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식 전날 밤이었습니다. 짐을 다 싸 놓고도 딸은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방문 앞을 지나가 보았습니다. 문틈으로 보인 모습에 그대로 멈춰 섰습니다.

책상 서랍을 하나씩 열고 있었다
딸은 오래된 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고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쓰던 물건들이 아직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를 꺼내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시 넣어 두었습니다. 가져가지도 버리지도 않는 손짓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남겨 두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떠나는 쪽도 준비가 필요하다
집을 떠나는 일은 짐을 옮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익숙한 자리와 인사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없으면 나중에 허전함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밤에 방을 정리하는 자식이 많습니다. 부모는 그 모습을 뒤늦게 알아챕니다.

부모는 방을 오래 비워 두게 된다
자식이 떠난 뒤에도 방을 바로 정리하지 못하는 집이 많습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게 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부모 자신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 방은 한동안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정리는 대개 한참 뒤에야 이루어집니다.

그날 밤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야 잘 잤느냐고 물었습니다.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서로 재촉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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