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풀옵션 경차 가격에 고급 소형차를 탄다..현대 캐스퍼 일렉트릭

지난 1일 발생한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의 민심이 흉흉하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전기차 캐즘 해소를 목표로 등장한 전기차가 있다. 바로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국고 및 지자체 보조금을 받으면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실구매가가 2000만원 중후반에 형성된다.

국산 전기차치고 놀라운 가격 경쟁력을 갖춘 건 사실이지만 소비자는 소형차인데다 ‘전기차’ 범주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뒷걸음질을 칠 수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이런 난세를 뒤집을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시승 코스 출발지인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대기 중인 캐스퍼 일렉트릭

캐스퍼 일렉트릭은 2021년 등장한 경차 캐스퍼와 이름만 같을 뿐 본질인 파워트레인부터 차체 크기까지 다르다. 사실상 급이 다른 차량이다. 우선 외관 디자인부터 살펴보면 현대차 전기차의 고유 정체성인 픽셀 디자인이 대거 적용됐다.

전면은 내연기관 캐스퍼와 디자인 요소의 배치만 유지했을 뿐 보닛을 제외하고 디테일을 모두 수정했다. 전동화에 따라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은 매끈하게 다듬어 공기역학 성능을 향상시켰다.

또한, 그릴 안쪽으로 충전구와 레이더 센서, 전면 카메라를 티나지 않게 숨겨 깔끔한 인상을 더한다. 헤드램프 역시 LED 프로젝션 램프가 적용된다. 일반 캐스퍼는 풀옵션을 적용해도 할로겐 램프가 달려 나온다.

측면 디자인의 핵심은 길어진 전장과 대칭을 이룬 벨트 라인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경차 혜택을 마다하고 차체 크기를 늘려 소형차가 됐다. 일반 캐스퍼와 비교했을 때 전장 230mm, 휠베이스 180mm씩 길다.

차체 크기를 늘린 이유는 대용량 배터리 팩 탑재를 위해서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49kWh 용량의 NCM 배터리 팩을 장착했다. 기존 경차 사이즈를 유지하고 전동화한 기아 레이 EV는 35.2kWh 용량의 LFP 배터리 팩을 달아 1회 충전 항속거리에서 손해가 막심했다.

디자인 완성도가 차이가 난다. 일반 캐스퍼는 측면 벨트 라인 높낮이가 달라 전반적인 디자인 완성도를 해쳤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전장 및 휠베이스가 늘어나면서 벨트 라인도 대칭을 이뤄 균형잡인 몸매를 완성했다.

후면 디자인도 픽셀 디자인 기조는 유지된다. 후면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테일램프에 픽셀을 적용했다. 일반 캐스퍼와 동일하게 방향지시등은 리어 범퍼 양 끝단에, 후진등은 리어 범퍼 최하단에 자리한다.

외관에 적용되는 램프를 모조리 LED 램프로 바꾼 것뿐인데, 차량의 전반적인 고급감이 크게 좋아졌다는 점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실내 디자인 역시 일반 캐스퍼와 구성은 같지만 사소한 디테일을 변경해 상품성을 극대화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크기가 각각 10.25인치인 디지털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다. 현행 캐스퍼는 디지털 계기판을 미적용할 뿐 아니라 센터 디스플레이도 8인치가 탑재된다.

센터 디스플레이 크기를 키우면서 화면 구성을 2분할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 화면과 날씨 정보를 2:1 비율로 구성할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아쉽게도 5W 표준형이 유지됐다. 멜론, 지니뮤직 등 음악 스트리밍은 즐길 수 있지만 차세대 ccNC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지원하는 유튜브, 웨이브 등 OTT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 카플레이 등의 스마트폰 미러링도 무선이 아닌 유선으로 연결해야 가능하다.

기어 쉬프터는 스티어링 휠 쪽으로 옮겼다. 덕분에 센터페시아 공간 활용도가 좋아졌다. 추가된 기능은 스마트폰 무선 충전과 실내 V2L이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이 추가된 건 장점이다. 다만, 스마트폰이 센터페시아 내부로 완전히 수납되는 형태라 운전 중 화면을 통해 전달하는 사소한 알림을 확인하기 어렵다. 아울러 차량에서 내릴 때 스마트폰을 두고 내릴 수도 있겠다.

캐스퍼 일렉트릭 실내 V2L 포트는 1열 센터페시아 하단에 자리를 잡았다.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실내 V2L 포트는 통상 2열 시트 하단에 위치하지만, 2열 탑승객을 태울 일보다 혼자 타고 다니는 일이 잦은 시티카 콘셉트에는 이게 더 잘 어울린다.

