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열이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의 삶은 무대보다 훨씬 거칠고 낡은 골목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입학 무렵, 어머니가 상가 분양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 사정은 급격히 기울었다.
전기세가 밀려 정전이 잦았고, 급기야 빨간 딱지가 붙은 집에서 쫓겨나듯 이사를 해야 했다.

그가 새롭게 거처를 마련한 곳은 서울의 산동네, 비포장 도로 위에 자리한 작은 판잣집이었다.
보증금 100만 원, 월세 20만 원. 외풍이 심해 겨울이면 문틈마다 신문지를 붙여야 했고, 비가 오면 양동이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물을 받았다.
주변 이웃들의 말처럼, 지인들이 쌀과 기름을 놓고 갈 정도로 형편은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연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성균관대 연기과에 입학했지만 등록금을 내기 어려워 휴학하고 일자리를 전전했다.
일용직, 행사 아르바이트, 전단지 배포, 배달, 심지어 찹쌀떡 장사까지.

그 시절, 김무열에게 남은 건 빚이었다.
아버지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빌린 돈은 어느새 3억 원을 넘겼고,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가족 중 누군가는 병원에 있어야 했고, 누군가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쉬는 날’이란 개념은 없었다.

그렇게 살아내던 시절, 그는 생계 곤란을 이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하지만 몇 년 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과거 수입 내역이 드러나며 병역 회피 의혹이 불거졌고, 억대 수입이 있었다는 점만 부각되면서 여론은 빠르게 차가워졌다.

김무열 측은 소득이 있었던 시점조차 대부분 빚을 갚고 생활비로 소진됐고, 당시 수입은 전부 채무상환에 쓰였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병무청도 담당자의 행정 착오를 일부 인정했지만, 이미 퍼진 오해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소속사는 “그 시기에도 김무열은 카드 하나 만들 수 없을 만큼 신용이 망가져 있었다”고 덧붙이며 억울함을 전했다.

결국 그는 ‘나는 떳떳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긴 채 자진 입대를 선택했다.
"잘못하지 않았지만, 구설수에 오르는 게 죽기보다 더 싫었다"고도 말했다.

2012년 10월, 김무열은 조용히 입대했다. 강원도 12사단 을지부대에서 1년 9개월을 복무하면서 말 그대로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
군 복무 중 슬관절 부상으로 의가사 제대 권유도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마치겠다”며 자진 복무를 이어갔다.

그렇게 군 생활을 마친 김무열은 제대 후, 천천히 다시 무대 위에 섰다. 그사이 세상의 시선도 조금씩 바뀌었다.
연기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아내 윤승아와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아들의 탄생까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손주 얘기를 얼마나 하고 다니셨을까 생각이 난다”며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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