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만에 좌초한 ‘친명 혁신위’···이재명 리더십 타격

김윤나영·탁지영·신주영 기자 2023. 6. 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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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박광온 원내대표와 함께 입장하며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69)을 새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가 반나절 만에 거둬들인 것은 그만큼 비판 여론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이 이사장이 ‘이재명 지키기 운동’을 벌인 이력이 있는 데다 ‘천안함 자폭설’ 등 각종 음모론을 신봉해왔는데도 걸러내지 못한 인사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혁신기구 출범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던 이 대표는 오히려 리더십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이 대표는 이날 이 이사장의 과거 발언을 두고 각종 논란이 불거지자 자진 사퇴 형식으로 거취를 정리했다. 이 대표는 이 이사장의 사의를 표명한 직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임하시겠다고 해서 본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 선임을 국회에서 직접 발표한 지 9시간여 만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혁신기구의 명칭, 역할 등에 대한 것은 모두 혁신기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며 “우리 지도부는 혁신기구가 마련한 혁신안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이라면서 이 이사장에게 힘을 실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친이재명계 인사인 이 이사장을 혁신위원장에 앉힌 것부터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이사장은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던 2019년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시민사회 원로다. 그는 지난 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늘 시점에 다시 되새기는 명언”이라며 “보면 볼수록 이재명은 든든하고 윤석열은 불안하며, 알면 알수록 이재명은 박식하고 윤석열은 무식하며, 까면 깔수록 이재명은 깨끗하고 윤석열은 더럽다”고 적었다.

특히 이 대표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혁신위원장에 친명계 인사를 내세운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혁신위가 ‘이 대표 체제 강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상민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혁신위가 현 지도부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모면책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종민 의원은 SNS에 “민주당이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시키자고 결심했다면 모를까 민심을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이사장 인선이 발표되자마자 과거 SNS에 올린 글들이 논란이 됐다. 이 이사장은 윤 대통령을 ‘윤가’ ‘조폭 집단’으로 일컬으며 대통령 퇴진을 촉구해왔다. 또 코로나19 미국 기원설, 천안함 자폭설, 미국의 한국 대선 개입설, 등 각종 음모론을 주장했다. 특히 이 이사장이 천안함 폭침을 ‘미국 패권 세력이 조작한 자폭 사건’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안함 유가족 등이 반발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라서 이 발언 논란의 파급력은 컸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이사장의 ‘천안함 자폭 조작’ 발언을 두고 “그 점까지는 저희가 정확한 내용을 몰랐던 것 같다”며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는 공식 발표고 저는 그 발표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과거 SNS나 언론 기고만 살펴봤어도 확인할 수 있던 인사 검증이 작동하지 않았던 셈이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공직 후보자 검증과는 달리 정당에서 검증할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특별한 절차를 갖추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가 당 의견을 두루 수렴하지 않고 졸속으로 인선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발표 하루 전날인 어제 최고위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이 이사장 인선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 본인도 전날 밤에야 인선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김철민 민주당 의원은 SNS에 “누가 추천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혁신위원장 인선이 진행됐고, 인사 참사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혁신기구 출범을 두고 또다시 리더십의 상처를 입게 됐다. 이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투자 논란에서 ‘늑장 대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 사건을 돌파하기 위해 만든 혁신기구 수장의 인사참사 논란까지 더해졌다. 권 대변인은 검증 부실 논란에 대해 “당에서 부족했던 부분은 부족했던 대로 반성도 하고 고쳐나갈 부분은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 사퇴로 혁신기구는 출범 전부터 위기를 맞았다. 한 재선 의원은 “이런 식으로 혁신위원장이 물러났으니 다음 혁신위원장을 아무리 좋은 사람으로 찾더라도 감점을 받고 출발하게 된다”면서 “이번 사태로 혁신위가 중도·무당층에 대한 소구력을 높이기는커녕 당의 처지를 더 좁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 지도부가 새 혁신위원장 인력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당내에선 이 대표 사퇴 요구도 다시 나오고 있다. 이상민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당 혁신의 첫걸음은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거취에 달렸다”며 “혁신위가 이 대표의 영향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고 온전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반신반의한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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