돌리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openR 파노라마 스크린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꾼다. 해변 위로 일렁이는 물결을 보니 시야가 탁 트이면서 실내가 한층 넓게 느껴진다. 동승석까지 이어지는 디스플레이는 ‘운전자 중심’에서 ‘탑승자 중심’으로의 변화를 상징한다. 뒷좌석 역시 무릎 공간이 여유로워 장거리 이동에도 부담이 적은 구조다. 시트는 몸을 단단히 잡으면서도 압박감이 없다.
주행 중 음성으로 기능을 호출하자 차량은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AI 음성 비서 ‘에이닷 오토(A. Auto)’가 적용된 영향이다. 단순 명령 수행을 넘어 대화 흐름을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시한다. 여기에 티맵(TMAP)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실시간 교통 정보와 경로 안내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차량이 운전자의 주행 패턴을 학습해 맞춤형 안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동차가 점차 개인화된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전과 편의 사양도 인상적이다. 차선 유지 보조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차세대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이 기본 적용돼 주행 피로를 낮춘다. 해당 구간에서도 차량은 과도한 개입 없이 안정적으로 보조 역할을 수행했다. ‘운전을 대신한다’기보다 ‘운전을 돕는다’는 성격이 강하다.
연비는 도심 환경에서 특히 강점을 드러낸다. 전기 모드 비중이 높은 주행 특성 덕분에 연료 소모는 체감상 크지 않았다. 공인 복합 연비는 ℓ당 15.1㎞ 수준이지만, 정속 주행이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효율성이 더 부각된다. 한 번 주유로 1000㎞ 안팎을 달릴 수 있다는 점도 실사용 관점에서 의미 있는 대목이다.
필랑트는 르노그룹의 중장기 전략 ‘인터내셔널 게임 플랜 2027’의 핵심 모델로, 부산공장에서 생산되는 E세그먼트 크로스오버다. 세단과 SUV의 장점을 결합한다는 개발 방향은 실제 주행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SUV의 공간성과 시야, 세단의 승차감, 하이브리드의 효율이 충돌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부산시청에서 부산의료원까지 길지 않은 구간이었지만, 차량은 크게 튀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인상을 남겼다. 자극적인 성능이나 과장된 연출 대신, 일상의 주행을 얼마나 매끄럽게 만들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결과다. 익숙한 도심의 길 위에서 필랑트는 ‘잘 다듬어진 이동 경험’이 무엇인지 조용히 증명했다.
부산=조원진 기자 bsc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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