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WBC 다큐멘터리, <격전을 넘어 – 일본팀의 기록>을 시청하다가 씁쓸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 장면은 일본 대표팀이 우리 대표팀의 전력을 분석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일본 전력분석팀은 우리 투수진을 ‘볼넷 자멸형’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들의 분석 내용은 이랬습니다.
우리 대표팀의 야구 중계방송을 전담하면서 저도 느꼈던 부분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우리 대표팀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런 식으로 분석을 한다는 것은 자기들은 볼넷을 주고도 막아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아닐까?’
우리는 중계방송을 하면서 '맞더라도 볼넷은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데이터를 통해 이 오랜 관념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만약 볼넷이 안타보다 ‘실점’이라는 최악의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히 적다면, 투수에게 볼넷은 피해야 할 재앙이 아니라 지능적으로 활용해야 할 전략적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C (Run Created, 득점 창출 또는 득점 생산)
RC(Run Created)는 세이버 매트릭스의 아버지 빌 제임스가 고안한 기록으로 최초의 세이버 매트릭스 기반 득점 생산 지표입니다. 공식은 복잡하지만 보는 법은 간단합니다. 나타내는 숫자는 누적 기록으로 지금까지 타자가 지금까지의 경기에서 실질적으로 몇 점을 생산했는지를 나타냅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아무튼 공식은 이렇습니다.
이 식에서 A, B, C는 이렇습니다.
A = 안타+볼넷-도루실패+사구-병살타,
B = 루타+0.24×(볼넷-고의4구+사구)+0.62×도루+0.5×(희생번트+희생플라이)-0.03×삼진,
C = 타수+볼넷+사구+희생번트+희생플라이
다른 항목 다 필요 없고 분자 중 B만 보시면 됩니다.
안타는 그냥 1을 곱했습니다. 총 루타수가 그대로 반영됩니다. 반면 볼넷은 고의4구를 빼고 몸 맞는 볼을 합쳐서 0.24를 곱했습니다. 고의4구는 타자 본인의 공격행위가 아니라서 뺀 것으로 보입니다. 1루타와 볼넷은 가중치가 4배 이상의 차이라는 말입니다. 심지어 볼넷은 도루(0.62)의 가중치에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아웃카운트로 기록되는 희생번트와 희생플라이에도 대략 절반에 불과합니다.
최초 RC가 발표된 이후 RC를 꾸준히 개량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가중치도 발표가 됐는데 새로운 가중치는 이렇습니다.
(1.125×단타) + (1.69 x 2루타) + (3.02×3루타) + (3.73×홈런) + 0.29×(BB-IBB+HBP) + .492×(SH+SF+SB) - (0.4×K)
이 공식에서는 루타를 조금 더 세분화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일단 1루타와 볼넷의 차이를 보시죠. 1루타 즉 안타는 1.125, 볼넷은 0.29의 가중치를 줍니다. 최초 발표된 RC보다 차이는 작아졌지만 역시 3배 이상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RC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득점 창출의 측면에서 보면 볼넷은 안타보다 대략 3~4배가량 적은 영향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wOBA (weighted On-Base Average, 가중 출루율)과 RV (Run Value, 득점 가치)
wOBA와 RV는 세이버 매트릭스 분야의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 톰 탱고가 고안했습니다.
wOBA는 모든 출루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출루율과 달리 각각의 출루 방식에 다른 가중치를 부여하면서 타자의 공격력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만든 기록이고 RV는 타석에서 나타난 각 결과들이 기대 득점을 얼마만큼 변화시키는지를 계산합니다. 두 기록은 면밀하게 연결이 됩니다.

wOBA는 리그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지만, 보통 안타가 0.88의 가치를 가질 때 볼넷은 0.69의 가치를 가집니다. 안타와 똑같은 1루 출루임에도 불구하고 볼넷의 가치는 안타의 78% 수준입니다.
RV를 통해 비교를 해보면 볼넷이 기대 득점을 약 0.3점 높인다면, 안타는 0.45점(볼넷의 1.5배), 홈런은 1.4점(약 4.8배) 이상을 높입니다. 즉, 투수가 볼넷을 주지 않으려다 한가운데에 집어넣어 안타를 맞는 순간, 기대득점의 변화값은 최소 1.5배에서 수배까지 치솟게 됩니다.

왜 볼넷은 안타보다 ‘덜’ 위험한가?
: 진루 강제성과 변수 통제
데이터가 볼넷을 안타보다 ‘착한 기록’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두 가지 결정적 차이 때문입니다.
첫째, ‘진루 강제성’의 차이입니다. 볼넷은 타자에게 딱 한 베이스만 허용하며, 선행 주자도 ‘밀려 나갈 상황’에서만 진루를 허락합니다.
주자 2루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만약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다면 주자를 1, 2루 상황에서 다음 타자를 상대할 수 있지만, 안타를 허용하면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고 주자 1루 상황에서 다음 타자를 상대해야 합니다.
둘째, ‘불확실성의 제거’입니다. 인플레이 타구(안타)는 실책, 불규칙 바운드, 혹은 잘 던진 공이 안타가 되는 ‘바빕(BABIP)신의 장난’ 등 투수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를 동반합니다.
하지만 볼넷은 상황을 정지시킨 채 수비 대형을 재정비하고, 다음 타자와의 병살타 시나리오를 설계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상황’을 제공합니다.

“볼넷을 줘라! 대신 제발 실점을 막아내라!”
볼넷으로 1루에 타자를 내보내는 것은 투수의 ‘지능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뒤에도 계속 볼넷을 내주거나 장타를 허용하는 것은 실력의 문제가 됩니다.
세이버 매트릭스는 일관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안타 하나가 만들어 내는 득점의 기대치는 볼넷보다 약 1.5배 높으며, 장타로 넘어가면 그 격차는 3~4배 이상 벌어집니다. "맞으라"는 조언은 자칫 “경기를 내줘라"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문제는 볼넷 그 자체가 아니라, 볼넷 이후에 무너지는 멘털과 후속 대처입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지적한 핵심도 볼넷을 줬다는 사실보다, 볼넷 이후 급격히 흔들리며 피안타를 내주는 한국 투수들의 '실점 억제 프로세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저와 함께 하는 해설위원들에게 ‘볼넷을 주지 마’라는 이야기보다는 ‘볼넷을 줘도 좋으니, 실점을 막아!’라는 주문을 해달라고 요청을 드리려 합니다. 투수가 볼넷을 지능적으로 활용해 실점을 최소화한다면, 그것은 승리를 향한 가장 바람직한 운영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