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최민정 1500m 우승, 월드투어 2차 금1 은2로 마무리!

막판 한 바퀴, 바늘구멍 같은 바깥 줄기였다. 모두가 ‘이제 끝났다’고 숨을 고르던 그 순간, 최민정은 속도를 한 칸 더 끌어올렸다. 바깥으로 크게 돌아 나가며 앞선 두 명을 한 번에 제쳐버리는, 딱 최민정다운 한 방. 전광판이 2분17초399을 비춘 뒤에야 모리스 리처드 아레나가 뒤늦게 터졌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ISU 쇼트트랙 월드투어 2차 여자 1500m 결승, 이 레이스는 ‘여제의 귀환’ 같은 거창한 말보다, 그저 마지막 바퀴 한 번의 선택으로 설명되는 경기였다. 바깥 라인 추월, 흔들림 없는 스케이팅, 그리고 결승선 통과까지 이어진 집중력. 최민정은 가장 자신 있는 거리에서,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시즌 첫 개인전 금메달을 꿰찼다.

경기 전 분위기는 솔직히 녹록지 않았다. 이번 2차 대회는 결승 구성이 특이했다. 준결승에서 어드밴스로 3명이 더 올라오면서 결승 인원이 무려 9명. 트랙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빽빽했다. 이런 때는 작은 접촉 하나, 잔실수 하나가 순위를 송두리째 바꾼다. 최민정은 초반부터 앞만 보고 치고 나가지 않았다. 5~6위권에서 흐름을 읽다가 스케이트 감이 올라오는 걸 확인한 뒤 서서히 3위까지 끌어올렸다. 트랙 안쪽이 두터워지면 굳이 몸싸움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서 길게 탄다. 이건 최민정의 오랜 습관 같은 전술이다. 힘을 아껴두고, 마지막 한 바퀴에서 제대로 쓰기 위한 설계. 그리고 그 설계가 결승선 100m 전에서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코린 스토다드와 크리스틴 산토스-그리스월드를 한 번에 제치며 선두로 치고 나가는 장면은, 경험과 스피드가 동시에 갖춰져야만 가능한 장면이었다.

이 금메달이 더 반가운 이유는, 1차 대회에서 남겨둔 찜찜함을 그 자리에서 털어냈기 때문이다. 최민정은 1차 대회에서 여자 계주 금메달로 팀을 살려놓긴 했지만, 개인전에선 손에 잡히는 메달이 없었다. 주종목인 1500m에서도 본인이 만족할 수 없는 장면이 있었다. 스스로 아쉬움이 컸을 거다. 그런데 같은 캐나다, 같은 빙질, 비슷한 추운 공기 속에서 이번엔 다르게 풀었다. 전날 1000m 은메달로 감각을 끌어올린 뒤, 1500m 결승에서 ‘내 레이스’를 꺼내 보였다. 중간에 들이대지 않고, 한 바퀴 남기고 스퍼트. 바깥 줄에서 속도를 유지한 채 코너를 길게 가져가고, 마지막 직선에서 스케이트가 흔들리지 않게 엣지를 눌러 붙이는, 최민정 사인의 완성본이었다.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 선명하다. 결승이 9명으로 붐비면, 안쪽 길은 항상 엉킨다. 순간 속도가 꺼지고, 스텝이 무너지기 쉽다. 그래서 바깥 라인이 위험해 보이지만 오히려 안전할 때가 있다. 스피드를 잃지 않은 채 길게 돌아 나가면 추월 폭이 커진다. 다만 체력이 충분해야 한다. 이날 최민정은 중반까지는 최대한 드래프트를 활용해 바람을 덜 맞았고, 마지막 두 바퀴에서만 엔진을 크게 열었다. 이건 훈련 상태가 좋지 않으면 못 한다. 2분17초399이라는 기록 자체보다, 마지막 바퀴에서 보여준 스피드 유지 능력이 “아, 준비가 잘 됐구나”를 말해준다.

