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예술이네, 인천아트플랫폼 [알보달보 인천지역유산·(15)]

백효은 2026. 5. 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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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 근대건축 보존한 복합문화공간
전시와 관람·공연·교육·창작 어우러져
동선따라 시민·예술가 자연스러운 교류
벽돌 창고 리모델링… 연결·접근성 높여
청년·해외 작가 입주… ‘도시 재생’ 추구
참여형 전시 등 기획으로 열린공간 구현

인천아트플랫폼 전경. 2026.5.14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천 중구 개항장거리에는 대지면적 약 8천800㎡ 규모에 13개의 건물이 모여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이 있다. 각 건물에서 정성스럽게 구성된 전시와 공연, 창작 프로그램이 이어지는 이곳은 일상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와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개항장거리가 가진 역사성을 보존하며 인천 시민들에게 문화를 개방하는 방향으로 확장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은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는 지역유산으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3시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관에는 고요한 분위기 속 기획전시 ‘변신연습’을 관람하는 시민들이 보였다. 1층 한쪽 벽면에 배치된 이형구 작가의 ‘아니마투스(Animatus)’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관람객이 있는가 하면,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촬영하며 ‘인증숏’을 남기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안태원 작가가 반려묘 ‘히로’의 이미지로 제작한 독특한 형태의 의자에 걸터앉아 동행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관람객까지. 같은 공간 안에서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시장에 머물고 있었다.
지난 14일 인천아트플랫폼 전시관에서 기획전시 ‘변신연습’을 관람 중인 시민들. 2026.5.14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비슷한 시각, 옆 건물 A동 예술교육 라운지 1층에는 여러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인천아트플랫폼 예술가 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지역 예술인들이었다. 20여 명의 인원이 원을 이루고 서서 가운데 자리한 강사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예술 작업을 바탕으로 초등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과정을 함께 배우고 있었다.

A~C동을 지나 뒤편에 있는 D~G동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올해 입주작가들의 작업실이 이어진다. 청년작가, 해외 교류작가들이 입주를 앞두고 있다. 또 이달 공사를 마친 E1동에는 카페와 추가 전시공간이, G동은 시민들이 굿즈(기획 상품)를 구매할 수 있는 상업 공간 등으로 조성을 앞두고 있었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전시와 관람, 공연, 교육, 창작이 각각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기능의 공간들은 ‘문화’라는 공통분모로 이어지면서, 관람객과 예술가의 동선 역시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지난 14일 인천아트플랫폼 A동 예술교육 라운지 1층에서 ‘인천아트플랫폼 예술가 강사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지역 예술인들. 2026.5.14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 멈춰 있던 창고가 문화로 채워지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중구 해안동 일대는 1883년 개항 이후 항구와 인접한 만큼 각종 물자를 보관하던 창고와 상업시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1930~1940년 당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창고 건물은 사람보다 화물이 더 자주 드나드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재 중구청사는 과거 인천시청사로 쓰였다. 인천시청이 1983년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하며 구도심으로 남은 이 일대 건물들은 점차 빛을 잃었다. 구도심으로 전락한 도시 상권은 위축됐고 한때 분주했던 공장과 상업시설은 문을 닫았다. 창고도 오랜 시간 비어 있는 채 방치되며 ‘쓰이지 않는 공간’으로 남았다.

2009년 인천아트플랫폼이 문을 열기 전 약 10년 전부터 지역사회에선 구도심 활성화와 문화 기반 마련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다. 낙후된 도시 경관을 개선하고, 구도심의 부흥을 이끌기 위함이었다. 2000년 11월 ‘개항기 근대건축물 보존·주변지역 정비방안’ 용역을 시작으로 약 10년에 걸친 준비 끝에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했다.

조성 과정에서는 기존 근대 건축물을 보존·활용하는 방식이 적극적으로 적용됐다. C동 공연장은 대한통운 창고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며, D동의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등록문화유산 제348호)은 아카이브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삼우인쇄소, 금마차다방 등 근대 건축물도 함께 보존·활용됐다. 새로 조성된 건물들 역시 기존 붉은 벽돌 창고 건축 양식을 반영해 통일성을 유지했다.

