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아웃 피플]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의 전광판이 베네수엘라의 우승을 알린 순간, 중계 카메라는 마운드가 아닌 더그아웃의 한 남자를 비췄다. 베네수엘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얼굴을 감싸 쥔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사내, 베네수엘라 야구 그 자체인 ‘전설’ 미겔 카브레라였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특별 보좌관으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대회에 고국의 타격 코치로 전격 합류했다. 전설은 단순한 직함을 넘어 선수들의 멘토로서 유니폼을 벗지 않고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며, 조국의 첫 WBC 우승 앞에서 아이처럼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통산 3,174안타, 511 홈런, 그리고 2012년 달성한 45년 만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단 7명만이 도달한 '3,000안타-500 홈런' 클럽의 주인공인 카브레라에게도 조국의 우승은 현역 시절 끝내 이루지 못한 마지막 과제였다. 그가 흘린 눈물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선, 조국 베네수엘라를 향한 깊은 헌신과 책임감의 결과물이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에 의해 체포된 이후,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과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고 있다. 도탄에 빠진 3,000만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야구는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구원'이자 자부심이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우승 확정 직후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해 다음 날을 '국가 경축일'로 전격 선포하며 승리를 기념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틱한 우승 뒤엔 씁쓸한 뒷맛도 남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베네수엘라를 향해 "STATEHOOD, #51, ANYONE?(51번째 주가 될 사람 없나?)"이라며 노골적인 조롱을 던졌다. 마두로 사후 미국의 영향력이 강해진 베네수엘라의 주권 상황을 비꼰 것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선수들은 이 '51번째 주'라는 비아냥을 실력으로 잠재웠다. ‘전설’ 카브레라의 진두지휘 아래 '라틴 아메리카의 심장' 마이애미에서 미국 팀을 꺾으며, 자신들이 미국의 부속물이 아닌 당당한 독립 국가의 영웅임을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경기는 드라마틱했다. 8회 말 브라이스 하퍼에게 동점 홈런을 내주며 위기에 몰렸지만, 베네수엘라는 무너지지 않았다. 9회 초 에우헤니오 수아레즈의 결승타로 승리를 확정한 순간, 모든 선수는 마운드가 아닌 유니폼을 입은 대선배 카브레라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 그 모습은 외부의 조롱을 딛고 흩어진 3,000만 민심을 야구라는 이름 아래 다시 세우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ESPN과 디애슬래틱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베네수엘라 야구의 기적"이라며 이번 우승과 트럼프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스탠딩아웃'은 전설의 눈물로 완성된 이번 우승이 국제 정세의 거센 파고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베네수엘라 야구의 생명력을 증명했다고 본다. 아울러 카브레라의 리더십 아래 한 단계 성장한 '카브레라 키즈'들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보여줄 파격적인 행보가 무너진 고국의 자존감을 재건하는 가장 강력한 불씨가 될 것이라 믿고 싶다.
노아민 noah@standingou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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