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는 진흥왕이 시작한 것이 아니다?

화랑제도는
진흥왕이 처음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화랑이란 개념이
언제 처음 신라에서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진흥왕 이전부터 이미 신라 지방에선
화랑의 개념들이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진흥왕이
한창 정복전쟁을 진행하고 있을 때
대가야 정벌 당시
기병 5000기를 이끌고
대가야의 수도를 맨먼저 점령한
사다함이라고 있었는데

이 사다함이 화랑이었다고 하며
사다함이 진격했을 때
1000여 명의 낭도들이
사다함을 따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진흥왕 이전부터 ‘화랑’이란
개념들이 역사서에 등장하고 있고
단 그것은 마을 단위에서 청년들이
귀족 청년을 대장으로 모시며
자발적으로 조직한 청년단체 같은
개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진흥왕이 실시했다는 화랑도는
지방에 산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화랑을 국가적 개념으로 확대해
정부가 직접 지원하에 전문인력들을
양성하는 시스템으로
제도화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가조직으로 개편된 ‘화랑’이란 명칭은
‘화랑’과 ‘낭도’의 앞글자씩을 따와
명명된 거랍니다.

‘화랑도’라고 하여
1명의 귀족 출신 화랑과
그 화랑을 따르는 여러 명의 낭도들이
함께 1개의 화랑도를 구성했던 거죠.

이런 화랑도가 여러 가지가 있었고
이 화랑도들의 화랑들 사이에서도
대표화랑이 있었으니
그를 풍월주 혹은 화주라고 불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