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23> 지중해와 남중해 ; 전쟁이란 함정
세상에서 가장 잔잔한 바다는? 물의 평야로 불리는 지중해다. 한자 뜻 그대로 땅(地) 가운데(中) 있는 바다(海)다. 1869년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엔 최단 폭이 14km 밖에 안 되는 좁은 지브롤터 해협으로만 뚫린 바다였다. 대서양에 속하는 지중해 안에 에게해 이오니아해 아드리아해 등 여러 바다가 속해 있다. 지중해와 바닷물이 통하는 마르바라해와 흑해도 지중해권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가장 요란했던 바다가 가장 잔잔한 바다인 지중해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라들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튀르키예 그리스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모나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있다. 흑해를 둘러싼 조지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불가리아를 제외하더라도 18개국이나 된다. 5대양 총면적은 3억6100㎢인데 지중해는 고작 250만㎢밖에 안 된다. 0.69% 비율밖에 안 되는 ‘쬐깐한’ 지중해다. 거기서 전 세계 200여 개국 중 18개국이 지지고 볶았으니 요란할 만도 했다.
세계사에 등장하는 고대 국가들이 지중해 인근에 있었다. 고대 이집트 가나안 아시리아 히타이트 페니키아 페르시아제국 트로이 고대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제국 등…. 지중해엔 전쟁이 잦았다. BC 13세기엔 트로이전쟁이 일어났다. 대략 BC 1200년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다민족이 출몰해 크레타와 미케네 등 동쪽 지중해 청동기 문명을 박살 냈다. 바다민족은 기록을 남기지도 않고 국가를 세우지도 않았다. 그냥 무자비하게 약탈만 하고 사라졌기에 그들이 설치던 300여 년간 동지중해 역사는 암흑기다. 이후로도 지중해엔 전쟁이 많았다. 아테네는 BC 480년 살라미스해전에서 페르시아를 이겼다. 로마는 BC 146년 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전쟁에서 이겼다. 알렉산더는 BC 332년 티레공방전에서 고전했다. 로마는 BC 31년 이집트와 벌인 악티움해전에서 이겼다. 200여 년(1095~1291) 동안 9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도 지중해 인근에서 벌어졌다.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100여 년(1256~1381)간 지중해 패권을 놓고 싸웠다. 1453년 오스만투르크는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을 벌여 동로마를 무너뜨렸다. 1571년 스페인-베네치아 연합군은 오스만투르크와 벌인 레판토해전에서 이겼다. 1915년 1차대전 때 튀르키예는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국군을 물리쳤다.

이렇게나 큰 전쟁이 많았던 지중해는 지금 조용한 편이다. 박상민이 부른 ‘지중해’란 노래가 있을 정도로 낭만의 대명사가 되었다. 요란했던 지중해를 대신할 만한 바다가 생겼으니 남중해(South China Sea)다. 남중국해 주변으로 중국 대만 필리핀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남중해 바로 위엔 뜨거운 감자인 센카쿠열도다. 신흥 강국인 중국을 상대로 기존 강국인 미국과 일본이 끼어든다. 3차대전 가능성 제1순위 지역이다. 지중해를 끼고 벌어진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기존 강국이 신흥강국을 견제하려고 전쟁이란 함정(陷穽)에 빠져든다고 썼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도 썼는데 제발 그런 역사는 부디 돌지 말기를….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