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연히 머릿속으로 그려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올해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첫 경기는 미국에서 열리지 않는다. 한국 서울 고척돔에서 내일부터 이틀간(3월20∼21일) 치러진다.
메이저리그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재정 위기를 딛고 지난해 최고 수익을 경신했다. 2022년보다 15% 증가한 관중 수익 38억 달러를 포함해 총 116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한화로 환산하면 15조 4512억 원이다. 종전 최고액은 2022년 108억 달러로,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뉴욕포스트>는 "이 산업은 죽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즐길 거리가 많아진 오늘날, 야구의 경쟁 상대는 스포츠만이 아니다. 더 넓은 관점에서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현재 성공에 도취되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는 순간, 야구는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사무국은 다각도로 야구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도입된 피치 클락이 대표적이다. 경기 외적인 여백을 줄여 경기 시간을 단축시켰다. 덕분에 메이저리그는 관중 수 증가와 동시에 평균 연령까지 낮출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자 견제 제한과 수비 시프트 제제 등 야구의 역동성을 부각시키는 규정들도 마련하면서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사무국이 신경 쓰는 부분은 하나 더 있다. 야구의 세계화다. 야구를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시키려고 한다. 이 목적을 이루려고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월드투어'다. 세계 각국의 야구 팬들과 접촉해서 야구의 저변 확대를 도모한다. 2026년까지 아시아와 유럽, 멕시코, 중남미 국가들을 순회할 예정이다.
서울시리즈는 올해 월드투어의 첫 걸음이다. 서울시리즈를 시작으로, 4월말 멕시코시티 시리즈와 6월 중순 런던 시리즈가 개최된다. 메이저리그가 미국/캐나다를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개막전을 가지는 건 앞서 8번이 있었다. 일본이 5번, 한국은 처음이다.
1999 - 멕시코 몬테레이 (콜로라도 샌디에이고)
2000 - 일본 도쿄 (메츠 컵스)
2001 -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텍사스 토론토)
2004 - 일본 도쿄 (탬파베이 양키스)
2008 - 일본 도쿄 (보스턴 오클랜드)
2012 - 일본 도쿄 (오클랜드 시애틀)
2014 - 호주 시드니 (다저스 애리조나)
2019 - 일본 도쿄 (오클랜드 시애틀)
서울시리즈에 참가하는 팀은 다저스와 샌디에이고다. 두 팀 모두 한국과 인연이 깊다.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서 첫 번째 한국 팀이다. 박찬호의 입단으로 가장 먼저 국내 팬들에게 다가왔다. 박찬호에 이어 최희섭과 서재응도 다저스를 거쳤고, 류현진도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맞이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샌디에이고는 최근 들어 관심이 뜨거운 팀이다. 김하성이 활약하면서 주목도가 달라졌다. 박찬호가 특별 고문으로 있는 샌디에이고는 지난 몇 년간 대형 선수들을 영입하고 키워내면서 체급이 커졌다. 이전에는 없었던 스타성이 생겼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는 역사적으로 비교하기 힘들다. 깊이의 차이가 선명하다. 다저스는 1884년, 샌디에이고는 1969년에 창단했다. 다저스가 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반면, 샌디에이고는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다.
정규시즌 성적도 다저스가 월등히 앞선다. 통산 맞대결 전적 역시 518승419패를 기록 중인 다저스의 우위다. 같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소속된 두 팀은 자주 맞붙었는데, 샌디에이고는 2010년 10승8패 이후 한 번도 다저스와의 시즌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한 적이 없다. 다저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팀이 샌디에이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팀은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다. 샌디에이고가 '타도 다저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났다. 작년에 타계한 샌디에이고 피터 사이들러 구단주는 다저스를 두고 "그들은 우리가 사냥해야 할 용"이라고 말했다.
주로 다저스에게 밀렸던 샌디에이고는 2년 전 포스트시즌 디비전시리즈에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냈다. 다저스를 3승1패로 누르고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한 것. 샌디에이고의 응집력이 발휘된 시리즈로, 정규시즌 89승 팀이 111승 팀을 꺾은 것도 파란이었다. 샌디에이고로 이적하기 직전에 다저스에서 뛰었던 매니 마차도는 "심지어 지고 있을 때도 질 것 같지 않았다"며 불난 옛 팀에 부채질을 했다.
이러한 일화를 가진 두 팀이 서울시리즈를 장식한다. 올해도 두 팀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린다. 다저스는 강력한 우승 후보이며, 샌디에이고도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는 다크호스다. 서울시리즈는 162경기 중 두 경기일 뿐이지만, 두 팀 전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무대다.
스토브리그는 극과 극이었다. 다저스는 오타니 쇼헤이와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영입하면서 FA 1,2위를 모두 품었다. 탬파베이 타일러 글래스나우까지 데려오면서 연장 계약을 체결. 총 12억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돈잔치로 뜨거운 겨울이었다.

샌디에이고의 겨울은 차가웠다. 자금난에 빠진 샌디에이고는 지출을 최소화했다. 높은 연봉이 예상되는 후안 소토를 트레이드했고, FA 시장에 쓴 총액도 5000만 달러가 전부였다. 이 때문에 한 박자 쉬어가는 시즌처럼 보였는데, 지난주 화이트삭스 1선발 딜런 시즈를 데려오면서 우승 도전을 천명했다.
