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성장과 인권유린"…서방언론, 장쩌민 명암 재조명

최재서 2022. 11. 30. 20:2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국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하면서 서방언론들도 그의 일생을 재조명했다.

미국 AP통신은 이날 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그가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중국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고 경제개혁으로 10년간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독일 dpa통신은 장쩌민이 13년간 공산당 당수로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P "시장확대·WTO 가입 속 민주화·노동운동·파룬궁 탄압"
NYT "링컨 인용하고 할리우드 애호한 '색다른 공산주의자'"
AFP "강대국 길목 지도자"…dpa "비전 모를 오랜 막후 권세가"
향년 96세로 사망한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15년간 중국을 이끌었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30일(현지시간) 9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70주년 기념식을 위한 국경일 열병식이 시작하기 전 톈안먼 광장에서 시진핑 주석(왼쪽)이 장쩌민 전 주석(가운데)과 리커창 총리 옆에 서 있는 모습이다. [자료사진] 2022.11.30 jason3669@yna.co.kr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중국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하면서 서방언론들도 그의 일생을 재조명했다.

집권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인 인물로 평가됐으나, 당과 당원들을 이끄는 정치가로서의 평가는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다.

미국 AP통신은 이날 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그가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중국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고 경제개혁으로 10년간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장쩌민 임기에 "시장 중심의 개혁 부흥,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중국의 역사적인 변화를 목도했다"고 적었다.

다만 당시 "중국은 외부에 개방돼 있었으나 국내 반대 여론은 짓밟았다"며 인권, 노동, 민주화 운동가들의 구금과 파룬궁 탄압 등 인권 유린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담았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많은 해외 정치인들에게 장쩌민은 딱딱한 이미지의 중국의 여느 지도자와 달리 매우 수다스러운 인물이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그는 스스럼없이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을 인용하는 한편 할리우드 영화 애호가이기도 했으며 불쑥 '러브 미 텐더'를 노래하기도 하는 차별화된 공산주의자였다고 적었다.

NYT는 그의 이러한 독특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그가 당을 이끄는 과정에서 '교활한 정치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장쩌민이 공산당을 이끌던 첫해부터 우유부단함과 취약점을 노출해 이에 시달려왔다 평가도 덧붙였다.

NYT는 그의 재임기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불안정했다"면서도 "그는 중국이 미국을 적으로 돌릴 경우 번영이 계속되기 힘들다고 확신하는 듯 보였다"고 적었다.

중국 성장기반 닦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 별세, 향년 96세 (베이징 AFP=연합뉴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30일(현지시간)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199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50주년 기념식을 축하하기 위해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국경일 열병식 도중 손을 흔들고 있는 장쩌민 전 주석의 모습이다. 장쩌민 전 주석은 격변의 시기였던 1993년부터 2003년까지 국가주석으로 재임했고 톈안먼 시위와 구소련 몰락으로 위기를 맞았던 중국 내부 정치를 안정시키면서 경제를 발전시켰다. [자료사진] 2022.11.30 jason3669@yna.co.kr

프랑스 AFP통신은 "198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밀레니엄에 이르기까지 변혁적인 시대를 거쳐 나라를 이끈 장쩌민이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가 임기를 마친 2003년 중국은 WTO 가입국이었고, 베이징은 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으며 나라는 강대국으로 가고 있었다"고 평했다.

또한 장쩌민과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은 그가 정계 지도자 지위를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공산주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AFP는 장쩌민이 공교롭게도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별세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중국에서는 이달 중순 고강도 방역 정책에 반대하며 시작된 이른바 '백지 시위'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 dpa통신은 장쩌민이 13년간 공산당 당수로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오히려 행정가로서의 면모가 돋보였으며, 당의 다양한 흐름을 조정하는 데는 타협적인 인물이었다는 설명이다.

dpa는 "장쩌민은 2002년에서야 권력의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뒤에도 오랜 기간 권세를 유지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가 생전에 시를 사랑했으며 국빈들을 상대로 괴테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지식을 늘어놓기를 좋아했다고도 덧붙였다.

acui721@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