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꺾을 수 있다면…” 인생 목표 포기한 ‘캡틴 아메리카’

이태동 기자 2025. 8. 2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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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브래들리, 라이더컵 선수단 확정

PGA(미 프로골프) 투어 통산 8승의 키건 브래들리(39)는 ‘2012년 라이더컵’ 미국팀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열지 않고 13년째 그대로 보관 중이다. 라이더컵은 2년마다 열리는 미국과 유럽의 골프 대륙 대항전이다. 브래들리는 당시 라이더컵 미국 대표팀에 처음 선발돼 3승(1패)을 올리며 제 몫을 다했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에 13.5대14.5로 역사에 남는 극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브래들리는 “인생 최고이자 최악의 순간”이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래픽=양인성

브래들리는 이후 라이더컵에 골프 인생을 걸었다. “매일, 매 순간 라이더컵을 생각한다”면서 다시 출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유럽을 이기기 전까지는 2012년 가방을 정리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브래들리는 2014년 라이더컵에 다시 출전했지만, 미국 팀은 또 졌다. 이후론 개인 성적이 부진해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2022~23시즌에 2승을 올린 그는 2023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라이더컵 출전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미국 팀 단장(잭 존슨)에게 전화로 탈락 통보를 받고서 낙담한 모습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공개돼 많은 팬이 위로를 건넸다.

다음 달 26일 미국 뉴욕 베스페이지 블랙 코스에서 개막하는 제45회 라이더컵 미국 단장(캡틴)으로 브래들리가 선임되자, 그가 선수까지 겸할지 관심이 쏠렸다. 단장이 된 그가 자신을 미국 팀 선수로 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 12명 중 6명은 성적 포인트에 따라 자동 선발되고, 나머지 6명은 단장 재량으로 선택한다. 브래들리는 1963년 아널드 파머 이후 62년 만의 ‘플레잉 캡틴’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보여온 간절함과 애국심, 포인트 랭킹 11위까지 올라선 실력 등을 들며 ‘단장 겸 선수’ 브래들리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셀프 선발’을 지지했다.

라이더컵 미국팀 캡틴 키건 브래들리가 28일 미국 텍사스주 프리스코에서 자신을 제외한 단장 추천 선수 6명의 명단을 발표한 뒤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단장 역할에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미국프로골프협회

하지만 브래들리는 28일 선수 지명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포인트 랭킹 7~9위 저스틴 토머스, 콜린 모리카와, 벤 그리핀과 자신보다 랭킹이 낮은 캐머런 영(14위), 패트릭 캔틀레이(15위), 샘 번스(16위)를 지명했다. 그는 “라이더컵에서 뛰고 싶은 마음으로 평생을 노력해왔지만, 나는 단장으로 선택받았고, 최고의 단장이 되고 싶다”며 “마음이 찢어지지만 이게 100%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선수로 다시 유럽을 꺾겠다는 ‘인생 목표’보다 팀 승리를 위해 단장 역할에 집중하겠단 얘기였다.

라이더컵 단장은 단순히 선수 선발만 하는 자리가 아니란 점에서 그의 선택은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장은 선수 선발은 물론 포섬(foursome·둘이 공 하나를 번갈아 치는 방식)과 포볼(four-ball·둘 중 더 나은 성적을 반영하는 방식) 선수 조합을 구성하고 매치업에 따른 출전 순번도 짠다. 팀 분위기와 기강을 관리하면서 언론 대응도 맡고 최종 승패에 책임까지 진다. 미 골프채널은 “브래들리가 공 한 번 치기도 전에 벌써 선수단을 결속시켰다”고 했다.

역대 라이더컵에선 단장의 선택이 승패를 좌우한 경우가 작지 않았다. 2004년 미국 단장 핼 서튼은 당대 최고 스타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을 포섬 조합으로 묶어 내보냈다. 그런데 둘의 호흡을 고려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불협화음 속에 우즈-미켈슨 조는 연패했고, 분위기가 처진 미국은 맥없이 졌다. 서튼은 큰 비난을 받고 한동안 골프계와 거리를 둬야 했다. 반면 2008년 미국 단장 폴 에이징어는 ‘명단장’으로 칭송받았다. 미국 선수들의 ‘개인주의’가 문제로 지적받자 4명씩 소그룹으로 묶어 훈련하게 했다.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9년 만에 승리를 따냈다.

그래픽=양인성

유럽팀에서도 1999년 마크 제임스(잉글랜드)가 대회 내내 투입하지 않던 신인 3명을 마지막 날 출전시켰다가 역전패를 자초한 일이 있다. 반대로 2012년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스페인)은 최종일에 공격적인 선수를 초반 배치해 기세를 뺏고 역전승을 거뒀다. 일명 ‘메디나의 기적’으로, 미국팀 브래들리가 ‘최악’이라 기억하는 그 대회다.

유럽팀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모습이다. 2023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단장을 맡은 루크 도널드(잉글랜드)는 다음 달 1일 지명 선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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