금메달 하나로 끝난 대회도 아니다. 2차 대회에서 최민정은 총 네 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1000m 은메달로 개인 스프린트 감을 확인했고, 3000m 여자 계주 은메달, 2000m 혼성계주 은메달을 보탰다. 혼성계주에서는 캐나다가 2분37초599로 먼저 들어왔고, 한국은 2분38초004로 바로 뒤를 따랐다. 0.4초대 차이. 계주 특성상 교대 한 번, 코너 한 번만 매끈했어도 뒤집을 수 있는 거리다. 남자 쪽에서는 황대헌이 1000m 동메달로 자존심을 세웠다. 1분25초587. 캐나다 홈 링크의 기세가 워낙 거셌던 걸 감안하면, 한국 대표팀 전체로도 ‘나쁘지 않은’ 마무리였다. 여자 500m에선 최민정이 준결승에서 최하위로 밀리며 파이널 B를 뛰지 않았는데, 이 종목은 원래 변수가 크다. 산드라 벨제부르가 금, 캐나다의 코트니 사로와 미국의 산토스-그리스월드가 은, 동을 가져갔다. 남자 5000m 계주에선 캐나다-네덜란드-이탈리아가 시상대에 올랐고, 한국은 파이널 B 1위로 최종 5위를 기록했다. 홈에서 열린 1·2차 대회를 캐나다가 독주하나 싶었던 흐름을, 마지막 날 최민정의 1500m 우승이 깔끔하게 끊었다.

다시 1500m 얘기로 돌아가 보자. 최민정에게 1500m는 단순히 “잘하는 거리”가 아니다. 이 종목에서는 매 시즌 상대들이 전술을 바꿔 온다. 누군가는 초반부터 페이스를 올려 뒤를 길게 늘어뜨리고, 누군가는 중반 교란을 걸어버린다. 이번 결승은 전형적인 복잡한 결승이었다. 선두그룹이 수시로 바뀌고, 안쪽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며 흐름이 울컥울컥했다. 그 와중에 최민정은 ‘내가 움직일 바퀴’를 끝까지 기다렸다. 여러 해를 정상에서 보낸 선수만이 가질 수 있는 인내심이다. 일찌감치 치고 나갔다가 트래픽에 갇히면 그대로 끝일 수 있으니, 바깥 추월이 통할 타이밍을 기다렸다. 마지막 코너 진입 전, 바깥쪽 엣지에 체중을 실어 스피드를 유지한 채 코너를 길게 감아 들어온 뒤 직선에서 한 번 더 밀어 넣는다. 말로 쓰면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하드 트레이닝과 자신감이 쌓여 있어야 가능한 판단이다.

이 우승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심리’다. 1차 대회에서 개인전이 비어 있던 탓에, 밖에서는 괜한 걱정을 했다. “캐나다 링크에서 캐나다가 너무 강한 거 아니냐”, “빙질이 낯설다” 같은 말들. 사실 최고의 선수들은 그런 얘기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본인이 준비한 루틴대로 타고, 루틴이 안 먹히면 그 자리에서 고친다. 이번에 최민정이 보여준 건 바로 그 현장 수리 능력이었다. 1000m 은메달로 속도를 확인했고, 1500m에서 전술을 완성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주 종목 금메달, 감각을 살려 올림픽까지 치밀하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말이 과하지 않다. 오늘의 레이스는 그 말의 근거였다.

대표팀 전체로 넓혀 보면, ‘경쟁’의 색도 분명했다. 캐나다는 홈 어드밴티지를 120% 끌어썼고, 미국은 여자 개인 종목에서 새로운 이름들이 계속 치고 올라왔다. 네덜란드와 폴란드도 계주에서 깔끔했다. 한국 입장에선 1500m 금, 1000m·혼성·여자 계주 은, 남자 1000m 동이라는 구성이면 내용이 있다. 무엇보다 ‘여자 1500m는 한국이 지킨다’는 상징이 커졌다. 다음 달 3차 대회가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리는데, 빙질이 바뀌고, 상대의 전술도 또 달라진다. 그래도 1500m에서의 타이밍과 스피드는 세계 최상급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증명했다.

결국 우리는 다시 마지막 한 바퀴를 떠올리게 된다. 바깥으로 크게 열고, 흔들림 없이 속도를 붙여 두 명을 지나는 그 장면. 쇼트트랙을 오래 본 팬들도 “저걸 거기서?” 하고 웃음이 나는 장면이었다. 최민정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기록표보다 그 장면 하나가 남는다는 점이다. 큰 대회, 빽빽한 결승, 어지러운 트래픽. 그런데도 ‘내 레이스’를 끝까지 들고 있는 선수. 그래서 다음 대회도 기대가 된다. 금메달 하나로 끝나는 시즌이 아닐 테니까. 오늘의 2분17초399는, 그 다음을 위한 가장 간결하고 강력한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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