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 플랫폼 진출이 확대하면서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진입 장벽이 높았던 매스미디어와는 다른 플랫폼은 시청자도 제작자가 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다양한 콘텐츠들이 뜨고 있다. 여기에 지상파 공개 코미디 시대가 저물면서 유튜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코미디 채널과 다시 한번 코미디를 트렌디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코미디 레이블이 있다.
장삐쭈, 피식대학, 숏박스 등 이름만으로도 화제성을 실감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코미디라는 이름을 다시금 친숙하게 부를 수 있게 만들어가고 있는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를 만났다.

메타코미디라는 이름은 어떤 뜻인가요?
회사를 만들 무렵에 메타Meta가 뜨고 있었어요. 그리고 '메타 유머 Meta Humor'라는 장르가 있어요. 농담의 한 종류인데 그걸 메타 코미디라고 부르기도 해요. 또 코미디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자주 쓰여서 낡은 단어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랐죠. 가끔 주변에서 제가 하는 일이 코미디 이상의 일이라고 얘기하는데, 물론 칭찬의 의미라는 걸 알지만 때로는 그 말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코미디가 가볍게 여겨지는 것 같거든요. 코미디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는 책임 의식이 있어서, '이게 정치냐? 코미디지' 같은 말도 좋아하지 않아요.

메타코미디와 소속 크리에이터의 구독자 수를 더하면 약 1,140만 명이에요. 정말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어떤 기준으로 크리에이터를 영입하고 있나요?
순전히 제 마음이 끌리는 대로예요. 재능을 보고 제가 먼저 반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업화는 그 후에 하는 것이고요. 끝까지 같이 버티는 게 생각보다 중요해요. 저희가 믿고 데려온 크리에이터는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요.
예전에는 코미디언이 각 방송사에 소속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모두가 개별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개그콘서트>나 <코미디빅리그>처럼 우리에게 익숙하던 대중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이제는 코미디가 멀게 느껴지기도 해요.
2015년부터 2020년 정도까지 한국에서 코미디가 사라진 시기가 있어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방송국이나 코미디언뿐 아니라 시청자도요. 재미없으면 댓글을 달거나 제작사에 피드백을 보낼 수 있는데, 개선을 요구하는 대신 예능 프로그램을 봤죠. 방송국도 예능을 제작하느라 바빴고요. 당시에는 제작자는 물론 코미디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드물었어요.

모두의 관심과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던 거네요.
코미디는 늘 우리 주변에 있어야 해요. 음악처럼요. 힙합이라는 장르가 유행하면서 밴드 음악을 전처럼 많이 듣지 않을 순 있지만 음악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잖아요. 그릭 저는 코미디언 데이비드 샤펠의 말처럼 코미디가 위험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야 사람들이 열광하는 콘텐츠가 탄생하고, 뭉툭해지는 순간 매력을 잃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뮤지션들이 흔히 '요즘 애들이 듣는 노래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요즘 애들이 보는 '코미디 이상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여야 새로운 게 아닐까요? 그런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향해요.
코미디 콘텐츠를 제작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것인가요?
코미디라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라면, 모든 사람이 느끼는 적정선의 위치가 다르다는 거예요. 그 기준이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본인도 잘 모른다는 점이 특히 그렇죠. 무언가를 접했을 때 '어, 이게 왜 불편하지?' 하고 그제야 생각하는 거예요. 아주 괜찮은 농담이 생겼을 때, 이런 면을 감안하고 의도적으로 그 선을 넘어보는 행위가 코미디예요.

코미디를 문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니 새로워요. 돌아보면 코미디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처음 고민해 보는 것 같아요.
어떤 콘텐츠나 예술 작품을 볼 때 무엇을 형상화한 건지 읽어내려고 하거나,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고민하기 전에 즉각적인 반응만 보이는 일이 많죠. 만든 사람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코미디는 무엇인가요?
놀림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저희 팀원 중에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즐겨 하는 정빈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한번은 농담이라는 게 뭐냐고 묻길래 제가 "놀리는 거지."라고 했다가 대화가 깊어졌어요. 저는 코미디가 누군가를 놀리는 고급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는 코미디가 존재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결국 코미디라는 건 어딘가에 불편해지는 사람을 두는 게 불가피하다는 생각에 도달해요.

코미디가 놀리는 일이라면, 그 대상이나 방식을 정하는 데 힘을 쏟으실 것 같아요.
그렇죠. 도덕이나 정서적인 공감대를 잣대로 했을 때 놀릴 수 있는 대상을 고민해요. 사회적으로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만 놀려도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고요. 재밌는 건 코미디가 '잘 놀리면' 사람들이 흥미로운 반응을 보여요. <한사랑 산악회> 댓글 창에 '이 아저씨들이 이제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말이 많아졌어요. 어느 순간 사람들이 코미디가 짚어내는 지점을 이해하고 그 대상에 친근한 감정을 가지더라고요.
그야말로 코미디만이 가지는 놀림의 미학이네요.
그렇죠. 얼마나 '잘' 놀리는지에 따라 반응이 달라져요. 우리 사회에 서로 농담하며 잘 놀리는 분위기가 자리잡으면 좋겠어요. 그럼 더 많이 웃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메타코미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고요. 이런 마음으로 늘 놀림의 가치를 반추하고 있어요.
글 송재은
사진 Hae 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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