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협약 깨고 나왔다는 투명 소주병 근황

이 사진을 보라. 2019년에 출시된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과 2022년에 출시된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 새로다. 진로이즈백은 출시 후 4년간 누적 15억 병, 새로는 7개월 만에 누적 1억 병이 판매되며 소주 시장의 신흥 강자로 자리잡고 있다. 근데 이 소주들... 뭔가 우리가 알던 소주와 좀 다르게 생겼다? 유튜브 댓글로 “요즘 나오는 소주병은 왜 초록색이 아닌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 봤다.

진로이즈백은 둥그런 옆선에 연한 하늘색 병이고, 새로는 도자기 디테일이 들어간 투명색 병이다. 소주병은 초록색이다는 오랜 국룰처럼 정해져 있었는데 왜 요즘 소주는 초록색 병이 아닐까? 그보다 먼저, 왜 소주는 다 같이 초록색 병을 썼던 걸까?

윤성섭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운영팀장
"2009년도에 처음에 소주 공병 공용화를 위한 자발적으로 협약을 체결했거든요. 그 전에는 각 사마다 따로따로 다 병들을 쓰다 보니까 이게 어느 하나의 병을 쓰게 되면 다른 쪽에서도 같이 쓸 수 있고 이렇게 하는 게 좀 좋겠다 해서 자발적 협약서를 체결을 다 하게 됐고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소주병이 초록색이었던 건 아니다. 옛날 소주는 제각기 다 다른 색, 다른 모양이었는데, 2009년 소주 제조업계와 환경부가 소주 공병 공용화 자율협약을 맺으며 병을 통일하게 된 거다.

<undefined dmcf-ptype="blockquote2" dmcf-pid="" class="undefined">이렇게 통일된 초록색 소주병의 정식 명칭은 표준화병. 표준화병으로 통일되면 타 회사 소주병이 수거돼도 라벨만 바꿔 재사용하면 되니 제조원가도 절감되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표준화병으로 채택된 건 당시 가장 많이 유통되던 하이트진로의 360ml 초록색 참이슬 병이었다.</undefined>

한라산 등 일부 소주를 제외하고, 98%가 표준화병으로 통일됐고 공병 회수율은 97.6%에 달하여 해외에서도 자원 재사용 우수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갈수록 회식 자체가 줄고 코로나 영향도 커서 주류 소비량이 몇 년째 감소세를 보이게 되자 소주 업계의 경쟁이 과열되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보단 눈앞에 보이는 매출이 중요했던 거다.

윤성섭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운영팀장
“생산자들이 코로나라든지 다양한 환경적인 변화에 의해서 그들도 영업 이익을 창출하고 주류 산업이라든지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거기에 마케팅이나 이런 것들이 같이 감미가 되다 보니까 다 같이 쓸 수 없는 표준화병 이외에 비표준화 병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협약에 직접적인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19년. 시장 점유율 1위인 하이트진로가 뉴트로 컨셉의 하늘색 진로이즈백을 출시하면서다. 술집이나 마트에서 소주병을 수거할 때 표준화병과 비표준화병을 구분하지 않고 수거해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소주병이 섞일 수밖에 없고, 처음처럼 공장에 진로이즈백 공병이 쌓이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롯데칠성음료에서는 수거된 진로이즈백 공병을 공장에 쌓아두고 하이트진로에 돌려주지 않아 소주 업계 1, 2위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래도 공병당 10.5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교환하는 것으로 합의됐다고 하는데.

이러나저러나 진로이즈백의 인기는 출시 직후부터 고공행진이었고 업계 1위가 성공하니 그 뒤로 비표준화 병이 우후죽순 출시되기 시작했다. 작년 새로를 출시한 롯데칠성음료에 전화하니,

롯데칠성음료 관계자
“어떤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게 또 병인데, 물론 환경적인 요소도 중요하긴 중요하지만 너무 과한 규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업체들끼리 다시 이제 협약을 맺어서 상황이 그렇게 됐었고 그 이후에 진로이즈백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다른 지방 소주 사에서도 녹색 병이 아닌 다른 병들이 나왔고 저희도 처음처럼 새로라는 제품을 준비하면서 과거 공용 녹색병이 아닌 이형병으로 만들었고...”

환경을 생각하자던 롯데칠성음료에서도 비표준화 병의 신제품을 출시하며 씁쓸한 소주병 개성시대가 열린 거다. 소주 시장은 특히 제품력이 크게 다르지 않아 모델과 패키지 등으로 차별화를 둬야 하는데, 병으로 차별화를 두기 시작한 이상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제조업계에서는 비표준화 병을 사용하더라도 재사용 시스템을 마련하여 환경보호에도, 제조원가 상승에도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비표준화 병을 교환할 때 드는 비용, 물류비 등이 단가 상승의 요인이 될 수밖에 없고, 최근 소주 가격 인상 논란과도 관계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

소주 업계가 소비자와 환경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맺었던 협약의 훈훈한 맛이 그립긴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