기계식 기어 쉬프터가 삭제되면서 센터페시아 돌출도 45mm 줄어, V2L 포트 이용이 편리하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오가는 워크 스루도 한결 편안해졌다. 작은 차라 좁은 공간에 주차해도 웬만해서는 하차 공간이 확보되겠지만 없어서 불편한 것보단 났다.

전장 및 휠베이스가 늘어나면서 2열 공간은 덩달아 좋아졌다. 2열 좌석을 뒤로 최대한 밀면 무릎 공간에 주먹 2개는 족히 들어가고 남는다. 머리 공간은 기존 캐스퍼와 동일하게 주먹 하나 반 정도 들어간다. 여기에 2열 시트 리클라이닝은 5단계 이상으로 세분화돼 조작할 수 있다.

트렁크에 적재할 짐이 없다는 가정 하에 성인 4명이 타고 이동해도 여유로울 공간을 만들어낸다. 소형차 그리고 전동화의 이점이 더해진 2열 공간을 누리기 시작하면 경차 혜택을 잃어 쓰렸던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될 것으로 보인다.

트렁크 적재 용량은 기본 280L다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351L까지 확장할 수 있다

2열 공간이 넓어졌다는 건, 트렁크 공간이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렁크 적재 용량은 기본 280L, 2열 시트까지 접으면 최대 351L까지 확장할 수 있다. 일반 캐스퍼는 2열 시트까지 접어도 301L의 트렁크 용량 확보가 전부였다. 또한,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이 아닌, 보그워너 소형차용 통합구동모듈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전면 프렁크 공간은 별도로 마련하지 못했다.

소형차급으로 진화했지만, 여전히 트렁크 공간을 활용한 차박은 불가능하다. 키 176cm 기자가 누웠을 때, 발이 트렁크 밖으로 삐죽 튀어나올 뿐더러 평탄화가 완벽하지만은 않다.

배터리 잔량 73%에서의 주행 가능 거리는 254km다

외관 디자인, 실내 디자인 그리고 실내 공간 활용도까지 모두 살펴봤으니 이제 본격 시승에 돌입할 차례다. 시승 코스는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출발해 31.1km 떨어진 파주 기착지까지 이동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코스로, 약 60km가량 주행하는 비교적 짧은 시승 코스로 구성됐다.

출발 전 차량의 배터리를 확인했다. 배터리 잔량은 73%, 주행 가능 거리는 254km가 나온다. 단순 계산으로 환산하면 배터리 잔량 100%일 경우, 주행 가능 거리는 340km가량 나올 것으로 보인다. 컬럼식 기어 쉬프터를 앞으로 비틀어 D에 놓고 가속 페달을 살포시 밟으면 전기차답게 매끄럽게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자 매서운 비가 캐스퍼 일렉트릭의 차체 표면으로 쏟아진다. 차선은 물론 전방 시야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했다.

정차 및 재출발까지 지원하는 HDA1 수준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술은 이제 농익을 대로 농익었다. 맨눈으로도 보기 힘든 차선을 정확히 읽으며 선행 차량과의 거리 유지도 부드럽게 진행한다. 운전자가 주행에 집중하고 있는지는 토크 감지로 확인한다. 쭉 뻗은 직선로에서는 종종 스티어링 휠을 잡고 흔들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시승이라 화창한 날씨에 느끼기 힘들었을 단점도 찾았다. 바로 와이퍼 모터의 소음이다. 전기차는 엔진 소음 및 진동이 사라진 만큼 노면 소음, 풍절음 등에 더 예민해진다. 이에 따라 캐스퍼 일렉트릭은 언더 커버의 크기를 대폭 키웠을 뿐만 아니라, 기존 차체에만 적용됐던 웨더 스트립을 도어까지 적용해 이중 실링 구조를 완성했다. 전석 도어 유리의 두께도 3.2T에서 3.5T로 두꺼워졌다.

