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에 투자하는 패스트패션…H&M 투자받은 스타트업 가보니

스웨덴= 이다솔 기자 2024. 10. 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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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투텍스타일 섬유로 만든 니트. 트리투텍스타일 제공

언뜻 평범해 보이는 옷이었다. 빨간 자켓과 흰색 니트가 회의실 한켠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다만 처음 들어보는 섬유인 트리투텍스타일 섬유로만 만들어졌다는 점이 달랐다.

"내년에 생산되는 트리투텍스타일 섬유가 H&M에서 사용될 예정입니다. 그 이후에 H&M 매장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록사나 바르비에루 트리투텍스타일 대표가 말했다.

스타트업 '트리투텍스타일'은 패스트패션 기업인 H&M을 포함해 이케아 등 총 4개 그룹의 투자를 받아 2021년 설립됐다. 기존 섬유에 비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인 차세대 섬유를 만들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스웨덴 스톡홀름 소재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바르비에루 대표는 "비스코스에 비해 탄소 배출을 평균 70~90%까지 줄였고 면과 폴리에스테르에 비해서도 상당한 탄소 배출량을 상당히 줄였다"고 설명했다. 면과 폴리에스테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섬유다. 미국 비영리단체 텍스타일익스체인지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섬유 시장에서 폴리에스테르는 약 55%, 면은 25%를 차지했다.

트리투텍스타일 섬유가 만들어지는 공정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는 비커들. 펄프를 녹여 이를 돌리면 실 형태의 섬유가 만들어진다. 트리투텍스타일 제공

비스코스는 나무에서 추출한 셀룰로스를 가공해 만드는 섬유다. 트리투텍스타일도 유사한 공정을 따른다. 다만 비스코스 일부가 산림파괴 지적을 받는 데 반해 트리투텍스타일은 건축과 가구 제조 과정에서 남는 나무칩만을 이용한다.

또 비스코스를 만들 때 사용되는 독성물질인 이황화탄소를 쓰지 않아도 되는 공정을 개발했으며 사용된 화학물질은 회수하고 있다. 염색 공정에 대해서도 바르비에루 대표는 "트리투텍스타일 섬유는 염색이 쉬워 화학 물질을 기존보다 20% 덜 쓴다"고 설명했다.

바르비에루 대표가 직접 만질 수 있게 나눠준 트리투텍스타일과 면, 비스코스 원단을 직접 만져보니 비스코스는 '인견'이라는 별명만큼이나 실크처럼 매끄러웠다. 트리투텍스타일은 그보다 조금 덜 매끄러운 느낌이었다.

바르비에루 대표는 "트리투텍스타일은 면과 비스코스 중간 정도 되는 촉감"이라며 " 가격도 면보다는 싸고 비스코스보다는 비싼 중간 가격이 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섬유가 널리 쓰이려면 가격이 중요한데 시중에서 많이 쓰이는 섬유와 비슷한 가격대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바르비에루 트리투텍스타일 대표가 자사 섬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 이다솔 제공

● 패스트패션의 지속가능 섬유 투자, 왜?

패스트패션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강화한 섬유에 투자하는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9월 '자라'를 운영하는 패션 기업 인디텍스와 H&M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립자가 이끄는 브레이크스루벤처스와 함께 미국 스타트업 갤리에 약 440억 원을 투자했다.

갤리는 농장 재배 과정 없이 실험실에서 면화 세포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면 섬유를 만든다. 기존 면 섬유에 비해 물 사용량을 99%, 토지 사용량을 97% 줄이는 공정이다.

섬유 재활용에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중국 패스트패션 기업 쉬인은 영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섬유를 재활용하기 위한 해결책을 지원하기 위해 약 3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인디텍스는 섬유 폐기물로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를 만드는 미국 기업 앰버사이클에 약 100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비판 받아온 패스트패션 기업이 이런 투자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유럽을 중심으로 생기는 규제다. 바르비에루 대표는 "EU의 산림 벌채 규제 때문에 섬유 산업이 순환경제와 넷제로를 위해 더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발효된 산림 벌채 규제는 섬유 생산을 위해 산림을 벌채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폐기물 수거를 생산자에게 책임지게 하는 EU의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EPR)'도 쉬인이 유럽과 영국의 재활용 기술에 투자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EU가 추진하는 정책 중 '디지털 제품 여권'도 의류 산업에 영향을 준다. 디지털 제품 여권은 EU 내에 유통되는 모든 물리적 제품이 어떤 재료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했는지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다.

오정미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옷 한 벌을 만드는 데에도 여러 나라와 수많은 소매업을 거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불투명하고 이를 추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정보가 투명해지면 어떤 옷이 얼마나 지속가능한지 판단하기 쉬워진다는 뜻이다.

다만 패스트패션 기업의 지속가능 섬유에 대한 투자가 환경 영향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오정미 교수는 "제품 생산부터 판매,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질 좋은 옷을 오랫동안 입는 문화로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바르비에루 대표는 "패스트패션 문화는 소비자가 이끄는 것이기도 하므로 사라지기 어렵다"며 "그렇다면 해결책은 더 많은 지속가능한 섬유를 사용하는 것이며 이것이 H&M 등이 섬유 부분에 노력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KPF 디플로마 기후변화대응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보도됐습니다.

[스웨덴= 이다솔 기자 da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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