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처 펜실베이니아, 여론조사론 못 읽는 변수 셋 있다
[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D-24 관전 포인트
그러던 것이 지난달 하순부터 다시 트럼프에게 약간의 상승세가 나타났다. 지난달 10일 후보토론회에서 오하이오주의 아이티 이민자들이 애완견을 잡아먹는다는 등 막말발언을 한 트럼프의 지지율은 일시적으로는 내려갔다. 하지만 그 이후 오히려 뉴스의 초점이 되고 선거판의 주도권을 다시 쥐기 시작하면서 반등의 기세를 올리고 있다. 트럼프의 막말은 선거판 헤드라인을 되찾기 위한 전략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발언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해리스에 쏟아진 유권자들의 기대와 관심은 8월 시카고 전당대회를 정점으로 거품이 걷히기 시작했다. 이제 선거가 3주 남짓 앞으로 닥쳐왔다. 오랜 기간 미국 대선을 관찰해 온 필자의 견해로는, 여론조사만으론 잘 읽을 수 없는 변수 몇 가지가 선거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펜실베이니아 태생 바이든도 고전한 곳
널리 알려진대로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승패는 6개나 7개의 경합주에서 결정이 난다. 11월 5일 치러질 이번 선거 역시 마찬가지여서 24개주(선거인단 219명)는 이미 공화당이, 19개주(선거인단 226명)는 민주당이 확보한 상태고 나머지 7개주(선거인단 93명)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박빙이다. 경합주를 다시 들여다보면, 위스콘신은 해리스가 이기고 조지아와 애리조나는 트럼프가 우세하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견해다. 네바다와 펜실베이니아는 초박빙이다. 노스캐롤라이나는 트럼프 우세지역으로 유지되다가 최근 2주 정도 사이에 트럼프가 지지하는 공화당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후보의 자질문제가 공론화 되면서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만일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에서 이기고 트럼프가 조지아·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에서 이기면 양 후보는 선거인단 270명씩을 확보해 동률이 된다. 골프에서 홀인원이 나올 확률보다 더 낮다는데 이번엔 그럴 가능성이 점점 더 크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7개 경합주 가운데서도 승부처는 단연 펜실베이니아다. 앞의 계산은 펜실베이니아에서 해리스가 이긴다는 전제 아래 나온 것이고, 펜실베이니아에서 지면 해리스는 끝이다. 그래서 전 세계에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 대통령을 펜실베이니아 1개주에서 뽑는다는 말이 나온다. 펜실베이니아는 경합주 중 선거인단수(19명)가 가장 많다. 또한 대륙의 가장 동부지역이라서 개표 결과가 가장 빨리 나온다. 펜실베이니아 개표결과가 나오는 시각에 중부, 서부 경합주에선 한창 투표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누가 이기든 그 결과는 중부, 서부 경합주의 표심에도 영향을 준다. 펜실베이니아는 원래 탄광·유전·철강 등 2차산업이 주 경제원인데 1990년대 집권한 민주당의 클린턴이 신(新)경제와 세계화란 명분으로 미국의 제조업을 해외로 내보내는 바람에 쇠락해졌다. 그 바람에 민주당에 배신감을 갖게 된 유권자들의 표심이 2000년대 들어 점점 공화당 쪽으로 옮겨갔다. 그 여파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0.7%포인트(4만4000여 표) 차이로 이겼다.
지금 펜실베이니아에서 해리스는 4년 전의 바이든처럼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펜실베이니아는 중하층 백인 노동자들이 유권자의 다수다. 경합주 중에 경제 이슈가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펜실베이니아가 트럼프에 쏠리는 이유는 환경보다 경제를 우선하는 입장 때문이다. 석유·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많이 캐내 에너지값을 내려야 경제가 산다고 주장한다. 광산 폐쇄와 가스·석유 산업의 쇠퇴는 펜실베이니아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환경과 에너지 전환을 내세우는 해리스의 정책은 펜실베이니아 경기 활성화와 결이 다르다. 해리스가 바이든 정부에서 주장하고 실행한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은 펜실베이니아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법안이다. 해리스는 대신 낙태 관련 정책으로 여성표를 넓히고 있는 민주당 소속 주지사 조시 샤피로의 인기에 힘입어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해리스가 박빙 우세로 나오는 여론조사 지지율을 믿고 낙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펜실베이니아는 전국에서 숨은 트럼프지지층, 즉 ‘샤이(shy) 트럼프’가 가장 많은 곳이다. 최근 폴리티코의 여론조사에서 4년 전에 트럼프를 지지했느냐의 질문에 38%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4년 전 투표결과는 48.84%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현재 시점에서 볼 때 펜실베이니아에서 해리스가 약간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 당일 흑인 등 소수계가 투표소에 직접 가서 투표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투표하는 날이 공휴일이 아니고 일하는 시간을 피해서 투표를 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계에게 우편투표는 매우 중요하다. 소수계의 투표율이 높아질수록 민주당이 유리해지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4년 전 선거에서 트럼프는 우편투표와 사전투표 때문에 패배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번에 우편투표와 사전투표를 제한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진 곳이 적지 않다. 특히 트럼프의 요구는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에 집중해서 몰리고 있다. 하나같이 경합주들이다. 우편투표가 부당하고 부정이 많다며 중요 카운티에서는 트럼프 지지세력의 우편투표금지 소송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일 트럼프가 패할 경우, 결과에 불복할 밑판을 까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선거후 트럼프가 패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함을 예고하는 현상이다.
마지막 변수는 백인 표심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백인과 비백인의 비율은 55대 45로 격차가 좁혀졌지만, 시민권자에게만 투표권이 있기 때문에 유권자 숫자는 70대 30으로 보는 게 맞다. 버락 오바마가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되던 2008년 대선 때 백인들 사이에선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안 한다”는 말이 회자됐다. 오바마의 리더십을 지지하지만 정작 커튼이 쳐진 투표소 안에서는 흑인 대통령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해리스는 ‘흑인 여성’ 후보다. 지식인일수록 공개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백인 유권자들의 표심이 기표소 안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경합주의 유권자 수는 백인이 절대 다수다. 해리스는 이중 삼중의 핸디캡을 안고서 11월 5일을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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