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26> 동래구 낙민동유적 출토 백제계 연화문수막새

하근영 임시수도기념관 학예연구사 2022. 9.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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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는 가옥의 지붕을 덮는 건축 재료로서 물과 습기를 차단해 목재의 부식을 방지하는 한편, 건물의 외관 치장을 위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낙민동 유적에서 출토된 기와 중 주목할 만한 유물로는 백제계 '연화문 수막새'가 있다.

부산박물관 동래관에는 앞서 소개한 낙민동 유적 출토 백제계 연화문 수막새 외에도 부산지역에서 발굴된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의 기와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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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백제서 유행했던 연꽃잎 문양 기와 .. 활발한 문화교류의 흔적

기와는 가옥의 지붕을 덮는 건축 재료로서 물과 습기를 차단해 목재의 부식을 방지하는 한편, 건물의 외관 치장을 위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특히 고대 건축물에 기와를 얹었다는 것은 그 기능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건물 소유자의 지위나 능력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포함한다. 마치 현대의 특정지역 고가 건물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과 그 의미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부와 권위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연화문수막새. 부산박물관 제공


기와는 3000년 전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져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 전파되었고 서로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발전해왔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한 고구려를 시작으로 백제와 신라에서 기와가 제작되었고, 통일신라에 이르면 기와의 제작 기술과 예술성은 최고조에 이른다.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기와의 장식적인 역할은 축소되고 오히려 실용적인 목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기와처럼 전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온 생활유물은 드물다.

부산에서도 삼국시대 기와가 출토돼 이른 시기부터 기와 건물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동래구 낙민동 유적이 있다. 이 유적에서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됐던 암·수키와 막새 치미 등 다양한 종류의 기와가 발굴돼 당시 낙민동에는 일반 주거와 다른 성격의 건축물이 존재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낙민동 유적에서 출토된 기와 중 주목할 만한 유물로는 백제계 ‘연화문 수막새’가 있다. 이 수막새는 아무 문양이 없는 8개의 넓은 연꽃잎을 가지고 있으며 낙민동 유적 출토 막새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식의 수막새는 6세기 중반 이후 백제지역에서 유행한, 꽃잎의 끝이 약하게 반전되는 연화문 수막새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한편 백제계 연화문 수막새는 경상도 지역에서는 주로 경주에서 확인된다. 경주에서는 백제계뿐만 아니라 고구려계 연화문 수막새도 출토되며, 신라 말에 이르러 이 두 가지 양식의 영향을 받은 신라의 고유한 연화문 수막새도 제작됐다. 이처럼 연꽃 기와 문양이 두루 나타난다는 것은 당시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문화가 상호 교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부산박물관 동래관에는 앞서 소개한 낙민동 유적 출토 백제계 연화문 수막새 외에도 부산지역에서 발굴된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의 기와가 전시돼 있다. 박물관을 방문해 전시된 기와를 관람하면서 기와가 사용된 당시의 풍경들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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