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넘어선 아이유…콘서트 이틀간 10만명 ‘신기록’
‘아이유의 경쟁자는 아이유’뿐이었다.
가수 아이유가 21~22일 이틀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여성 가수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열어 회당 5만명 총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로써 아이유는 자신이 갖고 있던 2022년 9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더 골든 아워: 오렌지 태양 아래’ 콘서트 관객 8만8천명 기록을 스스로 깼다. 동시에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올림픽주경기장 모두에서 콘서트를 치른 유일한 여성 가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전까지 두 곳 모두에서 단독 공연을 한 가수는 서태지가 유일했다. 아이유는 본인의 100회째 단독 콘서트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번 ‘2024 아이유 허 월드투어 앙코르: 더 위닝’ 콘서트는 올해 2월 발매한 미니앨범 ‘더 위닝’ 월드투어를 마무리하는 자리이자, 데뷔 16주년을 맞아 또 다른 단계로 도약하는 출발선이었다. 그는 자신의 첫 월드투어에서 12개 나라 18개 도시 총 31회 공연을 하며 50만명의 관객을 맞았다. 특히 이번에 처음 공연한 북미와 유럽에서 1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아시아를 넘어 월드 스타 반열에 올랐음을 증명했다.
이틀간의 공연을 모두 보고 나니, 아이유 콘서트 티케팅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치열한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을 뚫고 온 관객에게 무언가 남겨줘야 한다는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회원 수 8만명으로 추산되는 팬클럽 선예매만으로 사실상 매진됐을 정도로 관심이 큰 공연이었다. 이전부터 아이유는 당장의 수익보다 장기적인 비전에 투자하며 완성도 있는 무대를 꾸며왔다. 이로써 관객이 꾸준하게 다시 찾게 만든 것이다. 8만8000~18만7000원에 달한 티켓 값에도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무대를 보여줬다. 여기에 모든 관객에게 ‘역조공’(가수가 팬에게 하는 선물)으로 나눠준 방석과 쌍안경을 받아보니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우선 와이어를 활용한 연출이 돋보였다. 첫 곡 ‘홀씨’부터 자신이 마치 홀씨가 된 것처럼 와이어에 올라타 공중을 떠다녔다. 와이어를 타고 공중 부양하는 연출은 이제 흔하지만, 아이유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히트곡 ‘셀러브리티’를 부를 때 아이유는 공중에 뜬 상태로 메인 무대에서 반대편 보조 무대까지 경기장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라고 생각하던 관객의 환호성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토트넘의 손흥민이 공을 몰고 70m를 질주해 성공시킨 번리전 원더골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스타디움처럼 큰 공연장에선 관객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여러 장치를 사용한다. 아이유는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 때 열기구를 타고 한바퀴 돌았다. 임영웅도 지난해 서울월드컵경기장 콘서트에서 열기구 모양 풍선을 이용했다. 아이돌 그룹은 보통 ‘토로코’라 불리는 이동 차량에 올라타 공연장을 돌며 팬과 만난다. 이번에 아이유는 아예 공중을 날았다. 첫날 공연에서 아이유가 “원래 고소공포증이 없었는데,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생긴 거 같다”고 했을 정도로 역동적으로 날아 올랐다.
와이어 연출은 첫날 앙코르 마지막 곡인 록 버전 ‘홀씨’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강렬한 록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유는 점점 하늘로 치솟더니 아예 관객 시야를 벗어나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홀씨’로 시작해 ‘홀씨’로 끝나는 수미상관 공연의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였다.
1천개의 드론을 활용한 공중 연출도 볼거리였다. 노래에 맞게 형태를 바꿔가며 눈을 즐겁게 했다. ‘라스트 판타지’를 부를 때 ‘Last Fantasy’ 글자로 도열했던 드론이 노래가 끝나자 ‘New Fantasy’(새로운 판타지)로 바뀌는 식이었다.
관객을 동참시키는 체험형 진행도 몰입도를 높였다. 아이크(응원봉 이름)의 라이트를 중앙에서 제어하며 관객 한명 한명이 무대 장치가 됐다. 단순히 빛의 색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과거 올림픽 개막식에서 보던 매스게임처럼 객석을 스크린으로 활용했다. ‘너의 의미’가 나올 땐 객석에 나비가 날아다녔고,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로 시작하는 ‘밤편지’에선 형광색 반딧불이가 객석을 오갔다. 2층 객석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이 압도적이었다. 여기에 5만명의 ‘떼창’이 더해지자 웅장함은 배가 됐다.
신곡과 기존 히트곡 21곡을 총 4부로 안배해 의상과 무대 콘셉트를 달리한 노련함도 돋보였다. 이번 공연에서 아이유는 미공개 신곡 ‘바이 서머’를 최초로 공개했는데, 직접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불러 환호를 받았다.
다른 여성 가수들에 대한 존경도 빼놓지 않았다. 앙코르 첫 곡 ‘쉬’(Shh..)를 부르기 전 스크린에는 80대 패티 김부터 10대 뉴진스 혜인까지 수많은 여성 가수의 사진이 등장했다. 아이유는 “일일이 연락해 사진 사용을 허락받았다”고 했다.
앙코르 뒤에 이어진 30여분간의 ‘앙앙코르’도 관객을 만족시켰다. 첫날엔 소방차 곡을 리메이크한 ‘어젯밤 이야기’로 공연을 마무리하더니, 둘째 날엔 예정에 없던 ‘여름밤의 꿈’을 마지막 곡으로 불렀다. 단출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영원한 여름밤의 꿈을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읊조리자 서둘러 자리를 떠나던 관객들이 멈춰서 목소리에 젖어들었다. 정말로 여름밤의 꿈 같은 마무리였다. 공연장을 나오는데 콘서트 제목 ‘더 위닝’처럼 ‘공연을 본 관객도 승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숙제도 남겼다. 경기장 잔디 훼손 우려로 인한 축구 팬과의 갈등, 소음 민원 때문에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아이유 쪽이 쓰레기봉투를 선물한 미담 등 공연 외적인 것들이 화제가 됐다. 제대로 된 대형 공연장 부족이 아쉬운 지점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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