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코로나 백신 여러번 맞아야 하는 이유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오늘날 과학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등이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답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방법을 시도한 것이었으므로 과학이라기보다 철학에 가깝고 실제로 이들을 철학자(philosopher)라 한다.
17세기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반복되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자 한 학자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실험을 하지 않은 채 상상력만 발휘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와 구별하기 위해 스스로를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라 불렀다.
라틴어로 지식(scietia)을 의미하는 과학(science)이라는 용어가 오늘날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무렵이다. 그 이전에 비예술(non-arts)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던 science가 우주의 현상과 그 법칙에 대한 연구를 하는 “자연 및 물리학(natural and physical science)”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가 행성의 운동에 대한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이자 선배인 티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가 관측기록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고 맨눈으로 관측한 거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는 티코 브라헤는 천문학 발전을 위해서는 정확한 관측기구 사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직접 제작한 지름 12미터짜리 육분의를 이용하여 별의 위치를 아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초신성과 혜성을 관찰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티코 브라헤는 자신의 관측기록을 케플러에게 전해 주었다. 케플러가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할 때 원이 아닌 타원 궤도를 돌고 있음을 발견한 것은 티코 브라헤의 정밀한 관측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간이 흐른다 해도 변하지 않아야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예외적 현상이 발견되는 경우 이를 설명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이론을 마련하는 것이 과학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예외적 현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는 과학적 현상이라 말하기 어렵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도 “과학”에 포함시키려면 흔히 사용하는 과학의 정의를 바꾸거나 예외가 발생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의학이 과학이라고?
과거에는 의학을 “질병을 고치기 위한 학문”과 같이 작은 정의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해진 지금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학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바뀌면 정의도 바뀐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생명과학), 지구과학처럼 의학도 과학의 한 분야인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참과 거짓을 가리기 위해서는 의학과 과학의 정의를 내려놓고, 그 정의에 대입하여 의학이 과학의 한 분야에 해당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의학은 “과학적 연구방법을 이용하여 크게 발전한 학문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학문분야”다. 단순히 의학이 과학의 한 분야라 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런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과학이 일반적으로 특별한 예외가 없다면 결과가 일정한 것과 다르게 의학에서는 보편타당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는 일이 흔히 있고, 이유는 개인차가 크기 때문이다.
의학에서는 같은 병에 같은 약을 사용하더라도 누구는 낫고, 누구는 낫지 않은 경우가 흔하므로 의학을 과학의 한 분야라고 간단히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의학이 과학의 한 분야가 되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한 선생님으로부터 함께 수학문제를 푸는 방법을 배웠다고 해도 시험에서 학생들이 정답을 기술하는 정도는 개인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의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이와 비슷한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같은 백신을 이용하여 예방접종을 한 후 행동반경을 비슷하게 유지한 두 사람 중 한 명은 예방이 되지만 다른 한 명은 감염병이 발생하여 고생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숙주인 사람도 다르고, 병원체의 특성도 개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같은 질병이 사람들에게 입히는 피해의 정도가 다른 경우가 흔했다. 1918년에 유행한 스페인독감은 적게는 약 2000만명에서 많게는 약 2억 명에 이르기까지 사망자수가 아주 많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같은 H1N1형 A형 독감이 재유행한 2009년에는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같은 독감에 의한 증상은 전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다. 사람의 면역상태가 91년 전과 다르고 바이러스가 가진 특성도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보편타당하고, 같은 원인에 의해 같은 결과를 보여주는 학문이라 정의한다면 의학은 과학의 한 분야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의학이 과학적 연구방법을 이용하여 의학적 현상을 설명하려 해도 의학의 대상인 사람과 미생물 병원체의 특성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의학적 현상은 수시로 다르게 나타나곤 한다.
가장 좋은 백신은 인류최초의 백신인 종두법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가 1796년에 종두법을 도입하기 전에 이미 비슷한 방법으로 두창(천연두, smallpox)을 예방하려는 시도는 제스티와 휴스터 등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공식적(?)으로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예방백신이라는 평가를 받는 종두법은 두창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에드워드 제너가 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는 일을 하던 농부들이 속설로 전해 오던 “한 번 우두에 걸린 사람은 평생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이 역사를 바꾼 대발견의 실마리가 되었다.
소에게서 발생하는 우두와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두창은 같은 병이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참으로 운이 좋게도 사람에게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우두에 걸리는 경우 두창 예방효과를 지닐 수 있다. 수많은 감염병 중에 한 감염병에 걸린 경험이 다른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사례가 있는 것은 거의 유일하다.
