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영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 LPBA 8강 선착 0-11 패배를 잊고 오수정에 3:1 승

여자 프로당구를 이야기할 때 김가영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기준처럼 자리 잡았다. ‘당구여제’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과장이 아닌 이유는, 그가 중요한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집중력을 보여주는지를 보면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 16강전 역시 김가영이라는 선수가 왜 정상에 서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증명한 경기였다.

경기 초반만 놓고 보면 누구도 김가영의 완승을 쉽게 떠올리기 어려웠다. 오히려 반대였다. 1세트, 김가영은 5이닝 동안 단 한 점도 올리지 못한 채 0대11로 무너졌다. LPBA 무대에서 김가영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공이 맞지 않았고, 흐름도 상대에게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 상대 오수정은 침착했고, 테이블 위에서의 선택도 명확했다. 이 시점에서 많은 팬들은 “오늘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가영은 늘 그런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2세트부터 공의 속도를 조절했고,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다시 맞췄다. 단순히 공격적인 샷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에게 실수를 강요하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2세트 11대4, 3세트 11대2. 점수 차이만 보면 일방적이었다. 단 두 세트 만에 흐름은 완전히 뒤집혔다.

이 장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술보다도 경기 운영이다. 김가영은 1세트의 완패를 ‘지워야 할 기록’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이 태도가 그를 다른 선수들과 구분 짓는 지점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큰 점수 차로 세트를 내주면 조급해진다. 하지만 김가영은 오히려 더 느려졌다. 공 하나하나에 집중했고, 테이블 위에서의 선택을 다시 정리했다.

진짜 승부는 4세트였다. 초반 흐름은 다시 오수정 쪽으로 기울었다. 김가영이 한 차례 공타를 기록하는 사이, 오수정이 점수를 쌓았다. 중반에는 오수정의 하이런 8점이 터지며 스코어는 10대5까지 벌어졌다. 사실상 매치 포인트였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관중석에서도 “여기까지인가”라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김가영은 이 상황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9이닝 공타 이후 맞이한 10이닝, 그는 과감하면서도 계산된 선택을 했다. 단순한 안전구가 아니라, 성공 가능성을 정확히 읽은 뱅크샷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뱅크샷을 포함한 연속 득점, 순식간에 흐름은 다시 김가영 쪽으로 넘어왔다. 결국 5득점에 성공하며 경기는 극적인 역전승으로 마무리됐다.

이 경기는 단순한 8강 진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번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은 시즌 마지막 정규투어다. 체력도, 집중력도 모두 바닥을 향해 가는 시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가영은 가장 먼저 8강 대진표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단순히 실력이 좋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시즌 내내 쌓아온 경기 감각과 멘탈 관리,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특히 지난 경기에서 보여준 극적인 역전 경험은 이번 경기에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김가영은 한두 번의 역전으로 만들어진 선수가 아니다. 수많은 위기 상황을 통과하면서 자신만의 승리 공식을 만들어왔다. 상대가 기세를 탈 때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언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번 경기에서도 그는 ‘지금이 때’라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오수정 역시 결코 부족한 경기를 하지 않았다. 하이런 8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고, 경기 내내 공격적인 선택으로 김가영을 압박했다. 하지만 김가영은 그 압박을 끝까지 견뎌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정상급 선수와 도전자의 차이다.

이번 8강 선착은 김가영에게 또 하나의 심리적 이점을 안겨준다. 충분한 휴식과 함께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고, 상대보다 먼저 대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시즌 막판, 이 작은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특히 토너먼트에서는 체력보다 멘탈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많다.

김가영의 이번 승리는 단순한 한 경기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왜 김가영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다. 크게 졌던 1세트, 거의 패배 직전까지 몰렸던 4세트, 그 모든 순간을 지나 결국 승리로 돌아온 과정은 한 선수의 내공을 그대로 보여준다.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경기 하나만으로도 김가영은 다시 한 번 시즌의 중심에 섰다.

이제 관심은 다음 경기로 향한다. 김가영이 이 기세를 어디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그리고 또 어떤 위기와 선택을 보여줄지. 분명한 것은 하나다. 김가영의 경기는 언제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증명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점이 팬들이 그의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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