인천아트플랫폼에 전시 중인 양정욱 작가(레지던시 프로그램 9기)의 작품 ‘어린 시간을 생각할 때’. 2026.5.14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다시 개항’이란 키워드로 조성된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의 역사성 보존과 문화 개방, 근대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역사성이 있는 근대건축물 보존을 넘어 정비·관리, 개방까지 이어지도록 한 작업이다.

설계를 총괄한 황순우 건축가는 이 공간을 조성하면서 외곽에 별도의 담장을 두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시설 관리와 보안을 위해 담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벽을 세우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러 동으로 나뉜 건물 사이의 경계를 열어 누구나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를 택했다.

두 블록으로 줄지어진 건물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이 만들어졌고, 이 동선을 따라 전시 공간과 교육 공간, 작업실이 이어지도록 배치됐다. 방문객들은 특정 공간에 머무르기보다 건물 사이를 이동하며 다양한 기능을 경험하게 된다. 이 같은 구조는 예술가의 작업 공간과 시민의 관람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 속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닫힌 시설이 아니라 열린 문화지구로 기능하도록 설계된 셈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2010년 대한민국 공간대상과 건축대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2012년 미술관 등록과 2013년 공연장 등록을 마쳤다.

레지던시 입주작가 프로그램은 인천아트플랫폼의 핵심 기능이다. 설계 초기 ‘300명의 예술가가 모여 살면 도시가 바뀐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을 통한 도시 재생을 추구한 것이다.

국내 대표 레지던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예술가들은 작업 공간을 제공받는 것을 넘어 전시, 공연,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과 직접 연결되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은 1년에 한 번 공모를 통해 청년 예술가를 선정하고 있다. 매해 입주작가들이 작업 공간과 창작 과정을 공개하는 ‘플랫폼 오픈 스튜디오’를 선보인다.

■ 지역 문화를 잇는 거점이 되다

담장이 없이 개방된 인천아트플랫폼. 2026.5.14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천아트플랫폼이 들어선 이후 개항장 일대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과거 창고와 공장이 남아 있던 일대 골목에는 소규모 전시 공간과 갤러리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문화 예술을 품은 카페와 공방 등 다양한 공간도 형성됐다. 근대건축물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살린 건물들도 많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지역의 공공 문화 ‘거점’(platform)으로 자리 잡으며 인근 상권에도 문화적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두 블록 중 전시장과 공연장은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았지만, 입주작가들의 작업 공간이 모여 있는 구역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인천아트플랫폼은 건물 일부의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인천아트플랫폼 리모델링의 총괄 기획을 맡은 황순우 건축가는 “개관 초반의 목적과 다르게 발생한 인천아트플랫폼의 경직화를 개선하려고 했다”며 “연결성과 교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춰 공간을 구성했고, 예술가·기획자 등 전문가들과 영유아를 비롯한 아이들을 포함한 시민층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건물에 배치했다.

추가 전시 공간으로 새로 마련된 E1동은 장애인들이 운영을 맡은 카페로 공공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계획이다. 전시장에선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바로 옆 입주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E2동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다. 건물 1층에는 입주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아카이브 공간은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전시 역할을 한다. 또 해외 교류 작가, 인천 대학의 예술가, 청년작가 등이 교류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E1동에서 한 통로를 따라 G동까지 걸어갈 수 있다. 시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설계였다. G동의 굿즈숍은 기획자가 다양한 형태의 팝업을 운영하며 팬덤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G동에서 나오면 공원에 다다른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휴식이 가능한 공간이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마련됐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점점 더 시민과의 접점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과 시민 참여형 전시 등 다양한 기획으로 인천아트플랫폼 내부의 예술 활동이 시민의 경험으로 연결되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이달 초 인천아트플랫폼이 어린이날을 맞아 연 ‘IAP(이얍·Incheon Art Platform)! 함께하는 놀이터’에는 1만명이 참여했다. 지역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업 방식을 바탕으로 소리놀이, 걱정인형 만들기, 그림시 체험 등을 제공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인천아트플랫폼 인근에 있는 작은 작업실과 공방, 카페 등과 협업해 개항장 일대가 하나의 갤러리가 되는 ‘인천 아트로드’를 통한 지역 활성화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진다. 인천아트플랫폼에 방문해보면 인천시민이 굳이 먼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문화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백효은 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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