실제로 100km/h 이상의 속도에서 풍절음과 노면 소음은 놀라울 정도로 억제됐다. 문제는 사소할 수도 있는 와이퍼 모터 소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115마력을 발휘하는 전기 모터보다 전후면 와이퍼 모터 소음이 10배 이상 크게 들려온다.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PMSA) 시연 현장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PMSA) 활성화 시, 가속 페달은 입력되지 않으며 경고 팝업과 경고음이 발생한다

폭우를 뚫고 기착지에 도착했다. 기착지에서는 휴식도 휴식이지만 현대차그룹 최초로 탑재되는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이하 PMSA)’가 활성화되는 상황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이벤트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차량이 주차 센서를 통해 전후면 장애물을 인식한 상황에서 시연자가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량은 경고음과 함께 경고 팝업을 띄울 뿐 일절 움직이지 않는다. 시연자가 가속 페달을 밟고 있지만, PMSA 활성화로 가속 페달 입력이 무효화됐다.

PMSA가 활성화될 때, 상황은 그리 급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차량이 전방 장애물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급하게 제동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구동력을 풀어버리는 느낌에 가깝다. 또한, 생각보다 강력하게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현대차는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오인해 급하게 밟은 상황을 가정해 0.25초 내에 100% 가속 페달이 전개됐을 때 해당 기능이 활성화된다고 밝혔다.

기착지에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으로 복귀하는 동안에는 다행히 비가 잦아들었다. 비가 잦아든 만큼 주행 성능을 시험해볼 수 있게 됐다. 우선 가속 성능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최고출력 115마력(84.5kW)를 발휘하는 전기 모터를 전륜에 탑재했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140km/h까지 꾸준한 출력으로 속도계 바늘을 밀어올린다. 다만,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변경해도 짜릿한 가속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 딱 캐스퍼 일렉트릭 차급에 맞는 가속력을 보여준다.

고속에서의 안정성도 뛰어나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공차중량은 1335kg이다. 내연기관 캐스퍼에 비해 300kg 정도 무거워졌다. 통상 공차중량이 늘면 장점보단 단점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전동화를 통해 공차중량이 늘어났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무거운 배터리 팩을 차체 중앙, 최하단부에 배치해 무게중심이 낮아진다.

일반 캐스퍼로 100km/h 이상 주행하면 고 RPM 영역대에서 힘겨워 하는 엔진 소음과 풍절음 그리고 통통 튀는 하체 감각 때문에 80km/h 이하로 속도를 늦추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은 배터리 팩이 묵묵히 하체를 짓누른다. 덕분에 타이어가 노면을 쉽사리 놓치지 않으며 미묘한 고속 안정성이 구현된다.

큰 요철 구간을 만나 차체가 잠시 휘청이는 경우가 발생하긴 하지만 금세 자세를 고쳐잡는다. 마치 오뚜기 같은 움직임이다. 이 역시 배터리 팩으로 인해 형성된 낮은 무게 중심 덕이겠다. 전반적인 승차감은 부드럽게 세팅됐다. 크고 작은 노면 요철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절히 걸러낸다. 휠베이스가 길어짐에 따라 차체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승차감 향상에 한몫했다.

시승을 마쳤을 때, 캐스퍼 일렉트릭 배터리 잔량은 50%, 주행 가능 거리는 196km가 남았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파주 기착지를 오가는 61km의 시승 후, 배터리 잔량은 50%, 주행 가능 거리는 196km가 남았다. 시승 동안 캐스퍼 일렉트릭이 기록한 최종 전비는 5.41km/kWh다. 17인치 휠을 장착한 캐스퍼 일렉트릭의 공인 복합 전비는 5.2km/kWh다.

시승 초반 만난 정체길 외에 꾸준히 스포츠 모드 활성화 및 고속 주행 위주로 시승을 진행했음을 감안하면 공인 복합 전비를 상회한 기록은 의미가 깊다. 에코 모드를 활성화하고 일반적인 주행 환경을 갖춘다면 더 높은 전비를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멋보다 효율성을 우선시한다면 15인치 휠 옵션도 있다.

캐스퍼와 캐스퍼 일렉트릭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단순히 경차와 소형차 간에 나타나는 차급 차이로 표현할 수 없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작은 차의 운전 재미는 물론 전동화의 이점을 극대화했다. 캐스퍼에 이 옵션, 저 옵션 더하다가 풀옵션에 가까워졌다면, 캐스퍼 일렉트릭을 꼭 한 번 염두에 둬야 한다. 주행 성능뿐 아니라 NVH 및 실내 공간 그리고 편의사양에서 비교 불가능한 우위에 있다.

한 줄 평

장 점: 고급 소형차에 걸맞는 주행 성능·NVH·실내 공간..호화로운 편의사양까지

단 점: 풀옵션 캐스퍼를 고민하는 소비자가 국내에 얼마나 될까?

고양=서동민 에디터 dm.seo@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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