다저스 예상 라인업
1. 무키 베츠 (유격수)
2. 오타니 쇼헤이 (지명)
3. 프레디 프리먼 (1루수)
4. 윌 스미스 (포수)
5. 맥스 먼시 (3루수)
6. 테오스카 에르난데스 (좌익수)
7. 제임스 아웃맨 (중견수)
8. 제이슨 헤이워드 (우익수)
9. 개빈 럭스 (2루수)
샌디에이고 예상 라인업
1. 잰더 보가츠 (2루수)
2.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우익수)
3. 제이크 크로넨워스 (1루수)
4. 매니 마차도 (지명)
5. 김하성 (유격수)
6. 그레이엄 폴리 (3루수)
7. 루이스 캄푸사노 (포수)
8. 쥬릭슨 프로파 (좌익수)
9. 잭슨 메릴 (중견수)
지난해 다저스는 경기 당 평균 득점 2위였다. 애틀랜타가 5.85득점, 다저스가 5.59득점이었다(샌디에이고 4.64득점). 이미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보여준 타선이다.
이 타선에 오타니가 합류한다. 현지에서는 베츠와 오타니, 프리먼으로 이어지는 상위 타선은 역대 최강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스프링캠프 동안 세 선수의 타순을 숙고한 끝에 오타니를 2번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오타니의 앞뒤로 베츠와 프리먼을 두면서, 오타니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 트리오의 파급력은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예고된 바 있다. 지난 7일 화이트삭스전에서 상대 투수가 오타니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걸렀다. 고의적으로 오타니를 피하고 프리먼과의 승부를 택한 것이다. 전의를 불태운 프리먼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2사 만루에서 홈런을 쏘아 올리는 것으로 확실하게 응징했다. 투수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한 방이었다.
다저스는 오타니와 더불어 장타력을 갖춘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도 가세하면서 타선의 무게감이 더해졌다. 타격 재능이 있는 개빈 럭스의 복귀도 짜임새를 갖춘다. 좌완이 올라올 때 나오는 우타자 요원들(크리스 테일러, 키케 에르난데스, 미겔 로하스)의 기량이 다소 의문이지만, 일단 샌디에이고는 선발진에 좌완이 없다. 적어도 경기 초반에는 다저스가 자랑하는 정예 멤버들이 출격할 것을 시사한다.
샌디에이고는 소토의 빈 자리가 아쉽다. 마이크 실트 감독은 상위 타선의 우타자 편중 현상을 막기 위해 크로넨워스를 3번에 넣고 싶어한다. 하지만 크로넨워스는 중심 타선에 적합한 유형은 아니다. 지난해 타격 성적도 타율 0.229, OPS 0.689로 급격히 떨어졌다.
상/하위타선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도 과제다. 다저스가 쉬어가는 구간이 없는데, 샌디에이고는 한 숨 돌릴 수 있는 구간이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좋은 활약을 펼친 잭슨 메릴이 키 플레이어다. 메릴은 공을 맞히는 재주가 있고, 삼진도 잘 당하지 않는다. 다만 프로에서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중견수를, 팀 사정상 소화해야 하는 것이 변수다. 수비에서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다면 공격에도 여파가 있을 것이다.
다저스도 팀 사정 때문에 포지션을 이동하는 선수가 있다. 우익수에서 2루수로, 또 2루수에서 유격수로 옮긴 베츠다. 2루수는 시간을 두고 준비했지만, 유격수는 스프링캠프 후반에 갑자기 정해지면서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다. 지난해 유격수로 12경기 선발 출장했지만, 그 이전 베츠가 선발 유격수로 나온 건 2012년 하위싱글A 시절이었다. 아무리 베츠가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해도 부담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로 다저스의 내야 수비는 불안정하다. 3루수와 유격수가 책임지는 내야 좌측이 매우 어수선하다. 맥스 먼시는 지난해 내셔널리그에서 실책이 가장 많은 3루수였다(16개). 수비로 실점을 얼마나 방지했는지 가늠하는 DRS(-3)와 평균 대비 아웃카운트 처리를 집계하는 OAA(-7)도 모두 마이너스였다. 여기에 유격수 수비가 검증되지 않은 럭스가 우왕좌왕하면서 로버츠 감독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문제는 베츠도 유격수 수비가 어색하다는 데 있다. 다행히 고척돔의 인조잔디가 전면 교체되면서 이전만큼 타구 처리에 어려움은 없다는 증언이다. 그렇다고 해도 까다로운 타구를 베츠가 잘 처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는 오히려 베츠의 몸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공교롭게도 다저스의 약점이, 샌디에이고에게는 강점이다. 샌디에이고는 보가츠를 설득시켜 김하성을 유격수로 복귀시켰다. 그러면서 내야 미들 라인의 수비가 강화됐다.
지난해 김하성은 유격수로 많이 나서지 않았다(20경기 153.1이닝). 그러나 다재다능한 수비력은 리그의 인정을 받았다. 또한 보가츠는 베츠와 달리 수비에서의 압박감이 약해지면서 공격으로 더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샌디에이고로선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데, 결국 힘을 내야 하는 건 김하성이다. 김하성이 공수에서 기대에 보답해야 지금까지 샌디에이고가 한 파격적인 결정들이 당위성이 생긴다.
고척돔은 투수친화적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날 수도 있다. 태평양을 횡단한 선수들의 컨디션이 정상적이지 않은 점도 감안해야 한다.
만약 최소한의 점수로 승패가 나뉘면 감독들의 경기 운영이 승부를 좌우할 것이다. 로버츠 감독은 궁극적으로 시험대가 될 단기전의 예행 연습이다. 실트 감독은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팀의 출정식이다. 두 감독 입장에서는 승리해야 하는 의미가 분명하다.
결코 내줄 수 없는 시리즈다. 객관적인 전력을 떠나서 왜 두 팀이 라이벌 구도가 구축됐는지 알게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를 향하는 모든 시선이 서울로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