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취업 못해요"... 300만원 내고 학원 다니는 취준생들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한국 취업시장은 바늘구멍을 향해 수많은 청년이 몰려 경쟁하는 지옥입니다. 사진은 기업 채용 공고로 가득한 서울 시내 대학교 게시판. /사진=뉴스1

#대학 졸업 후 커리어를 착착 쌓는 멋진 증권맨이 되고 싶었던 정모씨(남·26)는 현재 취업을 준비하면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낮에는 생활비를 위해 일하고 오후에는 입사 시험 공부를 한다. 매일이 불안한데 지갑 속 사정은 더 착잡하다. 최근 구매한 교재와 특강 수강료 때문에 갑자기 잔액이 줄어들어서다. 긴축재정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정씨는 취업준비생 신분을 하루 빨리 벗고 싶은 마음 뿐이다.

최근 불경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업시장에 빨간불이 지속되자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열망은 무서운 취업 경쟁으로 번졌습니다.

취준생들은 다른 지원자보다 뛰어난 스펙을 갖추기 위해 학원에 다닙니다.

100만~200만원 수준인 학원 수강료가 부담이지만 취업이라는 대명제 앞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취준생이 지출하는 학원비와 생활비·교재비·교통비 등은 고스란히 취준생과 그 부모에게 전달됩니다.

2~3년의 취업 준비 기간이 놀랍지 않은 세상에서 한국 청년들은 불확실한 나날을 경제적 압박과 함께 견디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걸론 부족… 학원은 필수

취준생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만의 무기를 갖추기 위해 사비를 들여 강의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IT 취업 학원 관계자가 합격자 현황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방민주 기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IT전문 A학원은 각종 IT·정보 보안 능력에 대해 교육하는 곳입니다.

이 학원 수강생의 40%가 전공자입니다.

전공자가 굳이 학원 강의를 들을 필요가 있을까.

A학원 관계자는 "대학교에서는 이론-과제-시험 3단계만 거치는데 특히 '족보'라고 불리는 기출유형을 반복해 학습한다"며 "하지만 IT분야는 많은 실습이 필요해 따로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코딩 열풍이 불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 업계 현황이 레드오션인 점도 언급했습니다.

이에 상위 기업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은 '심화 단과강의'를 들으러 학원을 찾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비 과정도 있으나 말 그대로 기본과정이어서 이것만 듣는 학생은 드뭅니다.

핵심만 압축한 국비 과정은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제대로 소화할 수 없어서입니다.

따라서 국비 과정을 듣기 위해 학원 유료 기초강의를 미리 수강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기초과정의 수강료는 6개월에 300만원대입니다.

취준생들이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더 공부해서 '연봉·조건이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관계자는 "국비 과정만 듣고 빨리 취업할 수 있지만 대부분 처우가 열악한 회사에 자리잡는다"며 "블랙 기업이 아닌 좋은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놓고 수많은 취준생이 자격증을 추가하고 고급 코딩 기술을 배워 경쟁하는 것입니다.

수강료 270만원… "합격할 수 있다면 기꺼이"

막막한 취준생들은 해결책으로 학원을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사진은 공기업 3개월 준비반 가격정보(왼쪽), 승무원 학원 기본과정 커리큘럼. /사진=방민주 기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B학원은 3개월 공기업 준비반 수강료가 270만원입니다.

공기업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이 과정은 10명 이내로 모집되는 소수정예 수업입니다.

학원 관계자는 하반기 채용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수강 신청을 서둘러야 한다고 기자를 재촉했습니다.

소득이 없는 취준생에게 270만원은 큰돈입니다.

그러나 취업이 절박한 이들은 소비자로서 합리적 선택을 하기 어렵습니다.

서울 마포구의 C학원은 승무원 준비생을 위한 학원으로 6개월 과정에 200만원대 수강료로 운영됩니다.

필수 자격증 취득과정은 국비로 40만원에 해결할 수 있지만 '면접'이 중요한 승무원 채용에서 면접 코칭이 제외된 국비 과정만 듣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학원 관계자는 "강사진들이 자세, 발성, 영어 인터뷰와 자소서 작성법까지 가르치기 때문에 학원 코스만 제대로 따라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에 "(우리 학원은) 국비 지정 기관이라 다른 학원보다 저렴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준생들이 비싼 수강료를 내고 학원에 다니는 이유는 뭘까.

첫째, 일부 업계가 진행하는 추천채용 때문입니다.

이는 보증된 학원 수강생만 원서를 넣을 수 있어 학원 수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둘째, 취업에 필요한 것을 체계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학원은 누적된 채용 과정을 겪은 강사진들과 방대한 자료가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수강생에게 맞는 직무·자소서 나아가 면접까지 지원합니다.

취업에서 '나이'가 공공연한 스펙으로 취급되는 만큼 학원을 이용해 취업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거란 기대로 큰 돈을 결제하는 것입니다.

최종면접에서 여러번 고배를 마신 김모씨(여·24)는 최근 면접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김씨는 "어떤 기준으로 떨어진 건지 모르니까 불안하다"며 "객관적으로 면접 태도나 자세를 지도받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 달 수강료가 30만원인데 늘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계속 (취업이) 안 되니까 마지막 밧줄을 잡는 심정으로 학원을 택했다"고 밝혔습니다.

각종 자격증·교재비에… 수십만원 플렉스

취업을 위해 기본적으로 드는 비용이 수십만원을 초월해 부모의 등골이 휘고 있습니다. 사진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강모씨의 최근 교재 구매. /사진=방민주 기자

현재 사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정모씨(남·26)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용돈으로 생활해 부모님에게 짐이 된 것 같았다"고 고백한 그는 공부에 방해되지 않는 오전에 카페에서 일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소요되는 비용에 대해 정씨는 "기업별 인·적성 문제집 여러 권, 인터넷 강의, 교통비, 자격증 접수비 등 생각보다 돈 쓸 일이 많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그는 "무조건 여러 곳에 지원해야 합격에 가까워진다"며 "하지만 기업마다 요구 조건이 달라 그에 걸맞게 갖추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한탄했습니다.

강모씨(여·25)는 현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씨는 건설공학과를 전공했으나 관련 인턴을 통해 겪은 열악한 근무환경에 전공과 무관한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돈을 절약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고 구립 도서관을 이용하지만 강의만큼은 비싼 메이저 업체를 선택했습니다.

"(인터넷 강의가) 싼 곳도 있었는데 후기가 좋은 강의를 듣고 최대한 빨리 합격하고 싶어 비싼 곳으로 정했어요. 부모님이 모든 걸 지원해주시는데 죄송한 마음 뿐이죠. 빨리 합격해서 (부모님께) 보답하고 싶은데…." 그는 끝내 말끝을 흐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