에드워드 제너가 발견한 종두법에서 힌트를 얻은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닭콜레라, 탄저, 광견병 등 세 가지 감염병의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세 가지 감염병 모두 우두와 같이 면역효과를 일으키면서도 증상은 약한 감염병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파스퇴르의 업적도 종두법과 마찬가지로 의학의 역사를 바꿀 만큼 위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파스퇴르가 정복(?)하려 한 세 가지 감염병이 두창에 해당한다면 우두에 해당하는 감염병이 없는 상태에서 파스퇴르가 생각한 방법은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달리 병원체를 약하게 만드는 방법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파스퇴르는 세균이 포함된 수프를 공기중에 내버려두는 시간을 달리해 가면서 그 독성을 시험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병원체를 약하게 만들 방법을 찾으려 했다.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조건을 바꾸어가면서 어떻게 하면 독성은 줄이되 한 번 감염되면 예방효과는 지닐 수 있는 상태를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한 것이 세 가지 백신 개발 성공의 이유가 되었다.
그 후로 첫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베링(Emil von Behring, 1854-1917)을 비롯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 냄으로써 인류가 수많은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종두법이 전세계적으로 보급된 결과 인류는 두창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1960년대에 세계보건기구가 범세계적으로 두창 박멸운동을 벌인 결과 유사 이래 수시로 인류를 괴롭혀 온 두창 환자 발생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1977년에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가 발생했고, 1978년에 실험실 사고로 환자가 발생한 후 전세계에 아무 환자도 발생하지 않자 1980년에 세계보건기구가 지구상에서 두창이 모두 사라졌다고 선포했다. 앞으로도 두창이 발생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최초의 백신이 지구역사상 최초로 사람의 감염병을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종류의 새로운 백신 제조법이 개발되었지만 종두법만큼 효과가 좋은 백신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종두법은 한 번 접종으로 평생 예방가능한 방법이지만 두 번 이상 접종해야 예방효과를 볼 수 있는 백신도 있고, 백신을 접종받은 후에도 감염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등 다른 백신의 효과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제조한 백신의 효과가 왜 완전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효과를 보이는 것일까?
코로나19 백신을 여러 번 맞아야 하는 이유와 의학의 특징
종두법은 한 번의 백신 접종으로 평생 면역을 가질 수 있지만 두 번 이상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지난 약 3년간 우리 일상을 완전히 바꿔 버린 코로나19는 이미 3회씩 백신접종을 받은 사람들도 4차, 5차 접종을 또 받으라고 권유를 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변이를 워낙 잘 일으키므로 이미 사용한 백신의 효과가 감소하기도 하고, 이미 제조한 백신의 효과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백신을 제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의 경우 1985년에 병원체인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가 발견되었지만 효과적인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변이가 워낙 잘 발생하여 백신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백신제조법과 백신의 효과는 대상이 되는 병원성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미 사용중인 백신의 효과가 완전하지 못하면 의학자들은 더 나은 백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속 연구를 하고, 또 아주 좋은 치료약이 개발되면 백신사용을 중단하기도 한다.
모든 감염병에 대한 백신을 똑같은 방법으로 개발할 수 있다면 백신 제조도 쉽고, 생산비도 적게 들고, 효과도 사용전에 이미 예측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의학은 과학적 연구방법을 이용한 학문일 뿐 과학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분야가 아니다. 그러므로 약이든 백신이든, 아무리 이론적으로 완벽한 걸 개발한다 해도 사용해 보기 전에는 효과를 알기 어렵다. 또 남에게서 나타나는 효과가 내게 똑같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물리학에서 빛이 직진한다는 과거의 진리가 아인슈타인에 의해 아주 인력이 큰 물체 옆을 지나가는 경우 빛도 굽어진다는 것으로 수정되기는 했지만 과학법칙은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 기존의 법칙에 어긋하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는 가운데 새로운 법칙이 발견되고 과학이 발전한다. 그러나 의학에는 과학법칙에 바탕을 둔 생각으로 해결하지 못할 현상이 아주 많이 있으며, 그것이 의학의 특징이자 매력이라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1. 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 www.who.int
2. Robert J. Littman. The Plague of Athens: Epidemiology and Paleopathology. Mount Sinai Journal of Medicine. 76:456–467, 2009
3. Donald R. Hopkins. The Greatest Killer: Smallpox in Histor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2.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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