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이 베트남의 가상자산 '거래소·수탁·투자서비스·게임' 시장으로 진출하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베트남이 국내 가상자산 기업들의 새 진출지로 떠오르고 있다. 두나무와 빗썸은 현지 금융사와 가상자산거래소 인프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인프라·서비스 기업들도 베트남 시장과 접점을 넓히고 있다. 그 배경에는 베트남 가상자산 시장의 구조 변화가 있다. 이용자 수요가 먼저 커진 시장이 허가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국내 기업들에도 새로운 진입 기회가 열리고 있다.
개인투자자가 키운 가상자산 시장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가상자산 수요가 큰 시장으로 꼽힌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의 ‘2025 글로벌 크립토(가상자산) 채택지수’에 따르면 베트남은 인도, 미국, 파키스탄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체이널리시스는 온체인(On-chain)·오프체인(Off-chain)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국의 대중적 가상자산 이용 정도를 평가했다. 온체인은 모든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직접 기록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오프체인은 효율성을 위해 네트워크 외부에서 거래를 처리한 뒤 최종 결과만 블록체인에 반영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베트남 시장의 특징은 기관보다 개인투자자 기반이 두껍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분석 전문 기업 타이거리서치의 ‘2025 베트남 웹3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베트남 성인 약 2120만명이 가상자산을 보유하거나 이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연간 거래 규모도 1000억달러(약 149조원)에 달한다.
개인투자자 수요가 먼저 커진 데에는 젊은 인구 구조, 높은 모바일 금융 이용률, 해외 플랫폼 접근성이 함께 작용했다. 제도권 금융상품으로 정비되기 전부터 이용자들은 글로벌 거래소와 개인 지갑을 통해 가상자산을 거래했다. 시장이 먼저 커지고 제도가 뒤따르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이 구조는 해외 기업에 매력적이다. 이용자 기반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시장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거래·투자 수요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오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관리 부담도 컸다. 거래 상당 부분이 해외 플랫폼, 개인 지갑, 장외거래를 통해 움직이면 과세 기반을 잡기 어렵다. 자금세탁방지와 투자자 보호 장치도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보관 안정성, 시장 감시 체계 역시 제도권 밖에 놓인다.
베트남이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제도화를 함께 추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베트남 정부는 2024년 국가 블록체인 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역내 블록체인 선도국으로 자리 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블록체인을 단순 투자자산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과 산업 경쟁력의 기반 기술로 보겠다는 방향이다. 산업 육성 방향을 먼저 제시한 뒤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정리하고 거래시장 시범 운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시범 제도로 열린 '허가받은 시장'
가상자산 시장에는 별도 제도화 작업이 붙었다. 베트남 정부는 2025년 9월 ‘결의안 05/2025/NQ-CP’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 시범 운영의 틀을 마련했다. 현지 로펌 비엣안로에 따르면 해당 제도는 5년간 운영된다. 가상자산 발행과 거래시장 운영, 관련 서비스 제공을 허가 사업자 중심으로 관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범 제도의 핵심은 거래를 막는 데 있지 않다. 해외 플랫폼과 비공식 경로로 흘러가던 수요를 베트남 당국이 관리할 수 있는 국내 사업자 체계로 옮기는 데 있다. 결의안에 따르면 베트남 내 가상자산 거래는 베트남 재무부 허가를 받은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거래와 결제는 베트남동 기준으로 설계된다.
사업자에게 요구되는 의무도 금융회사에 가깝다.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는 자금세탁방지, 테러자금조달방지, 사이버보안, 데이터보호 관련 요건을 따라야 한다. 이용자 자산을 보관하고 거래를 중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금 흐름을 확인하고 이상거래를 관리하는 체계를 갖춰야 하는 셈이다.
진입 문턱도 낮지 않다. 결의안은 가상자산 거래시장 조직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사업자가 베트남 기업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최소 납입 자본금은 10조동(약 5650억원)으로 설정됐다.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정관자본의 49%를 넘을 수 없다. 베트남 재무부는 공안부, 중앙은행과 함께 최대 5개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를 선정하게 된다. 허가 사업자는 거래시장 운영뿐 아니라 자기매매, 수탁, 발행 플랫폼 제공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보다 소수 현지 사업자를 통해 관리 가능한 범위에서 시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해외 기업이 베트남 시장에 들어가려면 현지 법인, 대규모 자본, 은행 연계, 보안·준법 체계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외국인 지분 제한까지 감안하면 현지 은행, 증권사, 기술기업과의 협력이 사실상 주요 진입 경로가 된다.

직접 진출보다 파트너십…한국 기업에 열린 틈
베트남 시장에 들어가려는 해외 기업 입장에서는 현지 법인 설립, 자본금, 은행 연계, 외국인 지분 제한이 한꺼번에 걸린다. 직접 진출보다 현지 금융사와의 파트너십이 사실상 표준 경로가 되는 이유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을 보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국내 거래소와 가상자산 인프라 기업들은 원화마켓, 실명계좌, 정보보호 인증, 자금세탁방지 신고 체계를 거치며 금융회사에 준하는 운영 경험을 쌓아왔다. 현지 금융사가 가진 고객 기반·인허가 접근성과 한국 기업이 가진 운영·보안·수탁 역량이 맞물리는 구조다.
두나무와 빗썸의 베트남 행보도 이 같은 제도 변화와 맞물려 있다. 두나무는 MB은행과 손잡고 베트남 가상자산거래소 설립과 제도 구축을 지원하는 협력에 나섰다. 빗썸은 SSI증권 계열 SSID와 거래소 설립·운영 전반에 대한 협력 양해각서를 맺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지 파트너 입장에선 라이선스를 확보하더라도 거래소 운영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가상자산거래소는 사고 한 번으로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사업인 만큼, 한국 거래소들이 원화마켓을 운영하며 검증한 운영·보안 체계가 협상 카드가 된다”고 말했다.
최이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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